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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의 시시각각] 우리에게 맹수 가둘 자격 있나

중앙일보 2013.11.29 00:34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규연
논설위원
미국 플로리다 지역 동물원의 수마트라 암컷 호랑이 엔살라. 동물원에서 태어날 때부터 비극은 시작된다. 어미는 엔살라와 함께 낳은 다른 새끼를 물어 죽인다. 이후 어미도 아비에게 물려 죽고 만다. 좁은 우리에 갇힌 맹수들 사이에 가끔씩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행동이 한 맹수 가족을 파국으로 몰았다.



 동물원의 맹수는 야생을 잊어야 편해진다. 하지만 엔살라는 달랐다. 길들여지기를 거부했다. 야생의 고고함을 지닌 엔살라에게 사육사들은 동물원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준다. 어느 날, 신참 사육사가 먹이를 주러 엔살라의 우리를 찾는다. 신참이 실수로 열어둔 문을 통해 여왕은 우리 밖으로 빠져나온다. 관람객 사이를 어슬렁거리는 호사는 짧게 끝난다. 곧바로 출동한 무기대응팀에 세 발의 총을 맞고 생을 끝낸다. 2000년대 후반, 탐사보도 기자인 토머스 프렌치가 4년간 동물원을 관찰하고 쓴 글에 등장하는 호랑이 이야기다. 기자는 이 사건을 그리스신화적 비극이라고 표현했다.



 신화적 비극은 미국인에게 동물원 문제를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다. 광활한 땅을 활보해야 할 맹수를 쇼윈도에 놓고 전시하는 방식이 옳은가. 21세기에 인간과 동물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나. 호랑이의 우리 공간은 야생 활동범위의 1000분의 1이다. 북극곰 우리는 100만분의 1에 불과하다. 좁은 공간이 맹수에게 주는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으로 치명적이다. 동물원 내부에 도사린 정치경제적 함정도 발견된다. 동물원은 호랑이·코끼리 같은 인기 동물을 마구 번식시켰다. 우리의 면적, 사육사 수는 안중에 없었다. 신참이 호랑이 우리에 들어간 것도 인력 부족 때문이었다. 엔살라 사건이 있기 전, 일부 사육사는 이런 문제를 제기했다. 동물원 경영자는 이들을 해고해 버린다.



 최근 서울대공원에서 벌어진 참사는 엔살라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시베리아호랑이 로스토프가 사육사를 물고 우리 밖으로 나오려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거대 동물원의 어처구니없는 속살이 하나 둘씩 드러나고 있다. 평생 곤충관에서 일해 온 사람을 호랑이 우리에 배치했다. 맹수 우리에서는 신참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 사육사가 동물원장과 불편한 관계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동물원이 사육사 수를 늘리지 않고 호랑이 같은 인기 동물을 증식시켜 왔다는 증언도 나왔다. 2인 1조 근무수칙 등은 지켜지지 않았다. 맹수 우리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여우·새 우리에 맹수들을 집어넣고 관람시키는 편법도 썼다.



 인간은 오래전에 잃어버린 야생을 즐기기 위해 동물원에 간다. 이 엔터테인멘트를 지탱하는 건 야생동물의 고통과 사육사의 위험이다. 서구 사회에서 끊임없이 동물원 존폐론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세계의 동물원들은 비판에 경청하며 지속가능한 길을 모색해 왔다. 전시 관람에서 자연학습으로 운영 방식을 바꾸려 한다. 동물 복지와 사육사의 양심을 반영한 기준을 세우려 한다.



 우리 사회는 성장을 목표로 바쁘게 달려 왔다. 그러다 보니 배려의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의제가 너무 많다. 동물원 문제도 그중 하나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블랙박스가 됐다. 이제는 블랙박스를 열어 부실·부조리의 신호를 잡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물원의 지속가능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언젠가 미래 세대에 의해 야만이라는 낙인이 찍힐지 모른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맹수를 우리에 가둘 최소한의 자격은 갖춰야 한다.



 동물원 우리 앞에 서 본다. 코끼리는 몸을 앞뒤로 흔들고, 원숭이는 끊임없이 철조망을 오르내린다. 늑대는 쉴 새 없이 어슬렁거린다. 어느 의사에게서 들었다. 정신분열증 환자에게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하는 상동증(常同症)이 나타난다고. 동물원은 즐거우면서 우울한 공간이다.  



이규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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