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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14좌 베이스캠프를 가다 <18> 초오유(하)

중앙일보 2013.12.06 00:01 Week& 6면 지면보기



한밤중 정상 향하는 불빛들 … 산사나이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세계 6위봉 초오유(Cho Oyu·8201m) 북면 베이스캠프(5700m·이하 BC)는 히말라야 14개 봉우리 BC 중에서 가장 높다. 반면에 BC까지 가는 길은 편하다. 중국이 베이스캠프 코앞까지 군사 작전 도로를 냈기 때문이다. 베이스캠프 앞에서 고래 등처럼 보이는 낭파라(Nangpa La·5716m) 고개를 넘으면 남쪽으로 네팔 땅이 이어진다. 히말라야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낭파라 고개에는 숱한 역사와 전설이 서려 있다.



잘 뚫린 신작로 같은 초오유 BC 길



미들캠프(5300m)에서 고소 적응을 하며 하룻밤을 묵은 우리 일행은 지난 9월 30일 오전 10시께 초오유 BC로 향했다. 티베트 가이드 솔롱 소남(38)은 미들캠프에서 BC까지 “네댓 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불도저로 낸 길은 트럭이 다닐 만큼 넉넉했다. 길 옆으로는 빙하를 따라 흘러내린 빙퇴석 돌무더기가 거대한 제단처럼 도열해 있었다. 잿빛 빙퇴석 표면에 내리쬐는 강렬한 볕이 눈이 부실 정도로 쨍했다. 눈이 없는데도 선글라스를 끼지 않으면 두 눈이 멀어 버릴 것 같은 강렬한 볕이었다.



초오유 BC로 가는 길은 초오유 북면에서 딩그리(Dingri·4300m) 마을로 흐르는 낭파(Nang pa) 빙하에서 살짝 벗어나 있었다. 솔롱은 “큰 길을 내기 전인 8년 전까지만 해도 빙하를 따라 걸었다”고 말했다. 그는 “옛길을 따라 곧장 가면 낭파라 고개에 이른다”고 했지만, 새길 위에서 옛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옛길은 위험했다. 우리가 지나간 한 달 뒤, 빙하를 따라 걷던 한 트레킹팀이 눈사태를 맞아 현지인과 트레커 등 여러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애초 중국티베트등산협회가 허가한 정규 트레일이 아닌 옛길을 걷다 사고를 당했다.



낭파라 고개는 16세기 이후 티베트 내란을 피해 네팔로 넘어간 이민 루트였다. 현재 네팔 고산족을 이르는 셰르파(Sherpa)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했다. ‘셰르(Sher)’는 동쪽, ‘파(Pa)’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티베트에서 네팔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셰르파는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 쿰부(Kumbu) 계곡을 따라 남하했다. 쿰부는 셰르파 밀집 지역이 됐다. 근래에는 괴나리봇짐을 지고 낭파라를 넘어 쿰부 아래 고쿄(Gokyo)·타메(Thame)를 지나 남체 바자르(Manche Bazar·3440m)까지 가서 장을 열기도 한다. 장돌뱅이 대부분은 초오유 북면에 살던 딩그리 마을 사람들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중국이 낭파라 고개를 통제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1965년 중국과 네팔을 잇는 G318국도가 개통돼 자동차로 히말라야를 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딩그리 마을에도 험난한 낭파라 고개를 향해 야크를 몰고 갈 수 있는 젊은이는 많지 않다. ‘우정공로(Friendship Highway)’라는 이름이 붙은 G318국도는 트레킹 시즌 때는 중국 상인보다 외국인 여행객이 더 많다.



칼날처럼 빛나는 낭파라 고개



우리 일행을 안내하는 현지 스태프 중에는 이름과 나이가 똑같은 솔롱 소남이 있었다. 그는 딩그리에서 평소 잡화점을 운영하다가 원정대나 트레킹팀이 꾸려지면 요리사로 합류해 돈벌이에 나선다.



가이드 솔롱 소남과 쿡(Cook) 솔롱 소남은 고향도 딩그리로 같다. 우리는 가이드를 ‘솔롱’, 쿡을 ‘소남’이라 구분 지어 불렀다. 소남은 어릴 적 낭파라 고개를 넘은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한두 살 때 어머니 등에 업혀 고개를 넘은 적이 있어요. 누나도 같이 갔습니다. 어머니와 누나는 얼마 안 있어 고향으로 돌아가고, 나만 카트만두에 남았죠. 그때부터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사원에서 승려로 지내다 고향으로 돌아온 지 십 년째입니다. 지금은 예쁜 아내와 아들, 딸이 있고요.”



