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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그 겨울의 찻집' 열창할 때 옆자리 지킨 여인은 …

중앙일보 2013.12.07 00:50 종합 16면 지면보기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지난해 7월 평양 능라인민유원지에서 돌고래쇼를 보고 있다. 왼쪽부터 부인 이설주, 김정은, 고모 김경희 노동당 비서. [중앙포토]


평양에서 고속도로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묘향산. 서울 손님을 맞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뒤로 40대 중반의 여성이 따랐다. 김정일은 웃음을 띠며 “현 회장,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라고 말을 건넸다.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과 딸 정지이 현대U&I 전무를 향해서다. 김정일 직접 면담을 요청한 현 회장은 열흘 기다림 끝에 만났다. 중단상태인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 등을 논의하려는 자리였다.

평양의 로열 패밀리, 김정일가의 여인들



 와인을 곁들인 오찬을 함께한 김정일은 정 전무의 잠옷 선물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밴드 들어오라 그러라우”라고 지시했다. 김 위원장은 동반 여성과 모두 11곡의 노래를 불렀다. 놀랍게도 그 가운데 3곡은 남한 가요였다.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도 그중 하나다. 김정일 옆을 지킨 여인이 누군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하지만 현 회장은 사실상 김정일 위원장의 부인 역할을 하는 김옥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2009년 8월 16일 낮 김정일의 묘향산 특각(전용별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북한 정권에서 최고지도자의 여인들은 이름을 드러내지 못했다. 은둔을 강요받은 것이다. 기술서기(비서) 출신인 김옥은 1990년대 초반 김정일의 눈에 들었다. 그의 여자가 된 이후 그녀의 모습은 북한 화보 등에서 지워졌다. 김정일은 마지막 중국행이 된 2011년 5월 베이징 방문 때 김옥과 동행했다. 전용 메르세데스벤츠의 퍼스트레이디가 앉는 자리에 김옥을 자리토록 했다. 해외언론의 관심은 그녀에게 집중됐다. 이를 두고 몇 달 뒤 숨지게 될 자신의 운명을 예견한 김정일이 김옥에게 이런 기회를 줌으로써 평생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게 했던 미안함을 전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김정일과 정혼한 것으로 한·미 정보당국이 파악하고 있던 김영숙은 아예 그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다. 김정일의 첫 여자인 성혜림도 시아버지 김일성에게 인정받지 못하면서 한 번도 얼굴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녀는 잘나가던 영화배우였다. 김정일은 60년대 말 친구의 형수 성혜림을 강제로 이혼시켜 동거에 들어갔다. 다섯 살 연상이었다. 절대권력을 물려받게 될 후계자 김정일의 사랑은 불같았다. 71년 5월 첫 아들 정남을 낳자 김정일은 새벽길을 벤츠로 달려와 들뜬 목소리로 “혜림이가 아들을 낳았어”라고 알렸다는 게 언니 혜랑(서방으로 망명)씨의 말이다. 하지만 사랑은 얼마 가지 않아 식었다. 결국 성혜림은 우울증과 심장병에 시달리다 모스크바에서 쓸쓸하게 숨을 거두었다.



김정일 등장 후 계모 김성애 사라져



 김정은의 생모인 고영희는 28년간 김정일과 살았다. 북송 재일교포 출신 무용수이던 10년 연하의 그녀를 김정일은 말년까지 챙겼다. 유선암 치료를 위해 프랑스에 머물던 그녀가 숨지자 특별기를 보내 운구했고 평양 대성산에 안장했다. 그런데도 아들이 최고지도자로 등극한 이후에야 세상에 모습이 알려졌다. 그것도 당간부들에게 제한적으로 공개된 기록영화를 통해서다.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 때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함께 방북했지만 김 국방위원장은 홀로 나왔다.



 김일성 주석도 그랬다.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이 49년 숨진 이후 타자수 출신 김성애를 후처로 맞았다. 그녀를 두고 ‘평양 치맛바람’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로 권세를 부리자 제동을 걸었다. 80년대 들어 김정일이 후계 권력을 굳혀가자 계모 김성애는 전면에서 사라졌고, 그 소생인 김평일은 외국 대사로 나가 평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김정일의 이른바 ‘곁가지’ 쳐내기였다.



 그런데 김정일가(家)의 오랜 금기가 깨졌다. ‘평양판 신데렐라’ 이설주의 등장이 그것이다. 지난해 7월 김정은은 그녀를 동반하고 평양 능라인민유원지 개관식에 나왔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부인 이설주 동지’라고 불렀다. 파격은 이어졌다. 김정은의 팔을 부여잡고 팝콘을 먹는 이설주는 북한 주민들은 물론 외부세계에도 충격이었다. 샤넬풍 패션에 크리스천디오르 클러치백을 든 평양 안방권력의 새 사모님을 두고 ‘청담동 며느리 패션’이란 말까지 나왔다.



 김정은의 여동생 여정도 주목거리다. 2년 전 김정일 장례식 때 오빠 뒤에 서서 눈물을 흘리던 그녀는 확 달라졌다. 지난해 능라인민유원지 개관 때 나온 김여정은 천방지축이었다. 김경희를 비롯한 노동당과 군부 간부들이 김정은을 맞이하느라 도열한 상황에서 행사장을 거침없이 누비고 다녔다. 김정은이 꽃다발을 받고 거수경례로 인사를 하자 재미있다는 듯 함박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그녀가 김정은의 이미지 메이킹과 선전·선동 분야를 책임지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지난해 11월에는 김정은과 함께 말을 타는 장면이 공개됐다. 같은 혈통임을 과시한 것이다.



