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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불안, 마음의 병? 몸의 병? 답은 뇌에 있다

중앙일보 2013.11.23 00:27 종합 27면 지면보기
불안의 시대

앨런 호위츠 지음

이은 옮김, 중앙books

291쪽, 1만5000원



17세기 영국 성직자 로버트 버턴은 “푸른 비단옷을 입고 왕관을 쓴 이로부터 무명옷을 입은 자에 이르기까지” 불안은 모든 인류가 겪는 고통이라고 했다. 19세기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좁쌀만한 날파리부터 신의 권능이라는 거대한 신비에 이르기까지 모두 나를 불안하게 한다. 인간의 깊은 내면에는 세상에 홀로 남겨지거나 신에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인류가 불안을 느끼지 않았던 시대는 없었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가장 용감한 자들조차 두려움을 느꼈다. 중요한 차이는 두려움을 느끼는가 느끼지 않는가가 아니라 두려움을 다스리는 능력과 기술의 유무였다”라고 기록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적절한 두려움은 필요하며 두려움이 전혀 없는 사람은 겁쟁이만큼이나 어리석다고 했다.



 이 책은 불안의 역사, 아니 불안을 이해하고 치료하고자 했던 인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사람들의 언제나 불안을 느껴왔지만 그 정의나 표현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랐다. 고대 그리스 로마에선 싸움에서 적과 굳건히 맞서는 용기를 중시했고, 불안이나 두려움은 불명예스러운 일로 낙인 찍혔다. 중세에는 신을 통해 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사람들은 천국에 갈 수 있을지, 벌을 받지나 않을지 하며 더 큰 불안에 떨었다.



 르네상스를 지나며 불안은 의학적 처방이 필요한 질병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도 가난, 불안한 미래, 죽음과 질병, 어긋난 사랑 등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문제로 불안에 시달리며 의사를 찾았는데, 의사들은 ‘구토제나 설사약으로 몸을 비우고, 거머리나 부황으로 피를 뽑아낼 것’ 등을 처방하곤 했다.



 17세기 이후 노이로제니 신경쇠약이니 하는 용어가 생겨났고, 공황발작이니 광장공포증이니 하는 증상도 새롭게 조명받았다. 불안을 좌절된 성욕의 표출로 해석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 학습으로 불안 증세를 치유하는 행동주의 심리학도 출현했다. 생리학·뇌과학 등의 발전은 한 알의 약으로 불안을 치료하는 시대를 열었다. ‘밀타운’ ‘프로작’ 같은 진정제·항우울제 등이 그 예다.



 불안에 대한 진단과 치료법은 갈수록 세분화 전문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정상적인 불안과 병적인 불안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아이러니다. 뇌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알게 됐지만 왜 불안을 느끼는지, 어떻게 하면 덜 느낄 수 있는지에 대해선 별로 알아낸 것이 없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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