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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죽음의 과정이 내게 축제일 수 있게 도와주세요."

중앙일보 2013.12.07 00:13 종합 31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지난해인가, 페이스북을 통해 그와 친구가 됐다. 이성규(51) 독립 다큐 프로듀서. 인도와 네팔 등지를 여행하면서 다큐를 찍어왔다. 인도 인력거꾼의 애환을 그린 ‘오래된 인력거’는 2010년 아시아권 최초로 암스테르담 다큐영화제 장편 후보에 올랐다. 2007년 독립PD협회 결성을 주도하면서 거대 지상파 방송사에 찍혔다고도 했다.



 그의 페이스북 담벼락은 늘 기성 체제에 대한 분노와 절망으로 차 있었다. 물론 다큐에 대한 열정과 함께다. 언젠가 이 ‘분수대’ 지면에 스크린독과점 문제를 쓰면서 그를 인용하기도 했으나, 때로 그의 글에 깔려 있는 어떤 근본주의적 태도가 불편한 적도 있음을 함께 고백한다. 그러던 그가 요즘 내게 큰 깨달음을 주고 있다. 그의 글들을 곱씹어 읽으며 간절하게 그의 쾌유를 빈다. 매일 그에게 응원 글과 선물을 보내는 수많은 이름 모를 페친(페이스북 친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난 5월 간암 4기 판정을 받은 그는 요즘 일체의 치료를 중단하고 춘천의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겼다. 간간이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을 비롯해 ‘와유록’을 쓰고 있다. “늘 세상의 끝을 방랑했던 다큐 감독이 죽음과 마주한 채 누워서 쓰는 여행기”란다. 그런데 그게 너무도 담담하다. 그래서 더 마음을 울린다.



 “여행과 와병의 공통점은? 모두 자기 자신을 반성하게 한다는 것. 아직 더 많이 사랑하지 못했음을 반성한다.” “호스피스행을 결정하고 아내와 끌어안은 채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울음을 털었다. 울어서 달라질 건 없다. 이제 우리 가족의 일상에 나의 죽음이 들어왔다. 죽음은 존엄의 동반자다. 아내와 나는 그 죽음을 웃으며 맞이한다.”



 병상에서도 그는 다음 번 다큐를 위해 배낭, 여행용 스피커 등을 사들인다. “어제 오늘 음악CD들을 파일로 리핑해서 아이팟에 담았다. 일상보다 더 일상 같은 시간을 보낸다.”



 “내 상황을 팔아서라도 나를 기록하는 것. 그것이 내 앞에 직면한 죽음과의 투쟁이다.” 그가 담담함을 잃을 땐 3, 7살짜리 “딸들이 크는 모습을 더 보고 싶다. 살고 싶어요”라고 할 때다.



 “인간에게 죽음이 두려운 건,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의 과정일 겁니다. 죽음의 과정이 내게 축제일 수 있게 도와주세요. 나는 축제 현장에서 놀고 있어요. 재미나게 놀고 싶어요. 그리고 안녕이라 님들에게 인사하고 싶어요.”



 그의 영화 ‘시바 인생을 던져’가 19일 개봉된다. 15년간 인도를 방랑한 그의 자전적인 극영화다. 동료들의 노력으로 내년 개봉 예정이던 것을 앞당겼다. 여건만 허락한다면 개봉 현장에 나타나 큰 웃음을 날릴 그다. 이번엔 그의 영화를 놓치지 말아야겠다. 극장에서 뵙겠습니다. 감독님.



양성희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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