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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예 기자의 '위기의 가족'] 예비 장모가 무당이었지만…

온라인 중앙일보 2013.12.07 00:01
[중앙포토DB]
“밥그릇이 뭐가 중요해?”



결혼 준비가 한창이던 여름. 예비 남편과 대판 싸웠습니다. 신혼살림에 쓸 물건을 고르다가 밥그릇은 왜 이 비싼 걸 사야하냐, 칼은 왜 내가 사야 하냐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던 거죠. 화룡점정은 신혼집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힘을 보태 살 집을 구하면서 참 많이도 싸웠네요. 체감으로 백만 번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커플도 그랬습니다. 예비 신부에겐 빚이 9000만원이 있었습니다. 예비 신랑은 “부모님이 전셋집 구하라고 주실 돈 1억5000만원으로 빚부터 갚자”고 했다가 결국 파혼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내용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각색합니다.



남자의 이야기

“용한 우리 장모와 빚 9000만원”




용한 장모는 우리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나. 남의 인생은 그렇게 잘 내다보면서, 왜 자기 딸의 한치 앞은 못 가르쳐줄까.



그녀는 소개팅으로 만났다. 만나고 5일 만에 “이 여자다” 싶어 프러포즈를 했다. 데이트 첫날, 여자는 처음 보는 나에게 거리낌없이 집안 이야기를 털어놨다.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부도를 맞게 되면서, 집안 생계를 책임졌다.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악착같이 일해 연봉 1억원에 육박하는 잘나가는 여자였다. 이혼한 부모님 밑에서 컸는데도 구김살이 하나 없었다. 결심했다. 반듯한 그녀를 지켜주고 싶다. 이 여자를 꼭, 행복하게 해주겠다.



2주 만에 부모님께 소개를 했고, 처가에 인사를 하러 내려갔다. 택시에서 함께 내린 여자 친구가 안내한 집은 허름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려는데, 한눈에 삐죽이 솟아 있는 깃발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싶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버선발로 뛰어온 예비 장모는 한복차림이었다. 방 한 쪽에 차려진 제단. 그랬다. 장모는 ‘용한’ 무속인이었다.



인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면서, 여자친구는 내 눈치를 살폈다. 그게 안쓰러워 더 감싸주게 됐다. 그리고 10여 일 뒤. 상견례를 했다. 남들처럼 결혼 날도 받았다. 물론, 용한 장모가 날을 받아주셨다.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이라고 불리는 신부용 3종세트 예약도 했다. 다이아몬드 반지도 고심 끝에 골랐다.



“살던 원룸이냐, 신혼집이냐”



문제는 집이었다. 여자 친구에겐 빚이 많았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족은 모두 신용불량자였다. 여친 이름으로 받은 대출금은 9000만원에 달했다. 싸움의 발단이 된 건, 오피스텔이었다. 빚이 많았던 그녀는 나를 만나기 전 욕심을 부렸던 모양이다. 대출까지 받아 오피스텔을 분양받았다. 돈은 들어갔는데 착공은 계속 늦춰졌다. 애를 태우는 모습을 보니 답답했다. 무심코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투자를 한 게 잘못”이라고 했던 게 말싸움으로 이어졌다.



타박하는 듯한 말투였던 건 미안하다. 하지만 빚이 많으면 줄이는 게 먼저 아닌가. 부모님이 신혼집을 구하라고 준비해주신 돈이 1억5000만원. 이 돈이면 여자 친구의 빚 9000만원을 갚을 수 있다. 신혼집은 어차피 전세다. 남의 집이란 소리다. 어차피 남의 집, 빚부터 갚고 신혼은 여자 친구가 살던 원룸에서 시작하면 되지 않나. “빚 먼저 갚고 집은 돈 모아서 사자”는 말에 여자 친구는 “싫다”고 했다. “연봉이 1억원에 가까우니, 빚은 금방 갚을 수 있다. 남들처럼 신혼집에서 시작하면 안 되냐?”라며 펑펑 울었다.



여자의 이야기

“장모 직업에 마음 흔들리니 잠자리하자”는 그 사람




남자는 한눈에도 성실해보이었다.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 빳빳하게 다림질 된 와이셔츠. 평범하지만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란 티가 확 났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중소기업에 들어간 그는 한 달 월급이 190만 원이었다. 자신의 월급이 나보다 훨씬 적다는 걸 알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용기를 내,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 부모님의 이혼, 남동생의 학비까지 내 이름으로 대출받으며 꾸역꾸역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친구에게도 한 번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처음 본 남자에게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결혼을 하기로 한 뒤에도, 털어놓지 못한 마지막 비밀이 있었다. 엄마였다. 엄마는 내가 어릴 적 무병을 앓다 신내림을 받았다. 학교 다닐 땐 “쟤 엄마는 무당이래!” 소리가 뒤를 따라다녔다. 친구들이 수군거리는 게 싫어 한 번도 친구를 집에 초대한 적이 없었다. 그런 엄마에게 남자친구를 소개하러 가던 날. 마음이 무거웠다. 먼저, 말을 해야 하나, 망설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집 앞. 남자친구는 대문에 꽂힌 깃발을 보고도 모른척했다.



서울로 돌아온 날. 남자친구가 집까지 배웅을 해줬다. 서먹한 분위기가 싫어 “잠시 차라도 한 잔 하자”며 집으로 들였다. 이후로 남자친구는 자주 찾아왔고, 올 때마다 잠자리를 요구했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책임질 일을 하고 싶다”는 거였다. 흔들리는 마음이라니. 직접 표현하진 않았지만, 엄마를 두고 하는 소리였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잠자리를 거부하면서 남자친구와 자주 다퉜다.



불안했던 우리 사이를 갈라놓게 된 건, 집이었다. 내겐 빚이 많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전세금과 나의 빚을 합치면 ‘순수 빚’이라고 볼 수 있는 건 돈 1000만원이다. 연봉이 1억원에 가까운데, 그걸 갚는 건 큰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남들처럼 전세라도 좋으니 아기자기한 신혼살림을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빚부터 갚아야 한다”며 억지를 썼다. 남자친구의 부모님이 지원해주는 돈으로 전세를 구하고, 내가 살던 원룸을 뺀 돈으로 빚을 갚아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파혼하자”고 알려왔다.



법원 “일방적으로 혼인 거부, 위자료 2000만원 줘야”



여자는 남자를 상대로 위자료를 내놓으라며 소송을 냈다.



남자는 “여자 쪽에서 장모가 무당이라는 걸 말하지 않았고, 빚이 너무 많아 파혼할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서울가정법원은 남자의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두 사람은 혼인을 체결하려는 ‘합의’인 약혼이 성립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정당한 사유 없이 일방적으로 혼인을 거부한 것을 잘못”이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또 “약혼이 해제되면서 여자 측이 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며 “남자는 여자에게 2000만원을 위자료로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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