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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비자 우선" 병행수입 활용해 가격 잡아

중앙일보 2013.11.21 02:30 종합 3면 지면보기
지난달 23일 일본 오사카에 있는 병행수입제품 전문 매장 ‘해피니스앤디’. 1층에 들어서자 루이뷔통·구찌·프라다·페라가모 등 해외 유명 브랜드 20여 종이 진열돼 있다. 백화점 명품관처럼 고급스럽게 차려진 이곳에서는 핸드백·지갑·액세서리 등 명품들을 백화점보다 20~30% 싼값에 팔고 있었다.


1966년부터 허용 … 현 수입량 40%
핸드백 등 원산지 표시 강제 안해
공식업체, 병행업체와 값 논의도

 회사원 니시무라(西村·34)는 “병행수입제품이든 본사에서 직접 들여와 파는 백화점 제품이든 결국 같은 제조사가 만든 같은 물건인데 굳이 비싸게 살 이유가 없어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치솟는 수입품 물가를 일본은 병행수입 활성화로 억제하고 있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일본 내 전체 수입물량 중 병행수입 비중은 약 40%에 달한다. 명품만 해도 한 해 4000억 엔(약 4조2300억원)어치가 병행수입 물량으로 판매된다. 해피니스앤디의 경우 오사카 외에 도쿄·규슈 등 권역별로 50여 곳에 매장이 있다. 관세청 산하 무역관련지식재산권보호협회(TIPA) 병행수입분과 위원장을 맡은 공병주 서영인터내셔널 대표는 “일본에서는 병행수입 물량이 풀리다 보니 독점수입업체나 ‘○○○재팬’이 수입품 판매가를 터무니없이 올리는 일이 발 붙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일본의 병행수입은 1966년부터 법적으로 허용됐다. 95년에 도입된 우리나라보다 30년 정도 빠른 셈이다. 초기엔 우리처럼 직수입업체와 병행수입업체 간에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70년 이른바 ‘파커 펜’ 사건에서 일본 법원이 병행수입업체의 손을 들어주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당시 파커 상표의 전용 사용권을 취득한 회사가 홍콩에서 파커 만년필을 대량으로 들여온 병행수입업체의 판매를 막기 위해 소송을 냈다. 그런데 일본 법원은 "병행수입은 가격·서비스의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한다”는 등의 이유로 병행수입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공 대표는 “소비자 권익 보호라는 법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병행수입 절차와 통관 방식도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소비자와 병행수입업자 친화적’이다. 예를 들면 핸드백이나 시계의 경우 원산지 표시를 강제하지 않는다. 프라다는 중국·인도·루마니아 등에서 생산을 하는데 우리나라처럼 원산지 표시를 의무화하면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라벨을 붙여야 통관할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병행수입업자들은 현지에서 라벨을 안 붙여올 경우 국내 공항에서 ‘보수 작업’을 한다. 시계와 핸드백에 라벨을 박는 것이다. 병행수입업자들은 이를 “진품에 손 대 짝퉁을 만드는 꼴”이라며 실소를 금치 못한다.



독점수입업자의 횡포에 맞서고 병행수입 시장을 더 늘리려는 노력도 활발하다. 98년 병행수입업체 100여 곳이 모여 ‘일본유통자주관리협회(AACD)’라는 단체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AACD의 사토 요시히로(佐藤義浩·41)는 “일본은 병행수입업체가 공동으로 ‘진품 관리’를 하고 별개의 유통망을 갖추는 등의 노력으로 시장을 활성화시켰다”고 말했다. 일본의 한 병행수입업체 관계자는 “일본에선 신제품 가격을 정할 때 공식수입업체가 병행수입업체와 가격을 의논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미국도 소비자 권익이 최우선이다. 경쟁이 물가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미국에서 병행수입업을 하는 A대표는 “미국의 경우 유대계 대형 병행업체들이 시장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은 유통하는 브랜드만 회사당 수십여 개이고 글로벌 시장에서 제품을 싸게 공급받아 막강한 물량을 자랑한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마셜·TJ맥스·센추리21·노드스트롬 렉 같은 다양한 아웃렛과 병행수입 매장이 서로 경쟁하며 물가를 끌어내린다. 뉴욕에 사는 교포 최미희(36)씨는 “이들 매장에선 세일 시즌에 80% 이상 폭탄세일은 기본”이라며 “할인에 재할인, 또 할인 등 빨간 세일 가격표가 3~4개 붙은 제품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한상린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도 원화 강세를 내수 확충의 기회로 활용하려면 독과점적인 수입유통구조 개선, 특히 병행수입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특별취재팀=최지영(뉴욕)·박태희(오사카)·구희령·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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