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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보물, 90일간의 슬픈 귀향

중앙일보 2013.11.21 02:30 종합 1면 지면보기
20일 경남 양산시 북정동 양산유물전시관 2층 특별전시실. 관람객들이 유리 안에 든 금동관을 살펴보고 있었다. 신라 금관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닮은 모습의 유물이었다. 금동관은 박물관에서 80m쯤 떨어진 가야 양식 귀족 무덤 ‘부부총(夫婦塚)’에서 나온 것. 6세기 초반의 유물이다. 전시관 이지은(29) 학예사는 “원형과 색상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어 최소한 보물급으로 볼 수 있는 문화재”라고 말했다.


65년 한·일조약 때 반환 요구 포기 … 부부총 유물 첫 고국 나들이

 이 금동관은 한국에서 출토된 유물이지만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서 빌려다 전시하고 있다. 목걸이·귀고리·금동 말안장 꾸미개 등 다른 67점과 함께다. 지난달 15일 빌려와 90일간 국내 첫 전시를 하고 내년 1월 12일 이후엔 도쿄박물관에 돌려줘야 하는 신세다. 한국 정부가 반환요청을 공식 포기한 유물이어서다.



경남 양산유물전시관에 전시 중인 부부 총 출토 유물들. 가야 양식 고분에서 나온 6세기 초반 문화재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을 맺을 때 한국 정부가 반환 요구를 공식 포기한 것으로, 소장처인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서 모두 68점을 빌려와 전시하고 있다. 내년 1월 12일 전시가 끝나면 도쿄박물관에 돌려줘야 한다. “보물급 가치가 있다”는 게 문화재 전문가들의 평가다. ① 사슴뿔 장식 금동관 ② 금동 말안장 꾸미개 ③ 흙으로 빚은 뚜껑과 다리가 달린 잔. [송봉근 기자]
 사정은 이렇다. 1965년 한국은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일본이 가져간 문화재 4479점을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조선총독부가 발굴해 일본에 가져간 부부총 유물도 목록에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부부총 유물에 대해 “도쿄박물관 한국실에 전시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한국 정부는 이를 수용했다. 같은 해 맺은 한·일 기본조약에 “부부총 유물은 일본 측의 요청을 받아들인다”고 명시했다. 이로 인해 부부총 유물은 한국 정부가 반환 요구를 포기한 유일한 문화재가 됐다.



 양산유물전시관은 이렇게 부부총 유물이 공식적으로 일본 소유가 된 과거사까지 특별전시실에 적어 놨다. 금동관을 본 양산시민 김대영(31)씨는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받아 경제를 일으켜야 했던 당시 상황은 이해하지만 우리 보물을 빌려다 잠깐 전시하고 돌려줘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시관 방명록 또한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 ‘다 돌려받고 싶습니다(양산시 류정민)’ ‘슬픈 일이다. 빨리 돌아오기를(부산시 신유정)’ 등의 글이 적혀 있었다. 초등학생이 쓴 것으로 보이는 ‘문화재를 돌려주세요’라는 삐뚤빼뚤한 글씨도 눈에 띄었다.



 일본 소유가 된 부부총 유물은 빌리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고 한다. 난색을 표하는 도쿄박물관 측에 올 초부터 매달려 근 10개월 만에 성사시켰다. 신용철(46) 양산유물전시관장은 “출토 지역에서 잠시라도 보고 싶다는 게 시민들의 염원이라고 부탁에 부탁을 거듭해 겨우 이뤄졌다”고 말했다. 신 관장은 “정부 간 약속이라 부부총 유물을 돌려받기는 힘들겠지만 사실상 돌려받는 것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도록 장기 임대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본은 현재 한국 정부가 반환 요청을 포기한 부부총 유물 말고도 수많은 한국 문화재를 갖고 있다.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가져간 것이다. 한·일 기본조약을 맺을 당시 한국이 반환을 공식 요구한 4479점 가운데 1432점만 돌아왔다. 반환 요청을 안 한 것까지 합치면 6만6824점이 일본에 있는 것으로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파악하고 있다. 조선 초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가 대표적이다. 미국에도 4만2325점, 독일 1만727점 등 20개국에 15만2915점이 유출된 상황이다.



 해외에 나간 유물에 대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가져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황평우 한국문화재정책연구소장은 “약탈과 절도 같은 불법행위를 통해 반출된 문화재는 국제적으로 환수 대상”이라며 “정부가 유출 경위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이탈리아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던 2500년 전 초기 로마시대 항아리가 도굴된 것이라는 증거를 찾아 미국 법원에 제출해 돌려받았다. 자진해서 문화재를 돌려준 사례도 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은 보유하고 있던 조각상에 ‘파르테논’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는 이유로 2006년 이를 그리스에 돌려줬다.



양산=차상은 기자



한·일 기본조약=1965년 6월 22일 체결됐다. 경제협력과 재일동포의 대우, 어업·문화재, 일제강점기 피해에 대한 배상 청구권 관련 내용 등을 담았다. 일본으로부터 3억 달러를 무상으로 받고 2억 달러를 낮은 금리에 차관으로 받는 등의 경제 지원을 대가로 한국이 청구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부분이 있어 논란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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