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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68세 … 평생 춤 췄는데 왜 식은땀 나는 걸까

중앙일보 2013.11.21 00:27 종합 27면 지면보기
원로 전통춤꾼 국수호·김매자·배정혜(위에서부터) 세 명은 9월부터 서로의 춤사위를 익혔다. 우리 문화의 파수꾼들이다. 배씨는 “상대방의 춤을 배우면서 사실 나의 춤이 어디만큼 왔는지 돌아보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순서가 기억 안 나, 아무리 연습해도 헷갈려, 이거 치매 아닌가.”(김매자)

김매자·배정혜·국수호 3인 무대
'바꿔 추는 춤' 연습장 가보니 …



 “순서보다 동작이 문제에요. 움직임에 너무 ‘쪼’(調·개성이나 특성)가 있어.”(국수호)



 “40년을 그렇게만 췄는데 당연하지. 당신도 마찬가지야, 치-”(배정혜)



 티격태격한다. 핀잔도 주고, 흉도 보고…. 하지만 웃음도 끊이질 않는다. 평균 연령 68세라고 믿기 힘들 만큼 천진난만하다.



 15일 서울 대치동 국수호 디딤무용단 연습실의 풍경이다. 원로 춤꾼 김매자(70)·배정혜(69)·국수호(65) 세 명이 뭉쳐 한창 춤 연습 중이다. 솔직히 세 사람 함께 무대에 서는 것, 자주 봐 온 모습이다.



서로 티격태격 흉 보다 까르르 웃음



 그런데 이번엔 유독 곤혹스러워한다. “식은땀이 줄줄 난다”고 한다. 자기 춤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 사람이 서로 상대의 춤을 춘다. 김매자씨가 국수호씨의 ‘입춤’과 배정혜씨의 ‘춘설’을 추고, 국씨는 김씨의 ‘숨’을 공연하며, 배씨 또한 김씨의 ‘산조’를 춘다. 이른바 ‘춤 바꿔 추기’다.



 패티김·이미자·현미씨가 한 무대에 올라 자기 히트곡 말고, 상대방의 노래를 부른다고 보면 된다. 다만 자신의 창법대로 부르면 반칙이다. 자기 스타일이 아닌, 원작자의 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게 이번 공연의 핵심이다.



 “자기 식대로 추는 건 별 의미도 없고, 어렵지도 않아요. 내 것을 내려놓고, 나의 집착을 버리자는 거죠.”(국수호) 그래서 “동작은 그럴듯하게 금방 따라 하지만 원작자가 행해 온 호흡·기법·원리를 익히는 건 죽을 맛”(김매자)이란다.



 무용전문 소극장인 창무 포스트극장 개관 20주년 기념 공연이다. 포스트극장은 김씨가 운영해 왔다.



 “민간에서 개인이 무용극장을 운영하는 건,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죠. 그걸 20년이나 이끌어 온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일반 사람들 모를 겁니다. 김 선생이 기념 공연하고 싶다고 해서 무조건 참여하겠다고 했어요.”(배정혜)



패티김·이미자·현미 노래 바꿔부르는 격



 창작춤의 대가, 세 사람의 공통점이다. 승무·살풀이·한량무 등 대대로 내려온 전통을 무조건 따라만 하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집어넣고 덧씌워 단순한 1인춤이 아닌, 꽤 규모를 갖춘 극장 무대로 발전시켰다. 전통춤의 현대화이자, 미학적 진화였다.



 선두에 섰던 김씨는 독특한 춤사위를 개발해 창무회라는 단체를 통해 전수해 왔고, 해외 진출에도 적극적이었다. 배씨는 국립무용단·국립국악원 무용단·서울시립무용단 이른바 ‘빅3’ 무용단장을 모두 역임한, 무용계 리더십의 산증인이다. 국씨 또한 카리스마 넘치는 남성 무용수이자, 장쾌한 스케일의 선 굵은 안무가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서로 질투가 없었다면 거짓말이지 않을까. 근데 이번에 춤 배우면서 국 선생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배 선생 춤엔 어떤 철학이 담겨있는지 조금이라도 알게 된 것 같아 그게 가장 살갑고 반가워.”(김매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원 성기숙 교수는 “고희의 나이에도 열정적으로 무대를 꾸미고, 새로운 춤을 익히고, 창작을 한다. 돈이 없으면 없는 만큼, 때로는 있는 돈을 끌어다 몽땅 써 가며 춤에 있어선 타협하지 않았다. 그래서 세 분이 여기까지 온 거다. 정부 지원금에 어느새 길들여진 젊은 세대가 숙고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내 집착 버리고 새 것 익히려니 죽을 맛



 “요즘 무용판이 너무 뿔뿔이야. 물론 우리도 반성해야지. 그래서 이 공연을 하는 거에요. ‘나만 보지 말고 우리를 보자.’ 분열의 장막을 걷고 셋이 화합의 씻김굿을 걸쭉하게 놀아볼게.”(국수호)



 셋의 바꿔 추는 춤 무대는 다음달 2일 오후 8시 서울 마포구 창전동 포스트극장에서 딱 한번 올라간다. 02-337-5961.



글=최민우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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