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보위부 문건까지 손대고 우동측·이제강 의문사 배후

중앙선데이 2013.12.07 23:54 352호 4면 지면보기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오른쪽 둘째)이 2012년 11월 19일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오른쪽)과 제534군부대 기마훈련장을 찾아 말을 타고 있다. 김정은 뒤는 최용해 총정치국장. [중앙포토]
2012년 4월 ‘인민군 대장인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 우동측 자살’이란 첩보가 국내로 유입됐다. 마침 3월 말부터 그의 모습이 권력 주변에서 사라진 터였다.

실각설 나도는 장성택 힘의 실체는 당 행정부

 2009년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에 임명된 이래 인민군 대장,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중앙군사위 위원,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을 겸하며 승승장구하던 실세였다. 얼마 후 ‘장성택과 노동당 행정부가 배후’라는 관측이 나왔다.

 노동당 역사에서 행정부와 부침을 함께한 인물이 장성택이다. 당 행정부 산하 대외보험총국 싱가포르 지사에서 근무하다 탈북한 국가안보전략연구소 김광진 선임연구위원은 “1990년대 초 조직지도부에 편입되기 전부터 행정부는 힘이 세서 말썽이 많았다”며 “장성택은 95~2004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행정부 업무를 맡았다”고 말했다. 통일부의 99년 자료에도 당시 당 행정부는 조직지도부 소속으로 나온다.

 노동당 행정부는 ‘당 행정 담당 조직’이 아니다. 북한의 권력기관인 국가안전보위부·인민보안부·중앙검찰소·중앙재판소·국가검열성을 감시하며 총괄한다. 우리로 치면 경찰청·검찰·사법부·국정원·법무부를 관할한다. 군부를 제외한 권력기관을 통제하는 막강한 당 기구다. 당 우위 국가인 북한에서 정부는 당의 통제를 받는다. 북한 헌법 11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노동당의 영도에 따른다’고 규정한다. 구체적으론 2013년 1월 현재 당 중앙위원회 산하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39호실 및 행정부 등 24개 전문부서가 지도한다. 서열 1위는 조직지도부, 2위는 선전선동부, 3위는 근로단체부다. 행정부는 한 부서일 뿐이다. 그러나 실제 힘은 막강하다.

 예를 들어 함경북도 도당을 보자. 조직지도부 인력은 60명 선, 군사부·근로단체부는 30~40명. 그러나 행정부는 80명 정도다. 중앙당 행정부에는 150~200명이 있다. 전국 9개 도·직할시에 700여 명이 있다. 230여 개 시·군당마다 15~20명이다. 조직부를 웃도는 수천 명의 당 행정부 인력이 전국에 조직적으로 깔려있다는 의미다. 탈북자들은 “사람 수가 많다는 것은 할 일이 많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행정부는 인민내무군 20만 명을 보유한 인민보안부도 장악한다.

고모부-조카 사이인 장성택(왼쪽)과 김정은
 2004년 행정부는 흔들거렸다. 장성택이 그해 직권으로 평양 외곽의 간부 별장인 초대소의 사용권을 얻었다. 그런데 어느 날 경비병력이 초대소에 들어가려던 보위부 간부를 “장 부장 허가 없이는 못 들어간다”며 제지했다. 보위부 간부는 김상권 보위부 부부장에게 직보했다. 김 부부장의 보고를 받은 김정일은 “다 쓸어 버리라우”라며 화를 냈다. “그래서 장성택의 측근은 모두 끌려갔다”고 국가안보전략연구소 고영환 수석연구위원은 전한다. 일명 ‘초대소 습격사건’이다. 장성택도 모든 자리를 내놓고 좌천됐다.

