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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불편하게 그리다

중앙일보 2013.11.21 00:32 종합 32면 지면보기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경주 남산은 천년 신라의 타임캡슐이다. 높이 500m가 안 되는 이 산속에는 미륵골 석불좌상(보물 제136호), 여래좌상(보물 제187호), 포석정지(사적 제1호), 남산성(사적 제22호) 등 여러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소산(小山) 박대성(68)은 석탑과 불상, 절터를 품은 보물창고로 이 산을 묘사했다. 보물답게 달밤에도 빛이 난다. 겹겹이 산봉우리가 이어진 이 둥근 산은 폭마다 중요한 뭔가가 그려진 병풍을 닮았다.



 소산은 ‘경주 화가’다. 경주 태생도 아니고 불교 신자도 아니다. 그러나 20여 년 전부터 남산 밑에 스스로를 유배시키고 그곳의 불상과 탑, 소나무, 대나무, 포석정, 그리고 토함산 불국사와 석굴암을 그린다. “여기가 내 정원”이라며 남산 산책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다. 그가 서울에 부인인 화가 정미연씨와 두 딸을 둔 채 독거하는 남산 밑자락 헌 농가의 이름은 ‘불편당(不便堂)’. 큰 키를 굽히고 드나들어야 하는 낮은 천장에, 화장실도 떨어져 있는 불편한 집이다. 이렇듯 불편을 자처하는 그는 왼팔이 없다.



박대성, 남산, 270×280㎝, 종이에 먹, 2010. [사진 가나아트센터]
 경북 청도의 한약방집 7남매 중 막내였던 그는 네 살 때 공비들에게 부모를 잃었고, 그들이 휘두른 낫에 왼손도 잃었다. 잠자다가 부모도, 손도 잃은 빈사 상태의 아이는 다음 날 친지에게 겨우 구조됐다. ‘외팔이’ 고아 소년은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어 병풍 베끼기에 몰두했고, 중학교를 마친 뒤에는 여기저기 스승을 찾아다니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미술 조기 교육에 ‘실기 박사’까지 나오는 요즘 세상에, 그에게 없는 건 왼손뿐만이 아니다. 학맥도 없다. 그럼에도 스물네 살부터 잇따라 국전에서 8번 입선했고, 1979년 제2회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남들은 둘을 해놓고 쉬는데 나는 열을 내놓고도 쉴 수가 없었다. 만족할 줄 모르고 혹독하게 몰고 나간 건 한 팔이 없었기 때문이다. 없어진 한 팔이 제일 큰 스승”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불편은 종이. 물푸레나무로 만든 중국산 생지(生紙)인 옥판선지에 그리는데, 먹을 금세 흡수해 다루기 까다롭다. 순백에 고운 결이 좋아 굳이 구해다 쓴단다.



 지금도 매일 두 시간씩 글씨 연습을 통해 회화를 연구한다는 그의 작품은 군데군데 갈라진 선조차 톺아 보게 만드는 오래된 도자기, 혹은 칼칼한 목판화나 탁본을 닮았다. 오랜만의 서울 개인전엔 눈 내린 불국사, 갈라진 다완과 탁본, 봉암사 백운대 등 50여 점을 걸었다. 각각 2m는 너끈히 넘는, ‘불편하게’ 완성한 대작들이다.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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