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람 속으로] 김황식 전 총리

중앙일보 2013.12.07 00:44 종합 18면 지면보기
서울시장 출마설이 나오는 김황식 전 총리는 “제안이 오면 생각해서 답을 하겠지만 지금은 조용히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장대비를 맞는 총리. 2011년 11월 연평도 전사자 1주기 추모식장에서였습니다. 머리 위로 경호원이 우산을 펼쳐 들자 김황식 국무총리는 “괜찮다. 치우라”고 했습니다. 40분 동안 흠뻑 비를 맞아 양복이 내복처럼 몸에 달라붙었습니다. 정치권은 아마 그때부터 ‘비 맞는 총리’를 호출 대상으로 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막연했던 구상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점점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서울시장 출마, 그런 상황이 오면 그때 답하겠다"



 대법관- 감사원장- 국무총리.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이 세 자리를 모두 거친 사람은 두 명뿐이다.



 최초는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 국무총리를 마친 그는 신한국당(새누리당 전신)에 입당해 정치인으로 변신했고, 이후 길고 긴 풍운을 겪었다.



 또 한 명이 바로 ‘비 맞는 총리 김황식’이다. 그는 10개월 전 총리직을 사법시험 동기(14회)인 정홍원 현 총리에게 물려준 뒤 초야로 돌아갔다. 그러나 마치 예전의 이회창 전 총리에게 했던 것처럼 여권이 그를 비바람 속으로 부르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대항마가 돼 달라는 것이다. ‘김황식의 선택’은 내년 지방선거 최대변수 중 하나로 떠올랐다. 그는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4일 서울 서초동 자택에서 김 전 총리를 만났다.



 - 서울시장 출마설이 나오는데.



 “조용히 지내고 싶지, 시장에 나가야 되겠다 하는 생각은 갖고 있지 않다.”



 종종 수식어가 마술을 부린다. 예컨대 정치인의 말 가운데 ‘아직은(현재로선) 생각이 없다’와 ‘생각이 없다’는 천지차이다. ‘아직은 생각이 없다’란 말은 ‘없다’란 의미보다 ‘있다’에 가깝다. 이젠 국민이 다 아는 독해법이 돼버렸다. 김 전 총리도 기자들과 만났을 때 “현재까진 (서울시장 출마를)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식으로 말해왔다. 그러나 이날 인터뷰에선 ‘아직은(현재로선)’이란 부사를 과감히 빼버렸다.



 - 출마 안 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현재까진’ 생각이 없다는 얘기인가.



 “시장을 하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없다. 자유롭게 조용히 살고 싶은 것이 제 생각이다.”



 - 몇몇 인터뷰에선 ‘국가를 위해 역할을 할 생각이 있다’고 했는데.



 “여러 가지 가능성은 있겠지만, 제가 지금 갖고 있는 생각(불출마)을 그대로 유지했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람이다.”



 - 새누리당 일부에선 ‘김황식 필승론’을 말하고 있다.



 “막연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저는 그렇겐 생각하지 않는다. 강력한 상대방(박원순 시장)이 있는데 쉽게 필승론을 얘기하는 것은….”



 - 호남 유권자에게 어필할 수 있고, 재직 시절 ‘중도저파’(중도 저소득층)를 표방했던 것처럼 친서민적 이미지에서 박 시장과 경쟁이 가능하다는 뜻일 텐데.



 “(그런게) 일부 도움은 되겠죠.”



 - 그럼 한번 도전해 보시지 그러시나.



 “허허허. 선거라는 것이 굉장히 상식적인 삶과는 별다른 세계인데, 제가 거기에 뛰어들어야 되느냐 하는 것에 기본적으로 회의감이 있다.”



 - 선거 출마는 누구한테나 무거운 짐일 것이다. 그러나 ‘콜링(calling)’, 소명의식을 갖고 그 짐을 져달라는 것 아닐지. 거기에 ‘응답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고.