 그러나 장성택과 행정부는 죽지 않았다. 김광진 연구위원은 “2005~2006년 장성택이 ‘혁명화 교육’을 받고 있을 당시 박봉주 총리가 ‘내각의 부총리 겸 수도건설 위원장으로 임명된 7총국 전 국장에게 업무지시를 하자 장 부장에게 얘기하라고 하더라’며 한숨 쉬었다”고 전했다. 7총국장은 행정부 산하 기관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당 행정부의 힘은 실제로 산하 ‘경제부문과 외화벌이 조직’에도 뿌리를 둔다. 김 위원에 따르면 행정부 산하엔 대외보험총국, 수도건설총국, 727 지도국, 2호 지도국 등 다양한 비공개 경제조직이 있다. 인민보안부 산하엔 건설 담당인 7·8총국이 있다. 호위사령부에도 회사들이 있고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세관, 김씨 가족의 별장 건설을 담당하는 1여단, 주석궁 재정경리 담당인 ‘능라888’ 등 다양하다.

 장성택은 2006년 1월 당 중앙위원회가 개최한 음력설 연회에 노동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으로 참석해 복권을 알렸다. 이어 2007년 10월 노동당 행정부장이 됐다. 이를 계기로 행정부는 조직지도부에서 독립해 나왔다. 김 위원은 “사람이 없어 다시 장성택이 맡게 됐다”고 말했다. 장성택의 권력게임은 본격화됐다. ‘김정일의 와병’은 기회를 줬다. 고영환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일의 정신이 또렷할 때는 중앙당 행정부 인원이 40명 정도였는데 병이 길어지면서 인력이 크게 느는 식으로 조직이 커졌다”고 말했다.

“장성택 개인의 힘 北 총리도 제쳐” 
장성택 부장이 배후로 추정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2010년 6월 이제강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평양~원산 고속도로에서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심장마비로 사망한 이용철의 후임으로 임명된 지 2개월 만이다. 한산한 북한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의혹이 쏠리면서 그가 장성택의 최대 라이벌이라는 점이 부각됐다. 이제강은 군과 당 조직지도부에서 37년 근무했고, 2004년 장성택 숙청을 주도했다. ‘김정은 후계 결정’을 당내에서 가장 먼저 알 만큼 정보와 조직 관리에 능했다. 장성택의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임명 닷새 전에 사건이 발생한 점도 권력갈등의 냄새를 풍겼다. 중국 국경 지역에서도 당시 “이제강은 타살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2010년 9월엔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 임명된 장성택의 최측근 박정순이 지병으로 사망했다.

 ‘노동당 내 성골’로 당과 군부를 지도하는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의 잇따른 사망은 지도부를 위축시켰고 당 행정부장의 입지 강화로 이어졌다. 김정일 사후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가 관리했지만 ‘와병 때문에’ 힘은 빠졌다. 행정부의 힘은 직간접적으로 인민군 총정치국과 호위총국, 군의 보위사령부까지 뻗쳐갔다. 고영환 위원은 “김정일의 병이 깊어지고 사망하는 와중에 장성택은 별도 보고하던 보위부 문서까지 행정부를 거치게 했다”고 말했다.

 장성택 개인의 힘도 더 막강해졌다. 국가체육지도위원장, 당정치국 위원,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까지 겸했다. 그러다 보니 당 행정부장 자리를 자주 비우게 돼 대리할 사람을 뒀다. 그게 행정부 제1부부장이다. 행정부 부부장은 검찰 담당, 사법부 담당, 보위부 담당 등 4~5명이 있다. 조직지도부엔 부부장이 20명 있지만 제1부부장은 없다.

