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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가려진 얼굴이 말하는 것들

중앙일보 2013.11.28 00:32 종합 32면 지면보기
로버트 프랭크, 호보큰의 퍼레이드, 젤라틴 실버 프린트, 14.3×21.5㎝, 1955, 스위스 빈터투어 사진미술관 소장.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나는 본디 그러한 것들,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것들, 그러나 쉽게 선택되거나 해석되지만은 않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마음의 눈으로 만든 작은 도록 같은 게 될 게다. ”

 로버트 프랭크(89)는 1954년 구겐하임 재단에 이런 지원서를 보냈다. 이렇게 해서 중고 포드 자동차를 몰고 미 전역을 다니며 소형 카메라로 미국의 민낯을 찍는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스위스 태생의 유대인 사진가로 40년대 말 미국으로 이민 온 그는 한동안 패션지 ‘하퍼스 바자’의 사진가로 활동했다. ‘미국인들’ 시리즈는 그 세계를 떠나 자기만의 사진으로 독립한 첫 작업이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55년 11월, 그는 절친한 사진가 워커 에번스(1903∼75)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고속도로에서 소지품 검사를 당하고 유치장에 갇혀 “유대인인데 왜 유럽으로 돌아가지 않나” “공산주의자 아니냐” 따위의 질문에 여러 차례 답하고, 지장을 찍고 12시간 만에 풀려난 딱한 사정을 호소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2년간 2만여 장의 사진을 찍었다. 피부색에 따라 서로를 나누며 스스로를 가둔 버스 차창, 꼭두각시극 속 인형처럼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서 있는 마을 행사의 내빈들, 적막한 벌판의 주유기 등이 그의 카메라에 담겼다.

퍼레이드를 찍으러 간 이 사진가는 화려한 행사 대신 그 뒤안길로 렌즈를 돌렸다. 펄럭이는 성조기가 창 밖으로 행렬을 엿보는 여성의 얼굴을 가려버렸다. 소시민의 얼굴 같은 건 중요치 않은 국가주의를 비판하는 걸까. 그의 ‘미국인들’ 시리즈엔 국기가 참 자주 등장하는데 대체로 구겨져 있거나 함부로 트리밍됐다.

 시리즈는 처음엔 거부됐다. “철저한 오해의 소지가 있다… 미국을 모독하고 있다”(애퍼처), “그를 받아준 나라를 혐오하는 어떤 침울한 남자가 미국민들 사이에 혐오를 전파하기 위한 목적으로 찍은 사진처럼 보인다”(파퓰러 포토그래피) 등의 혹평이 쏟아졌다.

사진집은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됐다. 제2차 세계대전 승리와 함께 경제 호황을 누리던 미국 사회의 인종 차별과 자국 우월주의 등을 냉정하게 직시한 결과물. 이 ‘불온한’ 사진들로 그는 퍼스널 다큐멘터리의 선구자, 현대 사진의 아버지가 됐다. 로버트 프랭크 회고전이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미국인들’ 시리즈 일부와 그 이전과 이후 작품 등 115점의 오리지널 프린트가 내년 2월까지 전시된다.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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