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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공기업 개혁, 이번엔 제대로 하자

중앙일보 2013.11.21 00:33 종합 33면 지면보기
최준호
경제부문 기자
‘정년 65세, 직원·배우자 환갑 때 5일 휴가 … ’



지난 16일자 본지 공기업 개혁 시리즈에 나왔던 한국승강기안전기술원의 노사단체협약 내용이다. 감독기관인 고용노동부는 이 기사를 보고서야 기술원에 연락해 ‘현황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정년이 65세인 줄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고 했다. 이 기술원의 김윤배 이사장은 고용노동부 출신이다. 2007년 노사협의회로 정년을 대학교수급으로 바꿀 때 취임한 이사장도 고용노동부 출신이다. 누구보다 기술원을 잘 알 역대 이사장들은 왜 눈뜬 장님이 됐을까.



 이번 시리즈를 취재하면서 자주 들은 얘기가 바로 ‘사각지대’였다. 295개 공공기관 중 178개 기타공공기관은 경영평가 대상에서 아예 제외돼 있었다.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역시 정치인이나 해당부처 관료가 낙하산으로 내려가면서 한통속이 돼 숨어버렸다. 정치인은 출근저지 투쟁으로 시작되는 노조의 기관장 길들이기에 지치고, 기관을 감독해야 할 해당 부처 관료들은 퇴직 후 갈 자리를 생각해 적당히 감독했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295개 공공기관 단체협약 사례에는 고용세습처럼 해도 너무한 단협을 가진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가히 ‘신(神)도 모르는 직장’이라 불릴 만하다. 이러다 보니 공기업 시험은 명문대 학생들 사이에서도 고시 반열에 올랐다. 정년은 사기업보다 길고, 연봉은 공무원보다 많은 데다, 각종 복지혜택도 넘쳐나니 청년의 도전을 이해할 만도 하다.



 이제 박근혜정부가 공기업 문제를 발본색원하겠다고 나섰다. 사실 공기업 개혁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으레 나온 단골 소재다. 그러던 사이 공공기관의 부채는 500조원을 넘어섰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9월 말 내놓은 2017년 공공기관 부채 573조원, 부채비율 210.5%는 철저한 구조조정이 이뤄진다는 전제하에 계산한 수치다. 지난 5년간 부채 증가 속도가 그대로 이어진다면 2018년에는 부채 1000조원 시대를 맞는다.



 공공기관 부채가 해당 공공기관만의 책임은 아니다. 정부의 국책사업을 떠맡고, 공공요금 동결에 억눌리면서 재무상황이 악화된 탓도 크다. 전문성과 무관한 대선 공신과 한통속 감독부처 공무원의 낙하산이 방만 경영을 낳았다. 모두 시스템이 허술하고, 원칙을 지키지 않은 데서 생겨난 일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현 정부에서는 대형 국책사업이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번엔 강도 높은 개혁과 투명한 정보공개를 통해 방만 경영과 예산낭비 방지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한다. 현 정부는 공공기관 개혁만 제대로 해도 성공한 정부로 평가받을 것이다.



최준호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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