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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아이들 게임할까봐 컴퓨터 끈다?

중앙일보 2013.11.21 00:33 종합 33면 지면보기
강혜련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주의력 결핍과 과잉행동 장애로 초등학교를 중퇴한 10세 소년이 어머니가 사 주신 『자연·실험·철학』이라는 책을 읽고 자기 집 지하에 실험실을 만들어 책에 소개된 실험을 모두 해 봤다. 학교를 자주 빼먹던 12세 사고뭉치 소년은 허름한 차고 작업실에서 아버지가 중고 자동차를 수리하는 모습을 곁눈질하며 공학의 기초를 익혔고 컴퓨터에 흥미를 갖게 됐다. 토머스 에디슨과 스티브 잡스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지난해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정상에 오른 학생의 공부법도 흥미롭다. 아이가 어려서부터 어머니는 집에서 “건너뛰기 숫자놀이를 하자”며 배수(倍數)의 개념을 가르쳤고 아버지는 다리가 두 개인 사람과 네 개인 강아지 이야기를 하며 놀이하듯 연립방정식을 설명해 줬다.



 이들의 공통점은 일상에서 과학을 취미처럼, 퍼즐처럼 즐겼고 성장과정에서 과학공부가 문화적으로 체화됐다는 것이다. 반면 지난해 최연소로 국립대 컴퓨터공학과에 합격한 과학영재가 사립대 치의대에 동시에 합격한 뒤 고민하다 원래 좋아했던 컴퓨터공학 대신 안정적인 치대를 택했다. 이공계 기피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이면에는 결국 우리 아이들이 학교나 가정에서 과학공부에 재미를 못 느끼고, 과학원리가 어떻게 기술이나 상품 개발로 이어지는지를 배우는 기술이나 공학 교육의 빈곤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최근 글로벌 추세의 하나로 국가 경쟁력의 원천을 과학교육 혁신에서 찾는 것이 눈에 띈다. 실제로 미국·싱가포르·영국 등 세계 각국은 21세기 사회에서 이른바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과학교육의 새 틀을 짜고 있다. 미국은 지난 5월 ‘차세대 과학교육 표준(NGSS)’을 발표해 미국을 이끌 차세대 인재육성의 국가적 가이드라인을 수립했다. 특히 창조경제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영국은 과학과 수학을 핵심 교과로 설정했을 뿐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주역을 키우기 위해 초·중·고 전 학년에 걸쳐 ‘컴퓨터활용 사고’ 교육을 통해 창의적 문제해결력을 키워주고 있다. 한국 부모들은 아이들이 컴퓨터를 하면 게임에 빠질까 봐 감시하고 끄기 바쁘다 보니 컴퓨터 적성과 소양이 뛰어난 학생이라도 음지에서 즐기게 되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창조경제의 시작은 창의적 발상과 아이디어며 이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영향력을 갖게 된다. 소위 ‘먹고사는 기술’에서 ‘즐기는 기술’로 사람들의 관심이 옮겨가고 있어 상상력과 창의성이 더욱 강조된다. 아울러 과학의 원리가 실생활의 문제해결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직접 체험해 본 청소년이 결국 창업가의 꿈도 꿔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청소년 기술창업 올림피아드’를 처음 개최하면서 일상생활 속 불편함을 개선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공모했더니 어른들 시각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창의적이고 통통 튀는 아이디어가 많아 놀라웠다. 예를 들면 3D프린터를 이용한 평발 교정용 깔창 만들기와 같은 기발한 아이디어도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이미 21세기 디지털시대 한복판에서 뛰노는데 우리 사회와 학교·가정이 변하지 않아 아이들의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게 하는 건 아닌지 돌이켜보고 국가적 차원에서 과학교육의 큰 변화 방향을 세워야 한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과학적으로 상상하면서 온몸으로 과학을 느낄 수 있게 말이다.



 과학은 즐거워야 한다. 즐겁지 않으면 과학을 끝까지 할 수 없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없다. 21세기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은 개방과 혁신, 그리고 융합과 창조다. 미래사회의 경쟁력은 바로 과학기술과 융합마인드를 지닌 창의 인재에서 비롯된다.



강혜련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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