 “(여권이 공식 제안하는)그런 상황이 오면 그때 답을 하겠다. 기본적으로 감사원장도 그렇고 총리도 그렇고 제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지는 그런 대목이 있어서, 제 생각은 그렇다 하더라도 그때 상황이 어떤 상황이 되고, 그러면 내가 어떤 생각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그때 가서 답을 밝힐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이 있는데도 짐짓 미뤄놓고 있는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그때 상황을 보겠지만, 지금 가진 생각을 그대로 유지했으면 하는 것이 제 솔직한 마음이다.”



 사실 국무총리나 감사원장은 그가 여러 번 고사했던 자리지만 떠맡겨지다시피 그에게 주어졌다. 이번에도 ‘운명’처럼 새로운 일을 하게 될지, 아닐지는 그 자신도 알 수 없다는 얘기였다. 지금 분명한 건 출마할 생각이 없다는 것뿐.



 현재 상황은 유동적이다. 무엇보다 새누리당이 또 다른 유력주자인 정몽준 의원과 김 전 총리 간의 교통정리를 어떻게 할 건지가 과제가 될 것 같다.



 - 서울시장 말고 당 대표라든지 다른 역할을 얘기하는 사람들도 새누리당에 있다.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에 정계입문이 포함돼 있나.



 “기본적으로 ‘정치는 안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가가 어떻든 (나를)만들어줬으니 국가발전에 기여해야 되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고 여러 선택지 중에 하나로 정치가 포함될 수 있으나 그건 마지막 선택지지, 선뜻 뛰어들고 싶은 필드는 아니다.”



 - 새누리당 의원 가운데는 김 전 총리를 영입해 차기 대권주자로 키워야 한다는 사람도 있더라.



 “아휴…. (대권주자는)아무나 하나.”



 - 의원들이라고 아무한테나 그런 얘기는 않는다.



 “(대권주자는)시대의 요청에 부합하는 인물이어야 하고, 그 밖에 많은 덕목과 요건을 갖춰야 되는데, 감히 그런 반열에 끼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김 전 총리는 최근 새누리당 의원 모임에 나가 헌법에 제도가 있으면 ‘국회 해산’이 필요하다는 발언을 했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국회에 대한 단호한 입장은 여전했다.



 - 국회 해산은 과도한 얘기 아닌가. 평소 ‘절제, 온유, 겸손’을 삶의 원칙으로 강조해온 것과도 다르고.



 “국민들이 많은 불만, 절망감을 느끼고 있어서 대변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야가 극한 대립을 지양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절충점을 찾아줬으면 좋겠다는 것을 강력히 표현하기 위해 헌법에 해산 제도가 있다면 해산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할 만큼 위중한 상황임을 강조한 거였다.”



 - 총리로서 출석하곤 했던 18대 국회보다 19대 국회가 더 나빠졌다고 보나.



 “그렇다. 더 위중한 상황이다.”



 - 어떤 점이 그런가.



 “일부 합의 처리할 수 있는 것들은 처리하면서 싸워야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사실상 올스톱이 돼 있었다. 결산안은 8월에 정리돼야 하는데, 최근에야 됐고. 예산안은 당시는 상정도 안 되고 공공연하게 준예산이 우려될 정도의 상황이었다.”



 - 왜 19대 국회 상황이 더 악화됐다고 보나.



 “…대선 후유증 때문 아닌가 싶다.”



 김 전 총리의 답변은 ‘드라이’했다. 아마도 오랜 법관 생활의 투영인 듯했다.



 - 서울형사지방법원 부장판사 시절 기억나는 판결이 있나.



 “사형제도에 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사형제도가 있긴 하지만, 과연 사형 판결을 할 수 있는 건지. 어쩔 수 없이 사형 판결을 두 건 했다.”



 - 어떤 사건인가.



 “아실 거다. 박한상 사건.”



