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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의 시시각각] 버스 3대에도 이 난리니

중앙일보 2013.11.21 00:34 종합 34면 지면보기
고정애
정치국제부문 차장
사소해 보이는 요인도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남자용 소변기 중앙에 파리를 그려 넣으면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량이 80% 준다는 식으로 말이다. 요 며칠 사이 강기정 민주당 의원과 청와대 경호실 간 충돌을 보며 이 같은 ‘넛지’ 이론을 떠올리곤 했다. 팔꿈치로 슬쩍 찌르는 식의 개입으로도 타인의 선택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주장 말이다. 이번 경우 ‘파리 그림’은 대통령이 떠난 뒤에도 국회 본관 앞 기단에 정차돼 있던 청와대 경호버스 3대일 터.



 국회를 오래 들락날락한 사람도 “낯선 풍경”이라고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의 기억이 불완전한 거다. 국회 경호 관계자와의 대화다.



 -버스가 세워진 걸 못 봤다고들 말한다.



 “대통령이 하차하는 지점에 방패막이 용도(차벽)로 버스를 둬 왔다.”



 -과거 시정연설 때 영상을 보니 다르던데.



 “사실 그간엔 한 대, 두 대였다. 3대를 갔다 놓은 건 처음이다. 대개 우리 버스를 세웠다. 이번에도 ‘버스를 대 달라’고 했는데 우리 버스가 조금 늦으니까 자기들이 가져온 버스를 대겠다고 하더라.”



 버스는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떠난 뒤 바로 빠져 의원들이 보지 못했거나, 눈에 띄었다고 해도 시야를 통째로 가리거나 통행을 못할 정도가 아니었기에 의원들이 버스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했던 게다. 국회 사무처 요원도 “버스가 이번에 왜 기단에 올라가 있을까 궁금했었다”고 말할 정도니 저간 사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엔 야당이 ‘산성(山城)’으로 인식했고 그게 강 의원의 발길질-그의 전과(前過)를 감안하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과 경호경찰의 강 의원 뒷덜미 낚아채기, 그리고 강 의원의 피를 부른 백헤딩으로 이어졌으며 급기야 민주당과 경호실이 드잡이하는 지경까지 갔다. 이를 두고 “강 의원이 65~70%, 경호경찰이 30~35% 잘못한 파출소감 해프닝”이라고 본 국회 관계자의 견해에 공감한다.



 그럼에도 사건을 곱씹게 되는 건 이 정도의 개입에도 경기(驚氣)를 일으킬 정도로 정치가 취약했다는 사실을 절감해서다. 작은 불씨를 큰불로 키우곤 하는 인화성은 또 어떤가.



 여야는 한심했다. 특히나 101일 동안 찬바람을 쐬고도 강 의원의 습관성 일탈을 옹호하며 국회를 파행시키는 민주당의 1차원적 대응은 놀랍다. 어찌 보면 남루함을 자초해 매번 대통령에게 반사 이익을 안기는 민주당이야말로 대통령의 진정한 국정동반자가 아닐까 싶다.



 청와대도 옹색했다. 정치를 하지도 정치(精緻)하지도 못해서다. 청와대가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두고 “국회에 간곡하게 호소드린 것”이라고 했지만 경호만 놓고 보면 부탁하러 간 사람이 오히려 위세를 부린 격이었다. 이유야 어찌됐건 야당과 몸싸움을 벌였으니 남세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사후 “역대 대통령이 국회에 갈 때 항상 버스 석 대를 세워놓는다”고 주장했다. 경호실이 진실만을 말하는 조직이 아닌데도 그저 신뢰한 것이다. “전쟁 중에도 대화한다”는 외교관 출신 정무수석이 강 의원의 전화를 냉대한 것도 썩 보기 좋진 않았다. 청와대가 행여 야당을 상대하지 않고도, 정치를 하지 않고도 국정운영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건가. 대통령 누구나 그러길 바랐지만 누구도 그런 호사를 누리진 못했다.



 이번 일이야 지난 일.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인화물질이 곳곳에 쌓였는데 수거하는 이는 없고, 더 뿌려질 일만 대기하고 있어서다. 감사원장 임명동의안과 각종 법안들, 새해 예산안 등등 난제 중의 난제다. 버스 3대를 넘는 수준의 개입이 있을 터인데 청와대는 정치를 하려 하지 않고 여야는 정치를 못 하는데 어찌하려나. 한숨을 내쉬는데 한 여권 관계자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처럼 갈수밖에. 지방선거 때 어느 한쪽이 깨지겠지.” 미리 마음 다잡고 있는 게 낫겠다.



고정애 정치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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