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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까만 선글라스만 끼면 ‘블랙’인가

중앙일보 2013.12.07 00:13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진국
논설주간
2007년 3월 16일 미국 하원 정부감독개혁위원회. 한 금발미녀가 청문회장에 들어섰다. 미국 CIA 비밀첩보원이었던 발레리 플레임. CNN, 폭스뉴스, MSNBC 등 뉴스채널들이 일제히 그녀의 증언을 생중계했다. 시청률이 평소보다 훌쩍 뛰어올랐다. 플레임은 ‘리크게이트’로 유명인사가 돼 있었다. 그녀의 자서전은 물론 그녀를 모델로 한 영화만 두 편이 나왔을 정도다.



 2003년 보수파 칼럼니스트 로버트 노박이 워싱턴포스트에 그녀의 이름을 거론했을 때만 해도 이런 사태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할 명분을 찾고 있었다. 2001년 이라크가 니제르에서 우라늄을 대량으로 들여와 핵무기를 만들고 있다는 정보를 언론에 흘렸다. 그 사실을 입증할 현지 조사를 플레임의 남편, 윌슨에게 맡겼다. 그런데 윌슨은 거꾸로 ‘그런 거래는 없다’는 보고서를 냈다.



 그런데도 부시는 그 보고서의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일축하고, 이라크를 침공했다. 윌슨은 뉴욕타임스에 ‘내가 아프리카에서 찾아내지 못한 것’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써서 부시를 비난했고, 그로부터 일주일 뒤 노박의 칼럼이 실렸다. 누가 봐도 윌슨의 비협조에 대한 보복이었다. 스파이 한 명의 신분 노출이었지만 미국이 발칵 뒤집혔다. 결국 플레임의 신분을 흘린 부시의 최측근 두 명이 백악관을 떠났다.



 그만큼 정보요원에게 비밀은 생명이다. 과거 국정원의 원훈이 ‘음지에서 일하고…’라고 한 것도 신분을 드러내지 않겠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너무나 당연한 말을 굳이 강조한 데는 뭔가 억울함 같은 게 묻어난다. 그래서일까. 명함을 만들어 다니는 스파이를 볼 수 있는 곳은 한국뿐이다. 아, 물론 외국의 스파이들도 신분을 위장한 가짜 명함은 들고 다닌다. 우리도 공식적으로는 원장과 차장만 명함을 만들 수 있도록 제한했다. 하지만 불과 2~3년 전 종교단체와 시비가 벌어졌을 때도 국정원 담당자의 명함이 빌미가 된 것을 보면 아직도 명함이 사라진 건 아닌 모양이다. 어떤 사람은 국정원 간부라는 걸 내놓고 자랑하기도 한다. 지방도시에서는 위세를 부리는 근거가 된다.



 어디 그뿐인가. 노무현 정부 때 김만복 국정원장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현지공작원을 기자회견에 들러리 세웠다. 까만 선글라스를 낀 스파이-. 더군다나 그는 신분을 숨긴, 플레임과 같은 ‘블랙’이었다. 아프가니스탄 현지어가 가능한 흔치도 않은 ‘블랙’을 원장 들러리로 써먹어버린 것이다. ‘블랙’은 신분이 노출되면 끝이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 때 한 국정원 고위간부는 격려한답시고 중국을 돌아다니며 요원들을 집합시켜 회식을 하는 통에 ‘블랙’들이 몽땅 노출되는 사고가 터졌다고 한다. 까만 선글라스만 끼면 ‘블랙’인가.



 이번에 여야가 없애기로 합의한 출입처 문제도 그렇다. 무슨 스파이가 내가 당신들을 담당하는 스파이요 하고 선전하고 다니나. 정보수집의 효율성보다 통제를 위한 구조다. ‘묻지도 따지지도’ 못하는 국정원 예산은 과거 통치자금의 창고로 쓰이기도 했다. 청와대 비자금을 청와대 예산에 넣는 게 아니라 국정원 예산에 묻어두고, 필요하면 꺼내 가는 방식이었다. 국군사이버사령부가 국정원 소속으로 오해받는 것도 이 문제와 관련이 있다. 헌법에서 예산 심의권을 받은 국회가 그것도 보지 않으면 엉망이 될 수 있다.



 여야 지도부가 합의한 내용들은 사실 따져보면 ‘비정상의 정상화’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벌써부터 아우성이 터져 나온다. 혹은 국정원, 혹은 학자와 시사평론가의 입을 빌려 ‘국정원의 손발을 자른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사실 국정원을 취약하게 만드는 건 북한을 겨냥한 사업이 아니라 우리 내부를 겨냥한 사업이다. 정부 부처와 기업을 ‘출입처’로 다닌다고 방첩활동이 되나. ‘갑의 갑’질이나 할 뿐이다. 지금은 대통령 한 사람에게만 보고하면 된다. 그 많은 예산과 인력, 활동 내용을 대통령 혼자서 어떻게 통제하나. 결국 그동안은 국정원 마음대로 움직여온 셈이다.



 권력자도 자신이 사찰당할 땐 비판하다 집권하면 금방 달라진다. 은밀한 정보가 주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이다. 김영삼 정부 이후 여러 차례 국정원 개혁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내 사람으로 물갈이’하는 데 그쳤던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바로 나에게 도청기를 꽂을 수 있다.



 ‘특위보다 특검’이라는 야권 강경파의 주장은 오히려 이용당할 수 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공소시효도 지난 선거법을 꺼내 들고 대통령 선거를 다시 하기라도 하자는 건가. 아무리 미워도 이번 사건의 핵심은 국정원이지 박근혜 대통령이 아니다. 처음으로 외부에서 칼을 빼든 특위에 기대를 건다.



김진국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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