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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주인님 기분도 알아요 … 차, 미래에서 오다

중앙일보 2013.11.21 00:02 경제 2면 지면보기



'시간이동 한 듯한 즐거움'
2013 도쿄모터쇼 가보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 같았다. 펭귄처럼 생긴 작은 기계가 사람을 태우고 지나가더니 옛 만화영화 ‘달려라 번개호’에서 본 것 같은 삼각형 모양의 전기차, 자동차도 아니고 오토바이도 아닌 역(逆)삼륜차 등 이상한 ‘탈것’들이 속속 모습을 보였다. 급기야 인간과 감정이 통한다는 자동차까지 등장했다. 미래의 어느 한 곳이 타임머신을 타고 통째로 시간이동을 한 듯한 느낌. 도쿄모터쇼의 첫인상이었다.



제43회 도쿄모터쇼가 20일 일본 도쿄 오다이바의 대규모 전시공간인 빅사이트에서 언론사전공개 행사를 시작으로 그 서막을 열었다. 세계 4대 또는 5대 모터쇼, 아시아 최고이자 최대 모터쇼로 군림했던 도쿄모터쇼는 그러나 2000년대 중·후반 한때 자국 업체들의 부진과 중국 시장의 급부상 때문에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중국 모터쇼에 권좌를 위협받는 듯한 양상을 보였다.



이번 모터쇼에 참가한 완성차 업체도 15개 일본 업체와 20개 해외 업체 등 총 35개에 그쳤다. 세계에서 처음 공개되는 차량들도 오토바이 등을 제외할 경우 43개로 다른 유수의 모터쇼에 비해 적은 숫자다. 그나마 35개 차종이 일본차다.



하지만 이번 모터쇼에서 일본 업체들이 펼친 화려한 미래 자동차 기술 경연은 오히려 규모만 앞세운 여타 대형 모터쇼들을 비웃는 듯했다. 자동차에서만큼은 여전히 기술 일본의 위상이 건재하다는 점을 과시라도 하듯 주요 업체들의 컨셉트카는 다른 어느 모터쇼에서도 구경할 수 없는 독특한 것들이었다. 이번 모터쇼의 주제 역시 ‘경쟁하라, 그리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라’다.



공상과학영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닛산의 컨셉트카 ‘블레이드글라이더’는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앞쪽이 꼭짓점을 이루는 삼각형 모양의 이 3인용 전기차는 내부 공간도 삼각형이다. 1열 한가운데에 운전석 한 좌석이, 2열에 좌석 2개가 각각 배치돼 있다. 바퀴 안에도 전기모터가 달려 별도의 구동력을 제공하는 일종의 4륜구동 전기차다. 문은 위로 열리는 이른바 걸윙도어 형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전기차 리프를 제작했던 닛산이 전 세계에 다시 한번 기술력을 과시한 차량인 셈이다.



  혼다 전시장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1인용 실내 운송수단인 ‘유니커브’의 신형 모델 ‘유니커브 베타(β)’였다. 펭귄 모양의 유니커브는 펭귄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에 좌석이 있어 사람이 앉을 수 있다. 몸을 기울이는 대로 전후좌우, 대각선 어느 방향으로든 움직인다. 인간형 로봇의 선구자 격인 ‘아시모’ 개발을 통해 갈고닦은 혼다의 기술들이 여기에 투입됐다. 유니커브베타는 620㎜ 크기에 25㎏으로 구형보다 가벼워졌다. 리튬이온배터리를 사용하며 한 번 충전으로 6㎞의 거리를 운행할 수 있다. 최고 시속은 6㎞. 혼다는 유료임대 사업부터 시작한 뒤 본격적인 상업화 가능성을 검토할 예정이다.



