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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서 쫓겨난 베를루스코니 … 20년 정치인생 치명타

중앙일보 2013.11.29 00:02 종합 20면 지면보기
27일 의원직을 박탈당한 베를루스코니(77) 전 이탈리아 총리와 연인 프란체스카 파스칼(28). [AP=뉴시스]


192대 113. 이탈리아 상원 의사당의 전광판에 개표 결과가 나타남과 동시에 상원의장이 제명을 선언했다. “베를루스코니 상원의원의 당선은 무효가 됐다.” 세 차례 총리를 지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77)가 상원에서 쫓겨나는 순간이었다. 그는 의회에 있지 않았다. 로마의 집 앞에서 1000여 명의 지지자들을 앞에 놓고 집회를 열고 있었다. 그는 “오늘은 이탈리아 민주주의 제삿날”이라고 외쳤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군중은 대부분 베를루스코니의 정치 조직이 전국에서 동원한 지지자들이었다. 베를루스코니의 옆에는 애완견을 데리고 나타난 49세 연하의 새 애인 프란체스카 파스칼(28)이 서 있었다. 두 차례 이혼한 베를루스코니는 파스칼과 동거 중이다.

상원 의원직 박탈 당하던 날
49세 연하 새 애인과 나타나
"이탈리아 민주주의 제삿날" 항변
성매수 혐의 등 다시 구속될 수도



 의원직 제명은 예견된 일이었다. 지난해 이탈리아 의회는 부패에 연루돼 2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은 의원은 의회의 동의를 거쳐 6년간 정치활동을 금지시키는 법을 만들었다. 베를루스코니는 지난 8월 대법원에서 조세포탈죄로 징역 4년형을 확정받았다. 이에 따라 상원의 표결이 이뤄졌다. 베를루스코니는 선고 당시 법정구속을 당하지는 않았다. 교도소 과밀해소법에 따라 곧바로 징역 1년으로 감형된 데다가 70세 이상의 노인은 수감 대신에 가택 연금이나 사회봉사로 형을 대체하는 제도 덕분이었다. 그는 내년에 사회봉사에 나서야 한다.



 1994년 정치판에 뛰어든 베를루스코니는 그해 총선에서 하원의원으로 당선됨과 동시에 총리가 됐다. 그 뒤 2001, 2008년 두 차례 더 총리직에 올랐던 그는 올해 3월까지 하원의원으로, 3월부터는 상원의원으로 총 20년 동안 의원 신분을 유지해왔다.



 그는 의원직 박탈에 처절하게 저항했다. 의회 다수당인 민주당이 제명 표결을 추진하자 자신이 이끌던 자유국민당(PDL)의 연립정부 참여를 철회해 정부를 붕괴시키려 했다. 하지만 PDL의 내분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자 그는 이달 중순 PDL을 모태 정당인 ‘포르차(전진) 이탈리아’로 재창당했다. 표결 전날인 26일 그는 소속 의원들을 동원해 하원에서의 법안 통과를 막아 정권을 무너뜨리려 했다. 하지만 이 역시 불발에 그쳤다. PDL 소속이었던 의원 중 약 30명은 이미 안젤리노 알파노 부총리를 중심으로 ‘신중도우파’라는 독자적 세력을 형성한 상태다.



 베를루스코니는 의원직 상실로 불체포 특권도 잃었다. 이에 따라 향후 그에 대한 추가 범죄 수사가 이뤄질 경우 구속될 수도 있다. 그는 평생 50여 차례 기소됐다. 베를루스코니는 지난 6월 법원에서 미성년자 성 매수 및 직권남용으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2010년에 17세였던 모로코 출신 여성과 성관계를 가진 혐의가 인정된 것이었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유람선 가수 출신인 베를루스코니는 60년대에 건설업에 뛰어들어 큰돈을 벌었다. 미디어그룹 미디어셋의 대주주이자 프로축구팀 AC밀란의 소유주인 그는 이탈리아 6위(포브스 집계)의 부자다. 의원직은 잃었지만 그의 정치활동은 계속될 전망이다. ‘포르차 이탈리아’에는 상·하원 각각 약 60명의 의원이 포진해 있다. 이탈리아 언론들은 우선 내년 5월의 유럽의회 선거에서 유럽연합(EU)과 독일에 대한 반대 정서를 자극하며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꾀할 것으로 내다봤다.



런던=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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