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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몽 vs 아시아 중시 … 딜레마에 빠진 한국

중앙일보 2013.11.29 00:51 종합 3면 지면보기
중국이 28일 한·중 국방전략대화에서 우리 측의 중국 방공식별구역(CADIZ) 조정 요구를 거절하면서 한·중 간 1차 조율이 실패로 끝났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급속도로 가까워진 한·중 전략적 동반자관계가 무색해진 순간이었다. 북핵 문제와 일본 과거사 문제 등에서 공조해오던 중국이지만 자국의 이익이 걸린 방공식별구역 문제에선 한 발도 양보하지 않았다.


중, 한국과 전략적동반자 맺고도
방공식별구역 문제선 양보 안 해
한, KADIZ 늘리면 중·일과 충돌
미국과 공조 강화 땐 신냉전으로

 한국의 선택지는 좁아지는 모양새다. 우리의 방공식별구역(KADIZ)을 확대하거나 미·일과의 공조를 통해 해결하는 방안 정도가 남아 있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위험을 안고 있다. 우선 정부가 일방적으로 KADIZ를 확대할 경우 중첩지역에서 한·중·일 3국 간에 전투기 대치라는 극단적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또 일본의 동해지역 방공식별구역(JADIZ) 확대나 중국의 서해 CADIZ 확대를 초래할 가능성도 높다.



 한·미·일 공조도 쉽게 쓸 수 있는 카드는 아니다. 그동안 공들여온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는 데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나 미사일방어(MD)체계로 대표되는 중국 봉쇄전선으로의 참여신호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한·미·일과 중국이 대치하며 동북아 신냉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당장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미 관련 내용을 미국과 일본에 설명하고 교섭을 했기 때문에 (미·일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고 강조했다.



 중국이 강경하게 나오는 건 이 문제가 미·일과 중국이 부딪치는 패권경쟁의 구도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은 “봉쇄와 진출이라는 미·중의 국가전략이 부딪쳐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중국 입장에서도 한국의 신뢰를 잃는 점을 감수하고라도 강경하게 나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최근 국가안전위원회(중국판 NSC)를 발족시키는 등 미·일을 견제하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해오고 있다. 이번 CADIZ 선포도 미국의 중국 봉쇄전략에 대응한 전략적 선택일 수 있다. 외교 전문지인 포린폴리시는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를 새로운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힘을 과시하는 ‘차이니즈 드림(中國夢)의 시도’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중국의 이런 꿈이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중시정책(Pivot to Asia)’과 정면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정문제 등으로 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 전략을 구상 중인 미국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등에서 양국 충돌을 좌시할 수 없는 입장이다. 미국 척 헤이글 국방장관은 B-52 전폭기가 무력시위 성격을 띤 비행을 하고 난 뒤인 27일 오전 오노데라 이쓰노리 일본 방위상과의 통화에서 “센카쿠는 미·일 상호방위조약이 영향을 미치는 지역”이라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는 이와 관련해 “방공식별구역 선포 사태 이후 한국 정부도 중국 조치를 비판하는 등 한·중 연대의 걸림돌이 생겼다”며 “이런 흐름이 한·미·일 공조를 부추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몽’과 미국의 ‘아시아 중시정책’의 충돌은 ‘아시아 패러독스’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 간 경제 협력은 활발해지고 있지만 정치·안보불안 요인이 더 커지는 괴리현상은 한국을 어려운 처지로 몰아넣고 있다. 황지환 서울시립대(국제관계학) 교수는 “박근혜정부가 아시아 패러독스 해결을 위해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을 세웠지만 지금 여건은 ‘신뢰’와 ‘협력’이 설 자리가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과거사 문제로 인해 일본과의 관계 냉각이 길어지며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의 시동조차 걸지 못한 상황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추진, 미·일 동맹 강화, 중국의 일방적 방공식별구역 선포가 이어지며 안보 여건이 악화됐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는 지난 6월 한·중 정상회담 이후 ▶양제츠(楊潔<7BEA>) 국무위원-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대화 ▶인문교류 공동위 설치 ▶영사협력 강화 등 양국이 차곡차곡 신뢰를 쌓아가던 와중에 발생해 충격이 크다. 한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지지하며 미국에 한 차례 뒤통수를 맞고, 이번에 중국에 뒤통수를 재차 맞은 셈”이라며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베이징=최형규·워싱턴=박승희, 서울=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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