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규연의 시시각각] 지구의 숲에 살모사가 산다

중앙일보 2013.12.06 00:44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규연
논설위원
‘신임 총장이 무슨 살모사(殺母蛇)인가’.



 검찰 출신의 박민식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총장이 들어설 때마다 그 선배·동기가 줄줄이 물러나는 관행을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죽인다는 독사에 비유했다. 노련한 검사들이 기수 문화에 밀려 더 있고 싶어도 물러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박 의원은 이를 코믹한 비극이라고 꼬집었다. 살모사와 연관시킨다면 ‘모태 없애기’ 문화라고 부를 수 있겠다.



 모태를 없애는 독사가 사는 곳은 법조 정글만이 아니다. 최고 권력의 숲에는 더 무시무시한 살모사가 산다. 대개 새 정부는 전(前) 정부의 대통령어젠다를 없애려 한다. 그 본능은 집요하고 망라적이다. 환경 의제가 대표적이다. 현 정부는 이명박정부의 대통령 어젠다였던 녹색성장을 지우려 한다. 녹색성장위원회를 대통령에서 총리실 직속으로 바꿨다. 부서 명칭에서 ‘녹색’ 자를 뗐다. 와중에 녹색기후기금(GCF)·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같이 전 정권이 유치·창설한 국제기구의 동력은 떨어졌다.



 인과응보라고 할까. 5년 전, 이명박정부는 전 정권의 의제인 지속가능 발전을 그렇게 대했으니까.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대통령에서 환경부 장관 기구로 주저앉혔다. 지속가능발전법 대신 녹색성장기본법이라는 모법을 만들었다. 녹색성장의 깃발 아래 지속가능 발전은 무대 뒤편으로 물러났다. 지금 녹색성장기본법을 폐기하고 지속가능발전법을 모법으로 올려놓거나 새 기후변화대응법을 만들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사회변화 순환설의 딱 떨어진 재료다. 지구처럼 역사는 돌고 도나.



 다른 대통령 어젠다와 마찬가지로 녹색성장 역시 공과가 있다. 4대 강 사업과 선을 긋지 못했고 원자력 비중을 지나치게 높여 놓았다. 녹색도 아닌 사업을 녹색이라고 부르며 ‘오버’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집행력·구체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던 지속가능 발전의 빈 구석을 채웠다. 신재생에너지와 기후경제의 기반도 만들었다. 환경 분야의 세계은행이라는 GCF 사무국을 인천 송도에 유치했다.



 박근혜정부 들어 녹색성장파는 송도를 주시해 왔다. 과연 대통령은 GCF 사무국 출범식에 참석할까.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일부 언론은 ‘대통령 불참할 듯’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하지만 대통령은 송도에 갔다. 그리고 축사에서 “기후변화 대응은 창조경제”라고 선언했다. GCF에 대한 지원 의사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녹색성장파가 안도하기에는 이르다. 축사에는 ‘녹색기후기금’이라는 기구 명칭을 칭할 때를 제외하고 녹색·녹색성장이라는 표현이 들어있지 않았다.



 지속가능 발전과 저탄소 녹색성장은 상극이 아니다. 하나가 상위의 기본이념이라면 다른 하나는 이를 구현할 전략 중 하나다. 창조경제와 녹색성장 역시 마찬가지다. 새 정부가 새 대통령 어젠다를 내세운 건 당연하다. 다만 새 어젠다를 만들 때 지난 어젠다의 좋은 점을 뽑아 포용하면 된다. 무조건 모태를 없애는 살모사 정치만 하지 않으면 된다. 대통령의 송도행은 그런 발걸음이길 바란다.



 사실 살모사는 억울하다. 어미를 죽이는 뱀이라는 섬뜩한 별칭을 받을 이유가 없다. 살모사는 알을 몸속에서 부화해 분만하는 난태생 동물이다. 직접 알을 낳는 다른 파충류와 달리 큰 분만의 고통을 느낀다. 새끼를 낳고 나면 기진맥진해 한동안 움직일 수 없다. 새끼는 그런 어미 주변을 씩씩하게 맴돈다. 이 광경이 사람들의 눈에 제 어미를 잡아먹은 모습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릇된 믿음이 만든 공포의 작명이다.



 공직자든 회사원이든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면 깨끗한 청소가 꼭 필요하다는 그릇된 믿음을 갖기 쉽다. 어제 위에 앉아 있는 오늘을 보지 못한다. 새 풍토, 새 작명, 얼마든지 좋다. 순수한 악(惡)이 아니라면 그 모태까지 없애는 ‘결단’만 하지 않으면 된다.



이규연 논설위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