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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 프로 스포츠 분석해 보니

중앙일보 2013.11.21 00:28 종합 28면 지면보기
프로야구가 끝났다. 포스트시즌 16경기 입장 수입만 92억원에 달했다. 프로야구 정규시즌 전 경기가 케이블 TV로 중계됐다. 포스트시즌에서는 16경기 중 14경기가 지상파 TV로 생중계됐다. 장당 4만~5만원하는 입장권이 20만원 이상에 암표로 거래됐다. 시즌이 끝났지만 프로야구는 아직도 뜨겁다. 강민호(롯데·75억원) 등 FA(자유계약선수) 15명의 계약 총액이 523억 5000만원에 이르렀다. 프로축구는 순위가 가려지는 리그 막바지다. 그러나 열기는 야구와 비교하기 민망한 수준이다. 지난 10월 한국-브라질 평가전에 6만5000여 명이나 들어찼던 대표팀의 인기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한국의 양대 스포츠인 축구와 야구. 하지만 극명하게 엇갈리는 프로축구와 프로야구의 성적표는 어디서 생긴 것일까. 프로축구와 프로야구가 공존 발전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잔재미 프로야구 vs 큰재미 축구
그런데 야구가 웃음이 더 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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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시청률 0.86% vs 0.35%

중계권료도 250억 vs 50억

평균관중은 3000여 명 차이




① 1904년 탄생한 ‘황성 YMCA 야구단’. ② 1982년 프로야구 개막경기. ③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 일본과의 결승에서 나온 김재박의 ‘개구리번트’. ④ 국내 1호 메이저리거 박찬호. ⑤ ‘국민타자’ 이승엽. [중앙포토]
“여러 지표를 비교하면 프로축구와 프로야구는 10배 차이는 나는 것 같습니다.” 프로야구 쪽에서 목에 힘주고 하는 말이 아니다. 프로축구연맹 관계자의 목소리다.



 지난 9일 열린 프로축구 울산-전북전은 리그 1, 2위 팀 간의 경기였다.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이 경기를 지켜본 접속자는 1만4000여 명에 불과했다. 롯데·KIA·LG 등 프로야구 인기팀의 경기는 접속자가 10만을 가볍게 넘는다.



 TV에서도 축구는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 K리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경기는 서울과 수원의 ‘수퍼매치’다. 그러나 지난 8월 열린 수퍼매치는 지상파나 스포츠 전문 채널에서 볼 수 없었다. 올해 프로축구는 지상파를 통해 6경기가 중계됐다. 스포츠 전문 채널을 통해 중계된 것도 28경기(SPOTV 포함 땐 103경기)에 불과하다. 반면 야구는 전 경기(576경기)가 스포츠 전문 채널과 XTM을 통해 생중계된다. 또 경기가 끝나자마자 그날의 경기를 속속들이 분석하는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방송한다. 매일같이 스토리가 쌓이고, 팬이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다.



 올해 프로야구 시청률은 정규시즌 평균 0.86%(케이블채널 기준)였고, 한국시리즈는 11.25%(지상파 기준)에 이르렀다. 프로축구는 평균시청률이 0.35%(케이블)에 불과했다.



 관중 수에서는 상대적으로 차이가 적다. 올해 프로야구 정규시즌 관중은 총 674만3940명으로 경기당 1만1184명이다. 프로축구는 193만8915명으로 경기당 7818명이다.



 그러나 객단가(총입장수입/총관중)에서는 차이가 크다. 넥센의 올해 객단가는 1만2232원이다. 프로축구는 객단가를 공개하는 구단이 없다. 대구FC는 2012년 성인 연간회원권이 4만원에 불과하다. 홈경기를 20경기로 따지면 경기당 입장료는 2000원꼴이다.



 프로야구는 지난해 중계권료 수입으로 250억원을 벌었다. 여기에 메인스폰서와 KBO의 수익사업을 맡고 있는 KBOP 수입이 100억원에 달한다. 각 구단이 KBO로부터 받는 수익분배금이 30억원에 가까울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프로축구연맹은 지난해 수익이 5억원에 그쳤다.



뿌리내리는 과정도 달라

명문고서 야구팀 만들자

축구는 상대적으로 소외




축구는 유럽에서 태어났다. 야구는 미국에서 시작됐다. 축구는 공만 있으면 할 수 있다. 야구는 배트·글러브·보호장구 등 장비가 많이 필요하다. 축구는 모든 대륙에서 즐기는 글로벌 스포츠다. 야구는 미국을 중심으로 중남미와 일본·한국 등에서만 성행한다. 축구는 하프타임 15분을 제외하고는 쉬는 시간이 없다. 야구는 타자 한 명 한 명과의 승부가 모여 전체 경기를 이룬다. 옆 사람과 치킨에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 여유도 있다. 축구는 잠깐 화장실 갔다가 골 들어가는 장면을 놓치기 일쑤다.



 국내에 뿌리를 내리는 과정도 달랐다. 가장 차이가 나는 건 축구부와 야구부를 육성했던 고등학교다. 야구는 경기고·서울고·부산고·경북고·광주일고·대전고 등 각 지역을 대표하는 명문고가 팀을 운영했다. 선린상고·대구상고·부산상고 등 상업학교 역시 지역을 대표하는 명문이었다. 배재고·휘문고 등 축구부와 야구부를 함께 운영했던 학교도 있었지만 소수에 그쳤다. 대부분은 한 종목에 집중 투자했고, 축구부는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떨어지는 학교가 운영하는 모양새로 정착됐다.



