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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방위·외교 정보 60년 비공개 … 아베 밀어붙인 비밀보호법 통과

중앙일보 2013.12.07 01:37 종합 4면 지면보기
“일본 사회의 시계를 태평양전쟁 이전으로 돌리려 한다”는 야당과 시민사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밀어붙인 특정비밀보호법이 결국 6일 밤 참의원을 통과했다. 민주당·공산당 등 야당들은 이날 관련 법안을 주도한 각료·특위위원장에 대한 문책 결의안, 아베 내각에 대한 불신임안을 잇따라 제출하며 표결 지연 작전을 폈다. ‘인사 관련 안건을 우선 처리한다’는 국회법 규정을 이용한 것이다. 하지만 법안은 결국 밤 11시 20분쯤 과반수를 점한 자민당과 연립여당 공명당의 찬성으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달 말 중의원에 이어 참의원까지 통과하면서 법안은 최종 성립됐다.


"언론 자유 옥좨" 격렬한 시위 속
야당 반대 뚫고 참의원서 처리

도쿄 도심 히비야(日比谷) 공원에 약 1만5000명의 시위대가 몰리고 국회를 에워싼 심야 데모가 이어지는 등 전국적으로 가장 격렬한 반대운동이 벌어지는 와중이었다. 연립여당이 전날 소관위원회인 국가안전보장특별위에서 기습상정과 기립표결이란 방법으로 강행처리한 것이 성난 민심에 기름을 끼얹었다. TV아사히(朝日)는 “여당이 이렇게 서두를 필요가 있었느냐”며 “아베 총리와 자민당이 강행처리를 일삼다 결국 국민의 신뢰를 잃었던 1차 아베 내각(2006~2007년)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고 분석했다.



 통과된 법안에 따르면 각료 등 행정기관의 장은 방위·외교·테러 관련 특정 정보를 최장 60년까지 ‘특정비밀’로 묶을 수 있다. 공무원이 비밀을 누설하면 최고 10년의 징역형에 처하고, 누설을 교사한 경우에도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아베 정권은 동맹국 미국과의 원활한 정보교류를 명분으로 회기 내 처리를 주장했지만, 대부분의 야당과 언론들은 “비밀사회를 만들고, 언론과 취재자유를 옥죄는 희대의 악법”이라며 반대했다.



 아베 총리는 “비밀 지정의 타당성을 검증할 제3자 기관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이 제3자 기관을 고위 관료들로 채우고, 사실상 총리 자신이 최종적인 판단을 하겠다는 속셈임이 들통나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야당과 언론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라고 들끓었다.



 아베 총리의 수법은 중의원 처리 때와 마찬가지였다. 일부 야당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야당도 찬성했다’는 명분을 만들려 했다. 자민당과 성향이 비슷한 ‘모두의 당’ ‘일본유신회’가 대상이었다. 이 수법이 향후 집단적 자위권이나 개헌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일본 언론들은 우려한다.



 지식인 사회의 반발은 최근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강렬했다. 아사히신문은 5일 ‘이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경멸이다’란 제목의 논설을 1면에 싣는 등 연일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노벨 물리학상·화학상 수상자를 비롯한 저명학자들,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72) 감독 등 영화계 인사들, 일본변호사연합회 소속 변호사 등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반대 대열에 합류했다. 6일까지 국회와 총리관저 주변엔 매일같이 시위대의 인간 사슬이 만들어졌다. 최근 아사히 여론조사에선 “더 심의해야 한다”(51%), “법안을 폐기해야 한다”(22%)는 의견을 합쳐 70%가 넘었지만, 아베 정권은 결국 꿈적하지 않았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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