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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잉여들의 역습

중앙일보 2013.11.21 00:34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
한때 전형적인 청춘 드라마가 있었다. ‘사랑이 꽃피는 나무’ ‘우리들의 천국’ ‘내일은 사랑’까지, 주인공은 대학생들이요, 배경은 영락없이 캠퍼스였다. ‘대학에 가면 저렇겠구나’라는 막연한 동경이 생기는 달달한 에피소드들로 가득했다.



 그때 왜 청춘 드라마의 배경이 모두 대학이었을까를 지금 생각해 보니 나름 이유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대졸 학력은 엘리트가 되는 최단의 코스였다는 것.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취직은 어느 정도 보장됐고, 그래서 드라마에서 굳이 진로 문제 같은 건 뒤로 빠져도 무방한 상태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대학생이 된다는 건 청춘을 아름답게 포장하기에 가장 좋은 그림이 됐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런 청춘 드라마는 없다. 대학생이 된다 한들 장밋빛 인생을 보장받지 못한다. 진학률이 71%나 되는 대학은 졸업해도 비정규직이 될 확률이 85%나 된다. 엄마·아빠 말씀 잘 듣고 공부만 했더니 스무 살이 넘어도 정작 뭘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고, 그렇다고 이미 한껏 높아진 취향을 버리고 찌질하게 살기는 싫다. 더구나 백수 자식도 싫지만 중소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건 더 싫다는 부모들이 대다수다(한윤형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남아 도는 인간’, 이른바 ‘잉여 세대’의 비극이다.



 진짜 문제는 꼬여도 한참 꼬인 이 사회현상에 쉽사리 메스를 가하지도 못한다는 점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위로하는 것도 한때요, 젊은 애들이 게을러 저러고 있다고 비난하기에도 교육·노동·복지제도가 복잡하게 맞물려 있다. 잉여를 다룬 다양한 사회과학서가 나온들 시원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 짐작한다.



 그런데 최근 이 미궁을 헤쳐나갈 희망을 엿봤다. 영화 ‘잉투기’와 ‘잉여들의 히치하이킹’(28일 개봉 예정)을 통해서였다. ‘잉투기’가 인터넷이란 가상 세계에서 존재감을 찾으려는 20대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면, ‘잉여들의…’은 밥 먹는 것도 귀찮아 침대 위에서 해결하는 무기력한 영화학도 네 명의 유럽 무전여행을 그린다.



 영화의 작품성을 떠나 주목하는 건 영화 제작 그 자체다. 스스로를 ‘잉여’라 칭한 감독과 배우들은 그들만의 ‘잉여짓’을 골방을 넘어 스크린으로 옮겼고, 독립 영화임에도 대기업 배급사를 이용했다. 뭣보다 관객들에게 잉여를 대중적 문화 코드로 인식시키는 중이다. 한마디로 기존의 성공 프레임을 벗어나 재미있고 의미 있는 길을 찾았다고나 할까. ‘잉여들의…’의 이호재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잉여들의 역습’이라 할 만하다.



 이 감독과 제작진은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말들을 털어놨다. “잉여란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또 뭐든지 할 수 있는 존재”라고, “꿈을 찾아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하며 사는 게 꿈”이라고. 새로운 청춘 드라마가 이렇게 씌어지고 있구나 싶은 대목이었다.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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