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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문화 속에 페라가모가 보이는 까닭은 …

중앙일보 2013.11.29 00:01 Week& 11면 지면보기



미국 상륙 99년 … 베버리힐스서 특별한 패션쇼





























































지난달 17일 오후 6시(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베벌리힐스시(市)는 이상스러운 교통정체에 시달렸다. 주말 고속도로 주변 도로가 막히는 일은 종종 있지만 베벌리힐스 한복판, 목요일의 웨스트피코 대로가 체증을 겪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보기 드문 정체의 근원지가 신기한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여 웅성대고 있었다. 이들의 시선은 월리스 애넌버그 예술센터(The Wallis Annenberg Center for Performing Arts·이하 더월리스) 입구를 향해 있었다. 70여 년 역사의 베벌리힐스 우체국을 보존해 예술센터로 탈바꿈시킨 프로젝트의 대장정이 마무리되는 현장이었다. 아카데미상 시상식이라도 열린 듯 행사장 앞은 빨간 카펫으로 치장돼 있었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들, 턱시도 차림의 남성들이 속속 등장했다. 여기엔 이탈리아 브랜드 ‘살바토레 페라가모’(이하 SF)의 페루치오 페라가모(68) 회장도 참석했다. 더월리스의 요청에 따라 SF가 이날 행사를 축하하는 패션쇼를 열었기 때문이다. “베벌리힐스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 아버지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꿈이 시작된 곳이다. 아버지가 미국에 진출한 지 99년이 되는 해, 뜻깊은 행사에 참여하게 돼 기쁘다”고 말하는 페라가모 회장과 함께 행사를 둘러봤다.



‘꿈의 공장’ 사로 잡은 페라가모



‘꿈이 배달되는 곳’에 온 ‘꿈을 짓는 구두장이’. 더월리스와 SF는 ‘꿈’이란 공통점으로 연결돼 있었다. 전자는 베벌리힐스라는 지역적 특성 덕분에 붙여진 이름이다. ‘꿈의 공장’이라 불리던 할리우드와 인접해 있고 여기서 일하는 유명 스타들, 그들에게 보낸 전 세계 팬들의 팬레터가 베벌리힐스 우체국으로 모여들었다고 한다. SF는 창업자 살바토레 페라가모(1898~1960)가 할리우드 스타들의 구두를 지어주며 유명해진 브랜드여서 이 지역과 인연이 깊다. 이탈리아 남부에서 태어난 살바토레는 아홉 살 때부터 구두장이 일을 시작했고 1914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살바토레는 ‘꿈을 짓는 구두장이’라는 자서전을 썼다. 페라가모 회장은 “아버지 살바토레는 1923년 할리우드로 왔다. 영화에 출연하는 스타들을 위한 구두를 만들었고 매리 픽퍼드,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등과 같은 전설적인 배우들이 아버지의 구두를 사랑하게 됐다. 이때부터 SF는 할리우드 영화와 동의어처럼 불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더월리스는 1934년 베벌리힐스에 지어진 우체국을 보존하는 사업에서 시작했다. 자선사업가이자 애넌버그재단 이사장인 월리스 애넌버그(74)가 주도했다. 애넌버그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지역의 여러 단체에 약 2억5000만 달러(약 2625억원)를 기부한 인물이다. 미국의 대공황 시절인 30년대, 베벌리힐스에는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들이 살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스타들에게 전하는 팬레터가 미국 정부가 운영하는 우체국에서 처리됐다. 하지만 팬레터 양이 어마어마해 기존 시설이 감당하기엔 벅찼다. 대공황 탓에 미국 정부는 우체국 신축 자금을 대기가 힘들었다.



당대의 저명한 사회운동가이자 영화제작자였던 윌 로저스(1879~1935)는 우체국 운영을 맡은 미국 재무부에 편지를 썼다. “이곳엔 전 세계에서 보낸 팬레터가 홍수처럼 밀려들지만 (변변한 우체국이 없어) 텐트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베벌리힐스 명예시장이기도 했던 로저스의 노력이 빛을 본 결과 탄생한 것이 더월리스의 모태인 베벌리힐스 우체국이다. 이탈리아 문예부흥기(르네상스)의 건축 양식을 본떠 지어졌다. 더월리스의 현관 역할을 하는 우체국 건물 내부 벽은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대리석으로 마감했고, 높은 천장까지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다. 현재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에 남아 있는 공공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프레스코화다. 역사적 중요성 때문에 86년엔 미국 국가 지정 역사건축으로 등재됐다. 우체국 영업은 98년에 중단됐다. 이후 버려진 우체국 건물을 시가 사들여 보존 방안을 논의한 끝에 애넌버그 재단이 예술센터로 탈바꿈시켰다.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새로운 문화적 명소가 될 곳이다. 애넌버그재단의 끊임없는 자선 프로젝트로 탄생한 새 명물에 SF가 기여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 지역의 문화적인 삶에 중요한 행사에 이탈리아인의 탁월함을 부여하는 것, 아버지가 해왔던 일이다. SF의 미국 진출 99주년, 이보다 더 완벽한 타이밍은 없었을 것이다.” 할리우드와 SF의 인연을 다시 한번 강조한 페라가모 회장의 소감이다.



페라가모 정신이 예술적 영감 자극



개관 행사는 미국 자선단체, 기부문화, 유명인과 유명 브랜드의 유기적 결합을 여실히 보여준 자리였다. 금융인 브람 골드스미스는 애넌버그재단을 통해 더월리스의 신축 공연장 건설자금 2500만 달러(약 262억원)를 댔다. 사교계 유명인 제이미 티시는 애넌버그와 함께 더월리스 프로젝트의 기부자들을 끌어모았다. 영화배우 로버트 레드퍼드, 브래드 피트가 기부자 1000명이 모인 개관 행사의 명예의장을 맡았다. 티시·애넌버그의 사교력, 레드퍼드·피트의 이름값은 개관 행사 참석자 1인 평균 5만 달러(약 5250만원)의 기부금으로 돌아왔다. 영화배우 데미 무어, 샤를리즈 테론, 조시 두하멜, 조디 포스터, 가수 그웬 스테파니 등도 참석해 연회 참가자들과 어울려 기념 촬영 등에 적극 임했다. 페라가모 회장은 “문화적인 행사에 활동적으로 참여하는 것, 애넌버그재단, 더월리스 같은 문화적인 조직과 파트너십을 맺는 것, 다양한 형태로 예술을 고취시키는 것은 SF 같은 브랜드의 소명이다. 물론 특정 행사와 브랜드의 유산이 깊게 연관돼 있는지 살펴보고 참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 살바토레는 개척자였다. 그가 만든 구두는 패션과 스타일 아이콘으로 당대의 스타들에게 영향을 줬다. 스타들은 문화인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패션과 문화의 결합은 현재 SF의 모습과 같이 무한한 발전의 토대가 된다. 패션 창작자는 문화와 예술에서 영감을 얻고 자극을 받는다. 패션과 문화는 언제나 서로 건강한 발전의 동반자다”라고 덧붙였다.



베벌리힐스=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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