 왜 명문고가 야구를 했는가에 대한 자료나 증언은 찾기 어렵다. 원로 축구인 박경호(82)씨는 “일제 때는 축구는 조선사람, 야구는 일본사람이 주로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공이 굴러왔을 때 발로 차면 조선사람, 손으로 잡아 던지면 일본사람이라는 말이 있었다. 야구는 일본 학생이 많이 다녔던 관립 중학에서 많이 했고, 축구는 한국 학생이 많은 학교에서 하던 전통이 이어진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1904년 미국인 선교사 질레트의 소개로 조선 땅에 ‘황성 YMCA 야구단’이 탄생했다. YMCA의 초기 지도부가 독립운동가였고, 야구엔 선교와 계몽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명문고와 서구문화의 결합이 야구에 엘리트 이미지를 입혔다.



 명문고 야구부는 지역민들의 자랑거리였다. 1960∼70년대 고교야구는 지금의 프로야구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프로야구가 출범과 동시에 연고지 정착에 성공한 배경이다. 축구는 화랑·충무 등 언제나 대표팀이 화제의 중심이었다.



프로야구는 강한 지역 구도

프로축구는 연고감 약해도

A매치 땐 국민 통합 효과




① 1931년 전 조선 축구대회에서 우승한 경신학교. ② 1983년 프로축구 원년 수퍼리그 개막식. ③ 2002년 월드컵 4강을 확정한 홍명보. ④ 국내 1호 프리미어리거 박지성. ⑤ 영국으로 진출한 축구 대표팀 주장 이청용.
전두환 정권 출범과 함께 축구와 야구의 프로화가 진행됐다. 고교 야구의 인기를 기반으로 한 프로야구는 1982년 먼저 프로화에 성공했다. 프로축구는 첫발부터 엉거주춤이었다. 6개 팀이 연고지를 정하고 첫해부터 홈 앤드 어웨이를 한 야구와 달리, 축구는 프로 2팀(할렐루야·유공)과 실업 3팀(대우·포항제철·국민은행)으로 출발했다. 연고지 개념도 희박해 홈 경기 대신 전국 각지를 돌며 유랑극단식 리그를 치렀다.



 축구가 연고지 의식이 희박했던 건 해방 이후 대표팀을 중심으로 팬덤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67년 중앙정보부가 창단한 팀 양지가 대표적 사례다. 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이 8강에 오르자 이에 대항하는 강팀을 만들기 위해 최강 선수들을 불러모았다. 야구가 지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면, 축구는 전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떠맡았다.



 프로축구는 83년 원년 평균 관중이 2만974명에 달할 정도로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 같은 열기는 이내 식었다. 한국에서 개최된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도 축구와 야구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정식 종목이 아니었던 야구는 두 대회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지만, 축구는 모든 자원을 두 대회에 집중했다.



 80년대 프로축구 MVP에는 최순호·허정무·김주성 등 당대 최고 스타의 이름이 없다. 이들은 장기간 대표팀에 차출돼 프로 무대에서 거의 뛰지 못했다. 박철순·이만수·최동원·선동열 등 스타들이 프로야구 MVP에 뽑힌 것과 대조적이다.



 프로야구는 철저한 지역 라이벌 구도로 내실을 다져갔다. 정치적으로 소외됐던 호남의 해태가 아홉 번이나 우승했고, 90년대 초반에는 LG와 해태가 라이벌을 형성했다. 제과 라이벌(해태-롯데), 잠실 라이벌(LG-두산), 재계 라이벌(LG-현대) 등 스토리도 풍부했다. 프로야구는 95년을 정점으로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다. 야구 외에도 영화·음악 등 즐길 문화가 많아진 것이다. 프로야구는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2009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준우승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았다.



놀이터 응원 vs 전쟁터 응원

마시며 노래하는 야구장

북·나팔소리 요란한 축구장




축구와 야구는 응원 문화도 다르다. 축구장이 전쟁터라면 야구장은 놀이터다.



 대형 깃발, 붉게 타오르는 홍염, 가슴을 울리는 북소리와 나팔소리. 축구의 응원도구는 거의 전쟁터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이다. 경기장 밖에서 응원단끼리 패싸움을 벌이는 경우도 가끔 있다. 유럽의 구단들도 과격한 축구팬(훌리건)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는 1992년 프리미어리그로 새출발하면서 경기장에 대형 깃발을 들고 입장하는 것을 금지했다.



 한국 프로축구에는 1990년대 중반부터 서포터라는 이름의 유럽식 응원단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대표팀 응원단 붉은악마도 프로팀 서포터들의 연합체를 모태로 한다. 이들은 축구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일반 팬들과 서포터들이 물과 기름처럼 나뉘는 부작용도 낳았다.



 야구장에서는 최신 가요가 흘러나온다. 선수마다 고유 응원가가 있는 건 전 세계에서 한국 프로야구가 유일하다. 야구장은 지역에서 가장 큰 노래방 또는 술집이라고 불린다. 응원 문구가 적힌 머리띠를 쓰고 응원가를 따라 부르는 여성팬을 보면 야구장에 온 건지, 콘서트장에 온 건지 헛갈린다. 피 말리는 승부가 아니라 경기의 리듬에 맞춰 노래 부르고 즐기는 분위기가 정착됐다.



 프로야구도 1980년대에는 극성팬이 원정팀 버스를 불태우는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2008년 이후 여성 관중이 대거 유입됐고, 가족 단위로 관람하는 문화가 정착됐다. 극성팬들이 과격한 응원을 하고, 상대 선수에게 시비를 거는 사례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프로야구는 대체적으로 가족이 함께 응원할 만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FC 서울은 서포터 중심의 전투적인 응원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본부석 맞은편에 치어리더를 배치해 일반 관중의 응원을 유도하고 있다. 이재호 FC 서울 마케팅팀장은 “승패가 중요한 팬도 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기 위해 오는 팬도 많다. 최근에는 서포터와 일반 팬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응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해준·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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