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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인간 자체, 날것이고 아날로그죠"

중앙일보 2013.11.21 00:30 종합 30면 지면보기
“자신의 일에 매진하라. 감동을 찾기 위해 노력하라.” 박정자씨가 꼽는 ‘아름답게 나이드는 비결’이다. [사진 삼성생명공익재단]


“누군가는 시작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많은 연극인들이 가난해요. 4대 보험 가입도 안 되고, 건강검진도 못받아요. 그런 연극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만든 재단입니다. 어려울 때 언덕이 돼주고 싶은 마음에서요.”

'삼성행복대상' 여성창조상
일흔 무대 현역 박정자씨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선정한 2013 ‘삼성행복대상’ 여성창조상 수상자로 선정된 연극배우 박정자(71)씨. 그가 이 상을 받은 건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 자격으로다. 삼성은 기존의 ‘비추미여성대상’과 ‘삼성효행상’을 올해부터 삼성행복대상으로 합쳤다. 연극인복지재단은 열악한 환경에서 활동하는 연극인들의 복지 향상을 위한 재단으로 박 이사장 주도로 2005년 설립됐다.



 20일 오전 만난 박 이사장은 “올해 재단을 통해 700여 명 이 건강검진을 받았다”며 뿌듯해 했다. 병에 걸린 연극인들에겐 100만~500만원 정도 위로금도 지급한단다.



 “송승환 PMC 대표, 설도윤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이 연 1000만원씩 보태는 게 큰 힘이 되죠. 연극 전공 교수들도 한 달에 1만원씩 지원합니다. 연극을 사랑하는 관객들이 얼마씩 보태기도 하죠. 묵묵히 계속해 나가야죠.”



 연극인들은 왜 가난할까. 그의 얘기다. “나도 연극하면서 계약서라는 걸 써본 적이 없는 것 같고, 계약서를 쓸 만큼 큰 액수의 출연료를 받은 적도 없어요. 이달 초 국립극장에서 한 공연 ‘단테의 신곡’은 일주일 공연이 모두 매진됐지만 출연료는 10년 전과 같았죠. 아이돌 스타 1회 방송 출연료도 안 될 겁니다. 가난을 예술가의 덕목으로 여긴 적도 있지만, 후배들이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진 모르겠어요.”



가난한 연극인 힘되는 언덕이고파



 그는 50년을 ‘돈 잘버는’ 방송으로 일탈하지 않고, 오로지 연극배우로만 살아왔다. “연극을 할 때 살아있다고 느낍니다. 한 해도 쉬지 않고 무대에 올랐죠. 150여 편 출연했을 겁니다. 연극을 하지 않으면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아요. 하하.”



 박 이사장은 연극을 “진짜 인간, 그 자체, 디지털이 섞이지 않은 아날로그”라고 했다. “내 무대를 영상으로 담은 걸 본 적이 있는데 그 모습을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었습니다. 날것인 무대를 카메라는 담을 수가 없어요. 흐르는 시간과 가둬 둘 수 없는 공간 속에서만 존재하는 게 연극입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해 후회는 없을까. “똑똑하질 못해요. 직진밖엔, 다른 길을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



연극 안 하면 답답해 죽을지 몰라



 박 이사장에게 ‘일흔 넘어서 그렇게 아름답고 열정적일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자신의 일에 매진하기. 긍정적으로 살아가기. 누구나 인생살이는 고달프고, 피폐해지기 쉽죠. 그래서 예술이, 감동이 필요합니다. 가만히 있는데 감동이 찾아오나요.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노력해야죠.”



 박 이사장은 “상금이 5000만원이나 된다. 연극인 복지재단에 일부 기부하고, 나머지로는 스승 김정옥(81·연극연출가) 선생님과 이병복(86·무대미술가) 선생님을 모시고 따뜻한 곳으로 여행 갈 생각”이라고 했다.



일흔 연극인의 꿈은 이랬다. “80세가 될 때까지 ‘19 그리고 80’을 공연할 겁니다. 19세 소년과 80세 노파의 사랑이야기죠. 5차례 공연했는데 매년, 혹은 격년으로 계속하는 게 자칭 ‘박정자 프로젝트’입니다. 그때까지도 나는 계속 바보로 남을 거고요.”



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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