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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 포커스] 생산직 인력 거의 ‘멸종’ … 공장 기피 풍조도 팽배

중앙일보 2013.11.29 00:10 4면 지면보기
러시아에서 ‘노동 찬가’는 더 이상 없다. 옛 사회주의에서 공장 근무를 해본 40대 이상 정도나 생산 현장에서 일한다. 트베리시의 자빌 TV 조립공장에서 젊지 않은 근로자가 조립을 하고 있다. [리아 노보스티]


“우리는 목재 선반공이나 기계공 자리를 굳이 러시아인으로 채우려 하지 않는다. 이런 전문가들은 없다. 기업들은 보다 싼 임금으로 벨라루스에서 노동자들을 데려온다. 젊은 대체인력이 없어 아직 일할 수 있으면 나이가 들어도 러시아 노동자를 계속 쓸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는 위기라 할 만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리크루팅 에이전시의 마르타 라옙스카야 프로젝트 팀장의 말이다.

악순환에 빠진 러시아 노동시장
소련 붕괴로 공장·기업 문닫자
기술자도, 기술학교도 사라져
젊은 세대는 사무실 근무만 선호



소련 사회주의 시절엔 대학과 직업학교 졸업 노동자 수를 수요에 맞춘 엄격한 배정시스템으로 해결했다. 이 시스템은 당시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졸업자의 거주지역이 고려되지 않은 채 배정됐기 때문이다. 젊은 대학 졸업자가 친척과 친구·지인 하나 없는, 현재 거주지와 정반대로 떨어진 곳에 파견돼 몇 년씩 일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신 모든 공장과 제조업체들은 충분한 노동력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소련 붕괴 후 1990년대 러시아에선 산업, 공장, 기업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수백만 노동자들은 갈 곳을 잃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머리를 썼다. 어찌어찌해서 사업을 이어가거나 이들을 돕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들 옆에서 ‘돈이 떨어지길’ 기다리기도 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직업은 없었다. 러시아 연방 통계청의 ‘1992~2008년 러시아 사회·경제지표’에 따르면 이렇게 해서 90년대 말, 러시아에서는 전문인력이 사라져갔다.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깨끗한’ 직장. [이타르 타스]
이후 노동력에 대한 수요는 다시 생겼지만, 전문인력은 이미 사라졌다. 소련 붕괴 후 요리사·목수·미장이·정비공같이 구체적인 분야의 전문가를 키우던 전문 직업기술 교육기관들도 대부분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어디에서도 새로운 인력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러시아 사회풍조도 변해갔다. 페레스트로이카를 거치며 ‘과도한 노동 숭배’도 끝났고 ‘공장 근무는 촌스러운 일’이란 인식이 퍼졌다. 오늘날 자식이 노동자가 되길 바라는 부모는 없다. “지금이 전시상황도 아닌데 공장에서 꼭 일해야 하나”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레온티 비조프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사회학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세계적인 신산업혁명의 흐름 속에서 대도시의 기능이 서비스업으로 몰리는 경향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요약한다. 그에 따르면 젊은 세대는 생산현장에서 근무하려 하지 않는다. 핵심 생산인구 중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40대 이상이다. 그러다 보니 생산보조원이라는 자리는 자신의 가능성을 포기한 사람과 달리 갈 데가 없는 사람, 또 늘 약간 술에 취해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동시에 대도시 젊은이들도 먼지와 더러움, 추위가 없는 사무실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보수를 받으며 편안한 환경에서 일하는 것에 물들어버린 응석받이가 되고 말았다.



그는 “사무실에서 ‘서류’ 작업을 하는 일이나 공장 노동이나 월 급여는 3만~4만 루블로 비슷하다. 그러니 젊은이들이 사무실을 택할 것은 뻔하다. 이 월급으로 작업대에 서려는 사람은 응석받이가 아닌 기성세대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연방은행 자료에 따르면 일자리는 풍부해도 현실에서는 전문학교 졸업 후 고임금 직종을 찾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역시 연방 통계청의 같은 자료에 따르면 이 공백을 우크라이나·벨라루스·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캅카스와 같은 인접 지역 이민자들이 메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돈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소비에트에 대한 향수 때문에 러시아로 왔다. 그들은 자신을 이방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모스크바에는 러시아인들로는 채울 수 없었던 수천 개의 일자리를 그들이 채운 것이다.



이주민들은 청소, 짐 나르기, 막노동, 아스팔트 깔기 등 가장 어려운 일부터 찾아서 하기 시작했다. 매일 먼지구덩이 속에서 일해야 했고, 심지어 먼지에 뒤덮여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했다. 러시아인들은 이주민들이 받는 만큼의 쥐꼬리만 한 봉급을 받으면서 이렇게 어렵고 고단한 일을 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을 뿐이다.



그들이 받는 임금은 모스크바에선 적은 돈이지만 고국으로 돌아가면 ‘떵떵거릴 만한’ 돈이다. 이주민들은 더 악착같아졌다. 러시아인이 떠난 빈자리만 찾아다니지 않고 러시아인보다 30~50% 싸게 월급을 받고 사회보장도 요구하지 않으며 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장, 다음엔 상점. 그리고 나중에는 레스토랑에서도 일하기 시작했다. 청소부로 시작해 종업원으로 일하더니 요리사가 된 것이다. 실제로 일자리를 얻는 데 성공하는 건 이민자들이다. 그들은 안전조치가 준수되지 않고 보호장비도 없는 극한상황에서도 일할 준비가 돼 있다.



이제 모스크바 고용주들은 큰 고민을 안게 됐다. 한편으로는 값싼 이주 노동력을 활용해 비용을 절감하고 싶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문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노동자들 가운데는 중등직업 교육을 받은 사람은 거의 없어 ‘싸고 전문적인 인력’이란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게다가 목재선반공이나 기계공과 같은 직업의 급여도 그리 싼 편이 아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JOB50에 따르면 금속 세공사가 원하는 평균 월급은 4만 루블(약 120만원)이었으며 최대 10만 루블(약 320만원)도 나타난다. 이는 기업 영업부장, 변호사, 의사의 월급과 맞먹는다. 의료, 휴가, 신년 보너스 같은 복지 지원을 제외하고는 고용주들이 감내할 수 없는 돈이다. 그 때문에 이주 노동자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고, 고급 전문인력들은 취업난에 허덕이며 어딜 가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고민만 할 뿐이다.



알렉세이 스코핀 고등경제대학 지역경제·지리학과 부학과장은 “ 독립국가연합(CIS) 출신 이민자들은 공장에서 일하긴 어렵다. 그들은 전문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 환경미화원이나 요리사, 식당종업원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생산노동자는 될 수 없다”며 “러시아 노동자들이 필요한 유일한 분야는 방위산업 부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현재 이 분야에는 고도 산업기술이 집중돼 있다”며 “방위산업 기업에서는 안전수칙에 따라 이민자들을 받지 않는 관계로 매년 러시아인 노동자 4만~5만 명을 훈련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엘라나 김 기자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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