그는 품 속 깊은 곳에 넣어둔 지갑 속에서 아내와 아이들의 사진을 꺼냈다. 소남의 어머니는 가난을 벗기 위해 젖먹이를 등에 업고 험난한 눈 고개를 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네팔이라고 외지인이 밥벌이할 만한 일이 있을리 만무했을 테고, 입 하나 던 것으로 만족하고 딸만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소남은 “나는 운이 좋아 고향으로 돌아와 늦은 나이에 결혼도 할 수 있었지만 내 친구 (가이드) 솔롱은 아직 미혼이다”며 깔깔대며 웃었다. 험난한 인생사를 가진 사람치고는 낙천적이었다. 넉살도 좋았다. 가정 형편을 얘기하고 난 다음에는 우리에게 은근슬쩍 “옷이나 장비를 달라”고 말했다.



우기가 끝난 가을 낭파라 고개는 고래 등 같은 흰 눈을 이고 있었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를 잇는 눈 쌓인 능선은 예리한 칼날처럼 보였다. 오후의 햇살이 내리쬐어 『삼국지』에서 관우가 사용했던 청룡언월도의 칼날처럼 희게 빛났다. 낭파라 고개가 보이면 BC에 다 왔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각국 원정대가 차린 베이스캠프가 거대한 초오유 북서면을 등지고 자리 잡고 있었다.



정상으로 향하는 발자국도 선명



이날까지 초오유를 찾은 원정대는 열세 팀이었다. 우기가 끝나기 무섭게 등반이 이뤄져 9월 20일께 등정을 하고 벌써 하산한 팀도 있었다. 네팔 카트만두에 사무실을 둔 원정대 에이전시 ‘아시안 트레킹(Asian Trekking)’의 텐징은 “올해는 날씨가 좋아 많은 사람이 정상에 올랐다”고 했다.



해발 5700m BC에서는 초오유 북면 등반 루트가 훤히 보였다. 수십여 명의 등반대원과 셰르파가 남겨놓은 족적이 설면(雪面)에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이른바 노멀 루트(Normal Route)로 발자국 덕분에 머릿속으로 금방 루트를 그릴 수 있었다.



텐징은 “바로 앞 봉우리를 넘으면 캠프1(6400m)이고, 설면을 올라서면 캠프2(7100m), 그리고 정상부 록밴드(머리띠처럼 보이는 바위 지대) 아래에 캠프3(7550m)가 있다”고 설명했다. 8000m 고봉치고 힘들지 않은 산이 없겠지만, 그래도 초오유는 다른 산에 비해 어렵지 않은 편이다. 여러 봉우리를 경험한 산악인의 대체적인 평이 그렇다.



누구는 ‘산이 거기에 있다’는 실재만으로도 등반 욕심이 생긴다는데, 거대한 설산의 루트를 직접 바라보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일었다. 그러나 산 아래서 올려다보는 루트는 장강(長江)처럼 멀어보였다. 쉽게 도전장을 내기 힘든 거대한 벽이었다.



BC에서 맞는 밤은 어김없이 고소 증세가 찾아온다. 돌무더기 비탈에 친 텐트가 불편해 밤새 뒤척였다. 잠이 잘 오지 않아 자정을 넘은 시각 텐트 밖으로 나와 찬 바람을 쏘였다. 뜻밖에도 초오유 봉우리에 불빛 십수 개가 보였다. 캠프3를 출발해 정상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는 사람들이었다. 헤드랜턴이 비추는 8000m 설원은 푸르스름한 빛을 내고 있었다. BC의 날씨는 고요했지만 클라이머가 걷는 7000m 이상 설원에는 ‘죽음의 올가미’가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다음날 우리 일행은 6시간 동안 올라간 길을 불과 3시간 만에 내려왔다. 미들캠프에서 BC까지 초오유 북면 트레킹은 단 이틀 만에 끝이 났다. 왕복 20㎞로 굳이 야크에 짐을 싣지 않더라도 텐트와 침낭, 최소한의 식량만을 준비해 백패킹(Backpacking)으로 갈 수 있는 쉬운 길이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베이스캠프까지였지만, 숱한 역사와 전설을 간직한 낭파라 고개를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정치적인 문제 등으로 중국 정부가 낭파라 패스 야크 캐러밴을 금지하고 있지만 만약 허락한다면 언젠가 고갯마루까지 꼭 가보고 싶은 길이다.



◆초오유 베이스캠프 트레킹 정보=초오유 BC까지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네팔 카트만두에서 지프를 타고 네팔과 중국 국경을 넘는 길로 딩그리까지 2~3일이면 닿는다. 중국 라싸에서 지프를 타고 접근하면 사나흘 정도 걸린다. 초오유는 국경 지역이라 비자 말고도 중국티베트등산협회가 발급하는 등반허가증을 받아야 한다. 여행 적기는 봄·가을이며, 베이스캠프 트레킹은 열흘 정도 걸린다. 국내에서는 ‘M투어(02-773-5950)’ ‘유라시아트렉(02-737-8611)’에서 상품을 내놓고 있다.



초오유(티베트)=김영주 기자

사진=이창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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