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소문 포럼] 격랑 동북아 … 초나라 노래가 안 들리나

중앙일보 2013.11.29 00:32 종합 32면 지면보기
강영진
논설위원
국제적 컨설팅 회사 맥킨지 관계자가 최근 한국 경제를 놓고 ‘끓는 물 속 개구리’라는 비유를 쓴 적이 있다. 서서히 데워지는 물속에서 넋 놓고 있다가 결국 죽게 될 거라는 불길한 주장이다. 한국의 안보 상황이 경제보단 오히려 더 ‘끓는 물 속 개구리’ 처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중국의 굴기(起)가 갈수록 동아시아 지역의 세력판도를 거칠게 흔들어대고 있다. 머지않아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이 만들어놓은 국제질서를 무너뜨리고 자신이 패권을 행사하는 새 질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볼 미국이 아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미·일동맹 강화 등 다양한 정치·경제·군사적 수단을 동원해 중국의 굴기를 저지하고 나섰다. 최근 수십 년 존재감이 약해지던 일본 역시 미국이 펼치는 방어전에서 선봉 역할을 자임하면서 권토중래(捲土重來)를 시도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한국은 가랑이가 찢어지는 중이다. 6·25전쟁 이래 한국의 안보와 성장에 절대적 공헌을 해온 미국이 대중국 포위망에 가담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이 빚쟁이가 아닐진대 괜스레 빚 갚으라는 것처럼 느껴진다. 걸핏하면 속을 긁는 일본과 무작정 사이좋게 지내라고 해서 그런가. 중국 역시 한국의 최대 교역국임을 은근히 떠올리면서 알아서 기라는 투다.



 북한은 한국이 처한 곤경을 최대한 ‘활용’하는 중이다. 거의 매일 남쪽을 향해 저주를 퍼붓고 있다. 미·일과 중국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한국을 음흉하게 비웃는 게 느껴진다. 일본을 북한과 같은 반열에 놓는 건 무리겠지만 한국이 곤경에 처한 걸 고소해하는 분위기가 없다고 말 못한다.



 이처럼 한국은 사면초가(四面楚歌) 신세다. 그런데 우리 지도자들은 위기가 닥치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딴청만 부리고 있다. 1년 넘게 뻣뻣한 이념투쟁에 매달려온 정치인들은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르느라 사방에서 들려오는 처량한 고향 노래 가락이 들릴 리 없을 것이다. 당국자들도 마찬가지다. 속생각이 어떻든 사석에서든 공석에서든 위기를 말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그보다는 자칫 대통령 심기를 상하게 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할 뿐이다.



 대통령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우리를 압박해오는 주변국들을 향해 할 말은 멋지게 하고 안 할 말은 가려가며 능수능란하게 난국을 헤쳐나가는 모습이 안 보인다. 그보다는 사리에 안 맞는다 싶은 국내 사안들에 대해 차갑게 일갈하는 강퍅한 모습만 부각돼 있다. 뛰어난 외국어 실력과 우아하고 품위 있는 몸가짐으로 외국 순방길에 각광받은 만큼 남은 건 없어 보인다.



 초왕(楚王) 항우(項羽)는 사방에서 고향 노래가 들려오자 패망을 절감하고 자결한다. 구한말 조선의 패망을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과연 오늘의 한반도 정세를 구한말 시절에 빗대 심각하게 걱정하는 글들이 여기저기 실렸었다. 그렇지만 필자는 설마 그러기야 할까 생각한다.



 구한말에 비해 오늘날 대한민국의 위상이 크게 다르다. 국민들의 진취성이나 나라의 개방성은 천지개벽한 수준이다. 한국은 이미 선진국 클럽 문지방을 넘어섰다. 일본과 중국·미국은 물론 북한까지 포함해 지금의 주변국들이 일본이나 러시아·청나라처럼 노골적이고 천박한 제국주의 국가들도 아니다.



 그렇지만 사방에서 음산한 노래가 들려오는데 지금처럼 지도자들이 마냥 넋 놓고 있다면 언젠가는…. 에이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망상을 하기보다 난국을 헤쳐나갈 방법을 찾는 게 생산적이다. 필자 능력에 정답을 찾는 건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렇지만 자유로운 상상은 해볼 수 있다.



 한·미동맹은 언제까지 지금처럼 튼튼할까. 북한이 망한다는데 정말 그럴까. 핵을 포기하면 살아남을까. 중국이 미국처럼 든든한 우방이 될 수 있을까. 일본은 언제까지 미운 짓을 할까. 이렇게 마구 상상을 펼쳐 놓고 하나하나 지웠다 썼다 하고 있다. 맞아 지금은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을 해야 할 때다. 생각의 끝은 억지로라도 이렇게 끌고 간다. 이 모든 걸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묘수가 없을까.



강영진 논설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