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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빈둥거리기 대마왕' 일단 집 밖으로 나섰지만 …

중앙일보 2013.12.07 00:19 종합 24면 지면보기
게으른 작가들의 유유자적 여행기

찰스 디킨스·

윌키 콜린스 지음

김보은 옮김, 북스피어

216쪽, 1만2000원




이렇게 게으른 여행자들은 처음 봤다. 으레 견문록이라면 독자 대신 여행지를 샅샅이 뒤져보겠다는 의지로 충만해야 하는데, 책의 주인공은 그저 쉬어갈 궁리뿐이다. 도시 전체가 경마로 열을 올리는데 여관방에서 꼼짝하지 않거나, 바닥·소파·탁자·의자 등 누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누워있으려 한다. ‘게으름계의 완전하고 완벽한 감람석(橄欖石)’(11쪽)이란 찬사가 아깝지 않다.



본 것도 들은 것도 없이 어떻게 책 한 권을 채울까마는, 지은이들에겐 무척 쉬운 일처럼 보인다. 이들은 19세기 대문호인 찰스 디킨스(1812~70)와 윌키 콜린스(1824~89)이기 때문이다. 디킨스는 『올리버 트위스트』 『위대한 유산』 등을 남겨 세익스피어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린 작가였고, 콜린스는 『흰 옷을 입은 여자』란 역작을 써내며 심리파·사회파 미스터리 원조 소설가로 불렸다. 앉은 자리에서도 대하소설을 너끈히 쓸 사람이다.



 두 작가의 명성에 걸맞게 책은 기행문과 소설이 반쯤 섞여있는 일전에 본 적 없는 형식이다. 디킨스가 만들던 잡지 ‘늘 쓰는 말들’에 싣기 위해 두 작가가 영국 북부지방으로 여행을 떠난 것이 계기가 됐다. 느긋한 여정을 즐기겠다는 바람과 달리, 상황은 블랙 코미디처럼 반전의 연속이다. 여관 주인에 휩쓸려 등산을 하다가 다리가 부러지는 참사를 당하고, 기차역을 구경하겠다고 나흘을 앉아서 바쁜 이들을 쳐다보다가 ‘뭔가 할 일이 있다는 끔찍한 생각’(124쪽)에 휩싸이고 만다.



급기야 여관방에서 유령도 보게 되는데, 액자처럼 끼어있는 두 편의 유령 이야기는 이 박람강기의 고갱이다. 저자들은 주변인에게 (심지어 유령에게 직접) 얽힌 사연을 취재한 뒤 미스터리 소설처럼 여행기에 슬며시 끼워 넣었다. 번역자인 김보은씨는 “당시는 추리소설이 본격 장르로 발달하기 전”이라며 “초창기 미스터리물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문학으로부터 잠시 탈출하겠다더니 결국 여관방에 누워 소설의 재료를 메모하고 있을 작가들이 눈에 선하다. 게다가 ‘잉여로움’을 예찬하는 인간적인 문필가라니. 이들의 게으름을 사하노라.



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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