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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재건축·재개발 비리 방관하는 당국도 공범이다

중앙일보 2013.12.06 00:10 종합 29면 지면보기
고성표
사회부문 기자
재개발·재건축 비리 백태(중앙일보 12월 4, 5일자 12면) 보도 직후 한 통의 메일이 왔다. “기사에 조합 총회 때 정수기 임차비용으로 8000만원이 들었다는데 우리 단지 총회 (생수) 물값은 1억원이 넘는다.”



해당 조합의 총회 자료집을 확인해 보니 사실이었다. 500mL 생수 한 병 시중가격이 500원 안팎임을 감안하면 20만 병을 주문한 게 된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지만 재개발·재건축 현장에서 엄연히 벌어지는 일이다. 이 밖에 황당한 재개발·재건축 비리사례를 고발하는 하소연이 전국 각지 조합원들로부터 쏟아지고 있다.



“(재개발) 조합 있는 곳에 비상대책위원회 있다”는 말이 있다. 본지가 들여다본 15개 주택정비구역도 하나같이 비대위가 조합 측과 싸우고 있었다. 그만큼 복마전이라는 뜻이다. 일부 관련법을 개정해 관리·감독을 강화한 것도 사실이지만 현장 상황은 다르다.



서울시는 지난 10월부터 서면결의서, 조합원 명부를 공개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하지만 조합들의 비협조로 잘 시행되지 않고 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는 사업 시행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조합장이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으면 자격이 상실된다.



그런데 이런 처벌규정도 별반 효과가 없다.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보통 수년이 걸린다. 그동안 문제의 조합장은 직위를 유지하며 업무를 계속한다. 조합장을 해임하려면 총회를 열어야 하는데 조합원 명부를 조합이 독점하고 있어 총회 자체를 열 수 없다. 이 때문에 기소가 되면 즉시 직무집행정지가 되도록 관련법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제도 보완만큼 정부·지자체의 인식 전환도 시급하다. 당국은 민간영역 사업이라며 개입을 꺼린다. 서울 강북의 한 구청 관계자는 “조합마다 민형사 소송만 10여 건이 넘는다”며 “괜히 끼어들었다가 원망만 듣기 일쑤”라고 말했다. 기본적인 인허가 업무만 관여하고 가급적 모르는 척하는 게 낫다는 식이다. 이는 불법을 용인하고 오히려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진다. “당국도 공범”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



당국의 수수방관 속에 부풀려진 사업비가 비자금화돼 뒷돈으로 흘러가고 결국 탈세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전국 1800여 개 재개발·재건축 사업구역에서 수조원대의 지하경제가 형성돼 있다는 게 결코 과장이 아니라고 말한다.



말로만 지하경제 양성화를 외칠 게 아니다. 재건축·재개발사업에 대한 과감한 수술을 서둘러야 한다.



고성표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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