 1994년, 당시 23살짜리 유학생이 한약협회 서울지부장이던 아버지 및 어머니를 끔찍하게 살해한 패륜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 1심 재판관이 김 전 총리였다.



 “박한상은 그때 혐의를 부인했다. 자기 스스로 충격이 큰 나머지 ‘나는 그런 짓을 절대 안 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부모를 수없이 난자하고, 시체까지 불태운 사건이라 사형제도가 있는 이상 도리가 없겠다 해서 사형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고등법원이나 대법원에 가서 무죄가 됐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대법원에서도 1심대로 확정을 했다. 안타까운 사건이다.”



 - 다른 한 건은.



 “모자(母子)를 무참하게 찔러 죽여서 한강변에 묻은 사건이 있었다. 범인의 아들은 미국으로 입양 간 상태였다. 아들이 나중에 커서 아버지를 찾아왔다. 아버지가 사형수로 복역하는 것을 알고, 교도소를 찾아가 아버지를 만났다. 비극적이고 안타까웠다. 두 피고인 모두 사형 집행이 안 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마음속으론 (사형 집행이 안 되는 게)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 사형제 폐지론자인가.



 “그렇다. 아직 국민 정서가 반대가 많은 것 같으나 폐지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 감사원장 재직 때 4대강 감사를 시작했는데 이후 결과가 매번 뒤바뀌었다. 박근혜정부 출범 후 나온 결론은 이명박정부 감사결과와 달리 ‘대운하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감사원장을 했을 때 4대강 사업 감사를 단계적으로 하라고 지시했다. 제가 2010년 10월 1일자로 총리로 가고, 1단계 결과가 2011년 1월에 나왔다. 1단계는 기본 계획과 발주나 설계가 적절했는지 등에 대한 사항이었다. 그때(총리 재직 시)도 4대강 사업이 대운하를 전제로 한 것이라는 주장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있었다. 내가 답변하길 ‘만약 이것(4대강 공사)이 대운하로 변질된다면 앞으로 한나라당은 파산할 것’이라고 했다. 그때 여러 상황이 국민이 운하를 반대해서 이렇게 사업을 바꿔놓은 건데 운하로 연결한다? 어떤 정치세력이 그와 같은 멍청한 일을 할 수 있겠나.”



 - 박근혜정부에서 발표한 감사원 감사 결과와는 입장이 다른데.



 “그랬다면(정말 대운하를 한 거라면) 국민이 용서하겠나.”



 - 2011년 11월 연평도 전사자 장례식 때 비를 흠뻑 맞으며 장병을 추도했을 때, 비를 맞으며 무슨 생각을 했나.



 “그때 오열하는 유족분들을 생각하면 우산을 받기가 어려웠다. 유족들과 마음을 같이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인데…(비 맞는 모습이)본의 아니게 보도가 됐다. 그게 그렇게 칭송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공직생활을 오래 했는데 역대 대통령의 장단점을 평가할 수 있나.



 “주로 법원에 있었다. 곁에서 본 분은 이명박 대통령 한 분이다. 제가 총리로서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해주고 마음을 써주신 분이었다. 고맙게 생각한다.”



 - 박근혜 대통령과 개인적 인연은 있나.



 “없다. ”



 - 박근혜정부 1년을 보면서 어떤 평가를 하는지.



 “국민 여론에 잘 나타나 있다. 남북관계나 외교관계에 대해 국민들의 지지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기본적으로 원칙을 중시하면서 중심을 잡고 해 나가시는 것으로 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다만, 사안에 따라서 조금 더 실용적으로 접근해 줬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사안도 있어 보이는데, 그런 방향으로 잘해 주실 것이라 생각한다.”



 - 실용적이라 함은.



 “원칙을 중시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덕목인데, 원칙에 크게 훼손되지 않는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융통성 있게 생각하시는 것도 좋겠다.”



글=강민석·권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