도요타의 ‘FV2’는 기본 개념부터 보는 이를 압도했다. ‘인간과 감정이 통하는 탈것’이라는 엄청난 컨셉트를 제시한 이 차량은 음성인식이나 화상인식 기능을 통해 운전자의 음성이나 표정을 관찰해 현재의 감정 상태를 추출해낸다. 이를 이미 축적된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해 운전자의 현재 감정 상태가 어떤지 알아낸 뒤 운전자에게 현 상태에 맞는 운전방법을 추천해 준다. 이 차량에는 미래의 어느 순간 자율주행 차량(무인차)이 자동차의 주류가 됐을 때도 인간에게 계속 운전하는 즐거움을 제공하겠다는 철학도 담겨 있다. 이 차량도 사람의 체중이 이동하는 방향을 따라 움직이는 형태다.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결합한 듯한 도요타의 2인승 전기 삼륜차 ‘아이로드’도 눈길을 끌었다. 일반적인 삼륜차와 달리 앞바퀴가 2개, 뒷바퀴가 1개로 코너를 돌 때 차체 균형을 잡아주는 기술이 적용돼 넘어지지 않는다. 길이 2350㎜, 폭 850㎜, 높이 1445㎜ 크기의 초소형 차량으로 무게 300㎏, 최고 시속 45㎞다. 언뜻 스쿠터처럼 보이지만 지붕과 문이 있고 1회 충전으로 50㎞까지 주행할 수 있다.



이런 차량들이 실제 길거리에서 만날 시점을 점치기 힘든 먼 미래의 가상 제품이라면 더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 보다 현실적인 차들은 역시 전기차와 수소연료전지차, 하이브리드 차량이다. 도요타의 ‘FCV’ 컨셉트카는 도요타의 발표대로라면 혁신적인 차량이다. 도요타에 따르면 이 차는 연료인 수소를 완전히 충전하는 데 3분밖에 걸리지 않고 한 번 충전하면 500㎞의 거리를 달릴 수 있다. 충전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주행 가능 거리가 짧다는 게 차세대 차량들의 가장 큰 단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획기적인 발전이 아닐 수 없다. 도요타는 이 차를 2015년 시장에 내놓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닛산은 베스트셀링 전기차인 ‘리프’의 외관을 다듬은 리프 에어로 스타일과 LNG하이브리드인 미니밴 스타일의 택시 컨셉트카를 선보였다.



도쿄모터쇼의 또 다른 장점은 관람객들이 미래형 운송수단들을 직접 운행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모터쇼 측은 행사장 한쪽에 소형 전기차들과 유니커브 등 개인용 탈것들을 모아놓고 관람객들이 직접 타볼 수 있도록 했다. 닛산의 2인용 미니 전기차인 ‘뉴모빌리티 컨셉트’를 타고 총 100m 정도 될 법한 미니 트랙을 2바퀴 돌아본 결과 도심형 근거리 운송수단으로 소형 전기차의 활용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랙이 짧고 굴곡이 있어 속도를 많이 낼 수는 없었지만 시속 20㎞까지 조용하게 운행했다. 길이가 2340㎜에 불과한 작은 차량이지만 버튼형 변속기와 핸들,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 등이 장착돼 있어 어렵지 않게 조작할 수 있었다.



“즐겁지 않으면 자동차가 아니다. 좋아서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자동차를 만들어야 한다.” 가토 미쓰히사 도요타 부사장은 이날 자사의 미래형 차량들을 소개하면서 이런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이 일본 자동차 업체의 철학을 대변한다면, 그리고 모터쇼가 그 나라 자동차 업체들의 철학을 펼치는 현장이라면 도쿄모터쇼는 이미 그 목적을 달성한 듯 보였다. 그만큼 즐거웠기 때문이다.



도쿄=박진석 기자



도쿄모터쇼 홀수 해 10월 말에서 11월 초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아시아 최고(最古)의 모터쇼다. 1954년 1회 모터쇼 이후 73년까지는 매년 개최 되다가 이후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것으로 변경됐다. 일본 자동차 업체가 전성기를 구가할 때는 세계 최대 모터쇼 중 하나로 꼽혔지만 2000년대 중국 자동차 시장이 급부상한 이후 예전보다는 위상이 다소 낮아졌다. 43회째를 맞는 올해 모터쇼는 23일부터 12월 1일까지 진행된다.



(사진 AP/뉴시스, 로이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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