 그러는 사이 장성택의 권력엔 문제의 씨앗이 심어졌다. ‘우동측 사건’이 계기였다. ‘자살’ 몇 개월 뒤인 2012년 여름 ‘김정은이 보위부를 직접 챙기겠다고 말했다’는 첩보가 입수됐다. 장성택의 힘을 줄인다는 의미다. 고영환 위원은 “김정일이 살아 있을 때도 어떤 때는 장성택에게 보위부를 보라 했다가 다시 거둬들이며 오락가락하던 시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 ‘장성택의 추락’은 당 행정부와 인민무력부·국가안전보위부 등 권력기관 간의 영역 및 이권 다툼에 기인한다는 설이 유력하다. 고 위원도 “외화벌이 문제로 충돌했다가 일이 번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북한에서 외화벌이를 했던 자유북한방송 이금룡 본부장은 “북한의 기관들은 모두 재정사업을 하며 이 과정에서 부를 축적하고 기관의 사업을 지원한다”고 말했다.
 
장성택 삭제된 기록영화 방영
2010년 장성택과 국방위원회 오극렬 부위원장의 갈등도 외화벌이 과정에서 불거졌다. 군부를 기반으로 외자 유치를 해온 오극렬과 조선대풍그룹을 앞세운 장의 힘겨루기에서 김정일은 장성택의 손을 들어줬다. 장성택은 상대의 비리를 찾아내 김정일에게 보고했고 보위부엔 자신들의 문제점은 보고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역전한 셈이다.

 장성택의 측근이라 할 수 있는 이용하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의 죄목은 평양시와 경제특구 건설 과정에서 국가 재산을 빼돌렸다는 것이다. 이를 장성택을 겨냥한 것으로 보는 이유 중 하나가 ‘이용하 총살’이다. 김광진 위원은 “이용하는 장성택이 노동당 조직부 행정담당 제1부부장 시절부터 종합 부부장으로 장성택에게 보고 문건을 만들어 올리고 업무 보고를 하던 오랜 측근”이라고 말했다. 2004년 장성택과 함께 숙청됐다 2007년 장이 복귀하면서 다시 끌어왔다. ‘장의 최측근’이라는 의미다. 장수길은 인민보안성 외화벌이 출신으로 이용하만큼은 아니지만 업무상 가까이 했다. 고영환 위원은 “조선노동당 역사상 담당 부부장이 공개 처형된 역사는 없었다. 굉장히 심각한 일이 생겼다는 의미다”라며 “부패 혐의는 대외적으로 퍼트리는 소문”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이 장성택을 ‘어떻게 손을 보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지난달 말부터 김정은이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을 대동하고 함경도 현지지도를 한 것에 의미를 두는 견해가 있다. 조사가 보위부를 중심으로 진행됐음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김원홍은 장성택의 추천으로 2011년 군 총정치국 부국장이 됐으며 최용해 총정치국장 밑에서 능력을 인정받았고 지난해 4월 국가안전보위부장에 임명됐다. 상황 판단이 빠르고 과감해 김정은 체제에서 충성파로 간주된다.

 앞으로 행정부는 폐지되고 다시 조직지도부가 주축이 될 것이란 견해가 대세다. 장성택의 모습이 북한 기록에서 삭제되고 있다는 국내 언론의 보도도 나온다. 그 과정에서 후폭풍도 클 것으로 본다. 1차 숙청 대상은 장성택의 심복과 그와 가까운 인물이 될 것으로 본다. ‘장성택의 사람’들은 뿌리가 깊다. 장성택은 70년 이후 권력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해 인맥이 당 국제부, 청소년사업부, 조직지도부와 보위부, 인민보안부, 사법부, 검찰까지 두루 미친다. 2012년 11월 4일 그가 위원장으로 임명된 국가체육지도위원회(신설)도 당 행정부 못지않은 장성택의 인맥이라는 지적이 있다. 위원회엔 부위원장으로 이영수 노동당 근로단체부장, 최부일 인민보안부장, 노두철 내각 부총리 세 명과 장선강 체육지도위원회 서기장, 문경덕 평양시당 책임비서, 이종무 체육상, 오금철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등 32명 위원이 있다. 그러나 세종연구소 정성장 수석연구위원은 “장성택이 국가체육지도위원장에 임명되면서 당 행정부장직에서 해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