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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식의 똑똑 클래식] 가짜 묘약으로 사랑 얻은 네모리노

중앙일보 2013.11.29 00:05 11면 지면보기
오페라 `사랑의 묘약`의 한 장면.


“트리스탄은 이졸데가 적의에 차 있음을 알고 정중하게 자신의 칼을 그녀에게 바친다. 그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죽여 원한을 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졸데는 서로의 화해를 제안하며 축배를 권하는데 그 잔은 독약을 타 놓도록 시녀 브란게네에게 명령한 독배였다. 트리스탄이 그녀의 계략을 감지하고 있었지만 당당하게 마시자 그가 미처 다 마시기도 전에 그녀는 그에게서 잔을 도로 채어가 죄다 마신다. 죽었어야 할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서로를 오랫동안 응시하더니 뜨겁게 포옹한다. 시녀 브란게네가 독약 대신 타 놓은 사랑의 묘약이 그 효력을 발휘한 것이다.”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등장하는 사랑의 묘약 장면이다. 오페라 사랑의 묘약 제1막에서 아디나는 농부들에게 이 이야기가 담긴 책을 읽어주며 “이렇게 잘 듣는 사랑의 묘약이 있다면 사랑이란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나누어 마신 잔에 들어간 사랑의 묘약은 죽음을 사랑으로 변화시킨 진짜 약이었지만 네모리노가 들이마신 약은 약효가 전혀 없는 가짜 약이었다.



  만병통치약. 청계천 황학동 부근이나 시골 장터를 떠돌면서 차력 시범을 펼친 후에 마지막에는 온갖 질병에 다 듣는다는 만병통치약을 파는 사람들이 아직 있는지 모르겠다. 네모리노는 포도주에 불과한 가짜 약을 사 마셨지만 결과적으로 아디나의 사랑을 얻었고 그것이 사랑의 묘약 때문이라고 믿고 사방에 선전하는 덕에 가짜 약장수 둘카마라는 매진사례 속에 큰 돈을 벌고 마을을 떠난다.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는 유난히 이중창이 많이 나오는데 두 사람이 한 소절씩 주고 받는 일반적인 이중창이 아니라 동시에 두 사람이 노래하는 방식이 주를 이룬다. 그것도 같은 가사를 음만 달리 하여 부르는 것이 아니라 가사와 운율이 전혀 다른 노래를 동시에 부르는 경우가 많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음으로 보면 절묘한 화합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국내에서 ‘사랑의 묘약’을 공연할 경우 가장 애를 먹는 것이 다름 아닌 자막 제작이다. 한정된 자막 줄 수에 동시에 부르는 두 개의 노래를 번역해 올리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묘약이 가장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어린 자녀들과 함께 관람해도 좋을 만큼 건전하다는 것과 배꼽을 잡게 하는 희극적 장면이 많기 때문이다. 독도 약도 아닌 약리학적으로 비활성인 물질을 약으로 속여 환자에게 주어 유익한 작용을 나타낸 경우에 ‘플라시보 효과’가 나타났다고 한다.



플라시보의 어원은 ‘만족시키는’ ‘즐겁게 한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다. 네모리노는 결국 둘카마라가 건넨 포도주를 마시고 그것이 사랑을 얻게 하는 신비한 힘을 지닌 묘약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원하는 사랑을 이루었으므로 플라시보 효과를 누린 셈이다.



김근식 음악카페 더 클래식 대표

041-551-5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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