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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인 게 정말 이상적일까

중앙선데이 2013.12.07 17:43 352호 28면 지면보기
토머스 모어(Thomas More·1478~1535) 14세에 옥스퍼드대에 진학해 22세에 변호사가 됐으며 하원의원과 하원의장을 거쳐 영국 역사상 최초의 평민 출신 대법관이 됐다. 그러나 영국 국교회 수장으로서의 국왕의 권한을 부정한 죄로 런던탑에 투옥되었고 결국 반역죄로 참수형에 처해졌다.
꿈이란 참 모순된 것이다. 눈을 감고 있을 때는 생생하게 보였던 것이 눈을 뜨면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 다시 눈감고 싶은 달콤한 꿈일 때도 있고 온몸이 땀에 젖는 악몽일 때도 있다. 하지만 어떤 꿈을 꿀지는 모른다. 잠이 들 때까지, 아니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는 말이다.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49> 『유토피아』와 토머스 모어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Utopia)』는 이런 꿈만큼이나 모순된 책이다. 제목부터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란 의미다. 모어는 이 책에 실명으로 등장해 라파엘 히슬로다이우스라는 가상의 인물과 대화를 나눈다. 히슬로다이우스라는 이름도 라틴어로 무의미(난센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유토피아』는 아무 의미도 없는 사람과 아무 데도 없는 곳에 관해 이야기한 책이다.

그렇다고 얼토당토않은 허튼 내용은 아니다. 아니 시작부터 자못 심각한 주제를 다룬다. 이 나라에는 왜 이렇게 도둑이 많은가? 어떤 날에는 스무 명의 도둑이 한꺼번에 교수대에 오르기도 한다. 선원이자 철학자인 라파엘은 이렇게 단언한다. 도둑질이 먹을 것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그 어떤 형벌로도 도둑질을 막을 수 없다고 말이다. “사유재산이 존재하고 모든 것이 돈이라는 관점에서 판단되는 한, 저는 진정한 정의나 진정한 부를 어떻게 얻을 수 있을지 알지 못합니다.”

라파엘의 이런 공산주의 사상에 모어는 질문을 던진다. 소유의 의욕이 없어지면 누구도 열심히 일하려 하지 않으므로 게을러지고 사회 전체가 빈곤에 빠질 우려가 있다. 모두가 평등하다면 통치자의 권위도 사라지고 그들을 존중하지도 않게 돼 사회 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 논리적인 의문이다. 그러자 라파엘은 유토피아에서의 경험을 말해준다.

“돈과 돈에 대한 욕심이 사라져버린 유토피아에서 얼마나 많은 사회문제들이 해결되었고, 얼마나 많은 범죄들이 근절되었습니까! 돈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두려움과 근심·걱정, 과도한 업무와 불면의 밤들과도 작별을 고할 수 있습니다. 돈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늘 그 해결을 위해 돈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보였던 문제, 즉 가난이라는 문제도 즉시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얼마나 명쾌한가! 하지만 조금 딱딱하다. 모어는 원래 풍자와 유머가 넘쳐났던 인물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이렇다.

금이나 은보다 쇠가 더 유용한데도 사람들은 금이나 은을 더 좋아한다. 이건 희소성 때문인데, 유토피아에서는 이런 생각을 바로잡기 위해 금으로 만든 요강에 오줌을 누고, 죄수들에게 금족쇄를 채우고 금관을 씌워준다. 그러다 보니 유토피아 사람들은 금이나 은을 경멸의 대상으로 알고, 다이아몬드 같은 보석조차 하찮게 여긴다.

“유토피아 인들은 밤하늘에 바라다볼 아름다운 별들이 무수히 많은데도 누군가 작은 돌덩어리의 흐릿한 빛깔에 매료되는 것을 보면 의아해합니다. 또 자기 옷이 다른 사람 옷보다 더 좋은 양모로 지어졌다는 이유로 자신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유토피아 인들은 금처럼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물질이 왜 지금 전 세계적으로 사람보다 더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는지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결혼 관습을 설명하는 부분은 더 재미있다. 결혼을 하고자 하는 처녀 총각은 상대방 앞에서 홀딱 발가벗고 선을 보여야 한다. 말 한 마리를 살 때도 꼼꼼히 관찰하고 확인하는데, 좋건 싫건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할 사람을 고르면서 얼굴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유토피아 인들은 공평하게 하루 여섯 시간씩 일하고, 남는 시간에는 정신적이고 지적인 쾌락을 추구한다. 지속적으로 건강을 유지하면서 진리에 대한 명상과 뜻있게 보낸 인생에 대한 추억, 앞으로 다가올 좋은 일들에 대한 확신에 찬 기대감을 갖는 것이다. 라파엘은 이것이 바로 유토피아 인들이 누리는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한다.

그럴까? 유토피아 인들은 최소한의 노동을 하는 대신 최소한의 상품에 만족해야 한다. 가령 모두가 똑같은 모양과 색깔의 옷을 1년에 한 벌씩만 공급받는다. 각 가정에서의 식사는 금지돼 있고, 마을회관 같은 공공장소에서 공동으로 식사해야 한다. 특별허가를 받지 못하면 마음대로 여행도 못한다. 혼전에 성관계를 가졌다가는 평생 독신으로 살아야 하고, 간통죄를 저지르면 처음에는 강제 노역형에, 두 번째는 사형에 처해진다. 심지어 여가 시간도 반드시 유용하게 사용해야 한다.

유토피아는 이처럼 모순적이다. 평생 세속적인 권력과 부를 추구했던 모어 역시 자신을 총애했던 헨리 8세의 이혼에 반대해 모든 안락을 포기해야 했다. 그것도 총리 겸 대법관 자리에 있던 인생의 최고 절정기에 말이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가 단두대에 올라서자 사형 집행관이 용서를 빌었다. 모어는 그를 끌어안고 오히려 격려해 주었다. “자네 일을 하는 데 두려워하지 말게. 그리고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죽음의 공포마저 유쾌한 해학으로 넘어서는 순간, 유토피아는 구현된 것이다.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다. 출판사 굿모닝북스 대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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