 김정은의 고모 김경희는 북한 권력의 키를 잡고 있는 여걸로 간주된다. 최근 불거진 남편 장성택의 실각설로 더욱 부각됐다.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용하 노동당 행정부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을 반당(反黨)혐의로 공개 총살했다는 게 국가정보원이 파악한 내용이다. 극단적인 처벌 강도로 볼 때 장성택의 재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과 일정 기간 후 복귀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권력 내에서 그녀의 서열이 어떻게 정리되고 김정은에게 어떤 태도를 취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김경희 부부와 함께 ‘후견 3인방’으로 꼽혀온 최용해 군 총정치국장도 김경희를 넘어서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른바 ‘백두혈통’이라 불리는 김일성 혈족인 김경희의 출신성분을 항일 빨치산 출신(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이란 신분증으로 압도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 그녀는 불꽃 같은 러브스토리를 남겼다. 동갑내기에 같은 모스크바 유학 출신 장성택에게 반한 김경희는 결혼을 원했지만 김일성의 반대에 부닥쳤다. 원산경제대 교수로 쫓겨난 장성택을 만나러 툭하면 벤츠 승용차를 몰았다. 김일성도 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26세이던 72년 두 사람은 결혼에 골인했다. 하지만 김경희는 알코올 중독 등에 시달렸고 별거설까지 나왔다. 2006년에는 프랑스에 유학 중이던 딸 금송이 자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랑에 빠진 북한 유학생과의 사이를 부모가 반대하자 이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프랑스 당국의 조사 결과 드러났다.



최고 권력자와 스캔들나면 공개처형



 절대권력자들의 곁에는 많은 여인이 스쳐갔다. 단숨에 절대권력자를 사로잡아 버금가는 권세를 누렸지만 달콤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유효기간은 ‘사랑이 식을 때까지’였다. 이후 그녀들을 기다린 건 세간의 기억에서 잊혀지거나 숙청 등 비참한 결말이었다. 인민배우 우인희 사건은 대표적인 경우다.



 80년 어느 겨울날 평양 교외의 한 사격장에는 북한의 영화배우·감독과 주민 수천 명이 모여들었다. 잠시 뒤 미모의 여인이 끌려나와 기둥에 묶여졌다. 얼굴에는 하얀 용수가 씌워졌다. 여자는 최후를 예감한 듯 울부짖었지만 스피커 방송에 묻혀버렸다. “인민배우 우인희는 부화(남녀 간 부적절한 관계를 의미하는 북한식 표현) 방탕죄를 범했으므로 인민의 이름으로 총살형에 처한다.” 곧 수십 발의 총성이 울렸고 축 늘어진 여인의 몸에서는 피가 쏟아졌다. 화약 연기가 자욱하게 퍼지며 정적이 흘렀다.



 60~70년대 최고의 배우 우인희는 북한체제에서 결코 용인받기 힘든 자유분방함으로 숱한 염문을 뿌리고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으로 기록됐다. 스캔들로 인해 비판대에 섰을 때도 그녀는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신도 나한테 유혹의 손길을 보내지 않았느냐”며 맞받아쳤다. 미운 털이 박혀 배우에서 촬영소 보일러실 화부로 전락하기도 했다. 당대 최고의 영화감독 유호선과 결혼한 후에도 재일교포 청년과 깊이 사귀었다. 하루는 고급 승용차 안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누다 잠들었고, 새벽 청년은 질식사하고 우인희는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됐다.



 공개처형은 사건 조사과정에서 그녀가 김정일을 비롯한 고위층과의 관계를 언급하면서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납북됐다 극적으로 귀환한 배우 최은희씨는 “북한 체류 때 처음 우인희 얘기를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김정일 얼굴이었다”고 말했다. 김일성의 프랑스어 통역을 맡았던 외교관 출신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일이 부화를 은폐하려 멀쩡한 여배우를 총살시킨 사건”이라고 전했다.



 지난가을 평양에서는 33년 전의 일이 되풀이된 듯한 일이 벌어졌다. 은하수관현악단 소속 9명의 젊은 남녀 음악인들이 공개처형 당했다. 김정일 시대 최고의 주가를 올린 악단이다. 성추문과 부르주아적 행동이 문제가 됐다고 한다. 유럽 공연 중 단원끼리 문란한 관계를 맺었다는 전언과 돈벌이를 위해 포르노를 찍어 중국으로 팔아넘겼다는 설이 엇갈리지만 추문설이 직접적 이유가 됐다는 게 우리 정보 당국의 판단이다. 이설주가 추문설에 연루됐다는 소문이 북한 주민들 사이에 퍼지기도 했다. 조사과정에서 단원들이 “은하수악단 출신인 이설주도 예전엔 우리처럼 놀았다”는 증언을 했다는 얘기였다. 때마침 이설주의 공개활동이 상당 기간 중단되면서 의혹은 증폭됐다. 이를 의식한 듯 이설주는 잠시 공개석상에 섰지만 최근 50일 넘게 활동이 끊겼다.



 대북 정보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향후 김정은 체제의 안정을 가름할 변수로 김경희의 건강을 꼽는다. 최근 들어 몰라보게 수척해진 상태고, 공개활동도 뜸해졌다. 지난해 9월 지병 치료차 싱가포르 등을 찾았던 그녀는 최근에는 진료를 위한 미국 방문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북한 최고 지도자의 부인들에 관한 더 많은 이야기는 곧 출간될 『김정일가의 여인들』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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