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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모르면 눈먼 채 미래로 나아간다

중앙일보 2013.12.06 00:20 종합 26면 지면보기
현종범씨는 “독일에선 난데없이 ‘왜 너네 나라로 가지 않느냐’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며 “한국에선 아주 편안하고 좋다”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1963년 12월 21일 한국인 123명이 이 땅을 떠났다. 닷새 전 독일과 한국 정부 간에 체결·발효된 ‘한국 광부 임시고용에 대한 프로그램’에 의해 파견된 파독 광부 1진이었다. 이 협정으로 광부 8000 명이, 이후 비슷한 협정으로 간호사 1만1000 명이 독일 땅을 밟았다.


광부·간호사 파독 50주년
서울 온 한인 2세 현종범씨
"다문화 사회 한국, 이민사 살펴야"

 오는 16일은 이 모든 것의 출발이 된 ‘한국 광부 임시고용에 대한 프로그램’ 체결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4일 주한 독일문화원에선 이를 기념하는 심포지엄 ‘조용한 이민에서 다문화사회까지’가 열렸다. 독일의 어떤 이민 그룹보다 정착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인 이주를 다룬 행사다.



 이 행사엔 독일 이주 한국인 2세 현종범(마르틴 현·35)씨가 참석했다. 그는 1966년 광부로 파견된 현우수씨와 1971년 간호사로 파견된 이순희씨의 둘째로 태어났다. 2004년 동양인 최초로 독일 아이스하키 프로무대(DEL)에 데뷔해 국내와 독일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은퇴 후엔 본 대학에서 이민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쓴 뒤 관련 저서를 내는 등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그는 “독일의 한국인 역사를 이야기함으로써 부모님께 받은 것들을 돌려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공부를 시작하고 책을 쓰면서 부모님의 고된 노동을 알게 됐다고 한다. “집에서는 일 얘기를 하지 않으셔서 힘든 일을 하신다는 걸 몰랐어요. 나중에 저널리스트 입장으로 인터뷰를 하면서, 아버지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극한의 일을 하셨다는 것, 어두운 갱도에서 미래를 찾으려 노력하셨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당시 광부들은 언어 능력도, 채굴 기술도 부족했다. 감독관의 지시를 조금만 잘못 알아들어도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배우면서 일을 해야 했다.



 “공부해야 한다”를 입에 달고 사시던 부모님 덕에 그는 한국인들의 롤모델이 됐다. 하지만 그의 삶도 만만치는 않았다. “2002년 한국에 왔을 때 처음 내가 사회로부터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독일에선 완벽한 독일어를 구사해도 외모 때문에 늘 도드라지는 존재였다는 얘기다.



 “독일은 이민 배경을 가진 사람이 1500만 명이 넘는 사실상 이민 국가지만 여전히 혈통과 뿌리(blood and soil)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법적으로만 독일인일 뿐, 항상 이방인이라고 느꼈어요.”



 이런 생각을 그는 자신의 책 『Silent-yes, Speechless-no』에서 이야기했다. “언어적 한계가 있었던 1세대는 묵묵히 일만 할 수밖에 없었죠. 2세대는 말할 수 있는데도 말하지 않고요. 그래서 독일 사회는 한국인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런 ‘조용한 이민’은 다음 세대에게 결코 좋지 않습니다.” 그는 “소수자는 주류사회가 들을 수 있도록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300만 명이 넘는 독일의 터키인들에 대해 말을 이었다. “정치적으로 행동하고 개입해 끊임없이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의 무관심에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터키도 1961년 한국과 같은 협정을 맺어 근로자를 파견했습니다. 2011년 그들이 50주년을 맞았을 때 터키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해 기념하고 독일 언론은 연일 관련 행사를 다뤘습니다. 한국에선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그는 독일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두 개의 정체성을 가지고 어떤 것이 성공한 정착인지 고민했던 입장에서 한국 사회에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독일에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과거를 알지 못하면 눈먼 채로 미래로 나아가게 된다’. 이제 한국도 이민 사회, 다문화 사회로 가고 있죠. 독일은 물론 전 세계로 이주해야만 했던 한국인들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이 다문화 사회로 가는 한국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글=홍주희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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