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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30억 '실크로드 경제권' 대장정 시작됐다

중앙일보 2013.11.29 00:10 경제 10면 지면보기
김용환
수출입은행장
‘AH1 일본-한국-중국-인도-터키’. 얼마 전 지방 소재 고객 기업 간담회를 마치고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이 같은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암호 같은 기호와 낯선 여정이 쓰인 이 상징적 이정표는 ‘아시안 하이웨이(Asian Highway) 1번 도로’를 알리는 걸로, 전체 8개 간선도로 가운데 첫 번째 길이었다. 다 합치면 아시아 32개국을 횡단하는 총 14만km의 ‘현대판 실크로드’가 완성된다. 아시아에서 유럽까지 물류 흐름을 원활히 할 수 있는 커다란 대동맥인 셈이다.



  아시안 하이웨이가 연결될 유라시아 대륙은 전 세계 육지 면적의 약 40%, 인구의 71%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대륙이다. 그 동쪽 시작점에 우리 한반도, 대한민국이 있다.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은 번영의 동북아시대를 대륙으로 확장하고 새로운 소통의 길을 열기 위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제안했다. 단절과 고립, 긴장과 분쟁을 극복하고 소통과 개방으로 평화롭게 교류하면서 함께 번영하는 새로운 유라시아를 건설하자는 게 제안의 배경이다. 궁극적 목표론 ‘하나의 대륙’ ‘창조의 대륙’ ‘평화의 대륙’을, 그 구체적인 우선 과제 중 하나론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를 제시했다.



 중국과 러시아도 이와 궤를 같이하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9월 중국과 중앙아시아 각국의 교통망을 연결해 태평양에서 발트해까지 연결되는 하나의 통로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른바 ‘30억 인구의 실크로드 경제권 구축’으로, 중국과 중앙아시아의 거대 시장을 하나의 단일 경제협력체로 만드는 게 핵심이다. 러시아도 2025년까지 극동 및 바이칼 지역의 교통, 에너지, 인프라 구축 등을 위해 약 39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극동발전전략 2025’를 발표한 바 있다.



 이처럼 동북아시아 지역에 세계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지만 여전히 북한은 배고픈 독자성을 고집하고 있다. 우리가 한반도의 윗부분을 활용하지 못한 채 바다를 통해 세계와 교류하는 ‘섬 아닌 섬’으로 살아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북한을 세계 협력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첫 단추가 바로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 Greater Tumen Initiative)’이다. GTI는 당초 두만강 접경지역을 국제자유무역지대로 조성하기 위해 유엔개발계획(UNDP)이 추진한 ‘두만강유역개발사업(TRADP)’에서 출발했다. 한국·중국·러시아·몽골 등 동북아 지역의 다자간 제도적 경제협의체인 GTI는 현재 차관급 연례협의체를 통해 주요 전략과 정책방향을 결정하고, 5개 사업분야별(교통·무역·투자·관광·에너지)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동북아 교통망 연구를 통해 한반도와 대륙을 연계하는 종합교통계획을 수립하고, 북한의 나진부터 중국의 훈춘, 러시아의 하산을 연계하는 복합물류시스템 구축을 활발히 논의 중이다. 지난해엔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4개 회원국의 수출입은행들이 모여 금융협의체도 발족시켰다.



 지난 13일 방한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과 만나 북한과 러시아가 공동으로 추진 중인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들의 진출을 허용하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동아시아 지역의 대유럽 수출 화물이 시베리아를 통해 운송되길 희망하는 러시아 측 이해와 극동을 기점으로 대륙으로 나아가려는 우리 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볼 수 있다. 수출입은행도 러시아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들을 측면에서 지원 사격하기 위해 총 25억 달러의 금융패키지를 제공하는 양해각서를 러시아 측과 체결했다. 한반도와 중국·러시아 등 동북아 접경지역의 개발은 물류시스템 구축과 에너지·자원 확보뿐 아니라 빗장을 굳게 걸어잠근 북한을 국제무대로 나오게 하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는 점에서 그 전략적 가치는 상당하다.



 이렇듯 유라시아 대륙으로 향한 길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곳곳에서 새로 놓이고 있다. 동양사상에서 ‘길’은 땅 위의 도로(路)와 더불어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심성(道)이란 의미로도 쓰였다. 이제 북한도 온전히 한반도를 대륙에 연결시키는 국제협력의 길(道)에 동참해야 한다. ‘군자(君子)가 되어 대로행(大路行)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용환 수출입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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