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사묘역 안장된 장군 채명신
맹호부대 1기갑 연대 11중대 1소대 부분대장으로 1965년 10월부터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칠순의 김남수 예비역 병장. 그는 쌀쌀한 날씨에 초대장 없이 영결식장을 찾았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장군이라고 결코 폼 잡는 일 없이 항상 소탈했다. 내가 말라리아에 걸려 병상에 누웠을 때 직접 방문해 위로를 해줬다. 계급을 떠나 항상 부하들을 가족처럼 대해준 고인의 인품을 존경해왔다”고 했다.

베트남전쟁 당시 고인의 부관을 지낸 박희모(6·25 참전 유공자회 회장) 예비역 중장은 추도사에서 “1968년 1월 베트콩의 구정공세 때 사령관의 공관까지 공격받았지만 고인은 가족을 돌보기보다는 분연히 전투복을 갈아입고 전장으로 달려갔다”고 회고했다. 이어 “고인은 장군묘역을 마다하고 사랑하는 부하들이 있는 병사묘역에 묻히길 원했다”며 유언을 소개했다. 이 대목에서 상당수 노병들이 얼굴을 가리지 않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보였다. 건군 사상 최초로 장군묘역에 묻히는 특전을 내던진 고인의 행동이 심금을 울린 것이다.
3성 장군 출신인 고인이 봉분을 쌓고 큰 비석을 세울 수 있는 26.4㎡(8평)짜리 장군묘역이 아니라 병사들과 같은 크기의 비석에 3.3㎡(1평) 땅에 평장을 한다는 소식은 이날 하루 종일 화제가 됐다. Rainy-day라는 ID를 쓰는 한 네티즌은 중앙일보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살아선 조국을 지키고, 죽어선 전우를 지키겠다는 위대한 군인 채명신 장군님. 삼가 명복을 빕니다”라고 글을 올렸다.
장례위원장인 권오성 육군참모총장은 조사(弔辭)에서 “수많은 사선(死線)에서 죽음에 초연했던 월남전의 영웅. 고인의 업적은 육군의 역사와 전우들의 가슴속에 오래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월남전 파병 장병 위문 공연 시절부터 고인과 친했다는 가수 패티김이 조가(弔歌) ‘내 영혼이 은총 입어’를 불렀다.
오후 2시30분. 고인은 유언대로 서울현충원 제2 병사묘역에 안장됐다. 베트남 참전전사 병사 971명이 잠들어 있는 곳이자 고인이 생전에 자주 찾았던 곳이다. 육군 병장 김영철, 육군 상병 장상철, 육군 병장 홍권표 등 72년에 전사한 병사들의 키낮은 비석들이 똑같은 눈높이로 고인을 맞았다. ‘참군인’은 자신이 그렇게 사랑했던 전우들의 곁으로 돌아갔다.
글=장세정 정치부문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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