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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만델라 - 용기와 화해 95년] 팝스타들이 준 새로운 운명

중앙일보 2013.12.07 00:57 종합 15면 지면보기
“오늘 우리는 위대한 한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 그는 넬슨 만델라다”. 1988년 6월 11일,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 내란음모죄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로벤섬에서 25년째 수감 중이던 만델라의 70세 생일 축하 콘서트가 열렸다. 미국의 흑인 가수 해리 벨라폰테가 무대에 오르자 스타디움을 메운 7만2000여 관중은 “만델라를 석방하라(Free Mandela)”는 함성으로 화답했다. 이날 무대에는 다이어 스트레이츠, 스팅, 조지 마이클, 에릭 클랩턴, 휘트니 휴스턴, 스티비 원더와 ‘어메이징 그레이스’로 콘서트의 대미를 장식한 흑인 소프라노 제시 노먼까지 모두 83명의 세계적 아티스트가 올랐다. BBC가 장장 11시간 동안 중계한 이 콘서트의 시청자는 전 세계 70개국 10억 명에 달했다.


1988년 런던서 주인공 없는 칠순 콘서트
테러리스트 딱지 떼고 영웅으로 재탄생

 ‘불굴의 의지’ ‘용기와 화해의 상징’으로 불려온 만델라지만 그가 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에 맞서 싸운 영웅이라는 칭호를 갖게 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생의 대부분을 ‘테러리스트’로 불렸던 그는 2008년까지 미국의 테러 감시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는 만델라가 이끈 아프리카민족회의(ANC)를 공공연히 “테러 조직”이라고 불렀다. ANC를 비롯한 각국의 아파르트헤이트 반대운동 단체들의 오랜 격렬한 활동으로도 ‘테러리스트 만델라’의 이미지는 변하지 않았다.



 테러리스트 만델라를 세계적인 인권운동가, 영웅으로 바꿔놓은 일대 사건이 바로 이 웸블리 콘서트였다. 당시 콘서트를 기획한 토니 홀링스워스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영국을 비롯한 각국의 아파르트헤이트 반대운동 단체들의 극단적인 이미지가 여론의 등을 돌리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찾게 됐다”며 콘서트를 기획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전 세계 내로라하는 아티스트들이 자발적으로 콘서트에 동참했고, 주인공이 참석하지 못한 만델라의 70세 생일파티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축제이자 시민운동으로 기록됐다. 이후 세계여론은 급변했다. 그리고 만델라는 90년 2월 11일 마침내 자유를 얻었다. 그의 석방 장면은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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