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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병행수입 막는 법 … 화장품 수입하는 데 "정신감정 받아라"

중앙일보 2013.11.20 01:06 종합 2면 지면보기
한국에서 인기 있는 이탈리아 화장품을 현지 제조사가 아닌 도매업자로부터 사들여 싸게 들여오려던 A씨(42). 그는 지방 식약청에 수입업자 등록을 하러 갔다가 황당한 요구를 받았다. 정신감정을 받아오라는 것이었다. ‘화장품법’에는 국내에서 화장품을 판매하려면 업체 대표의 정신감정을 받아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정신감정 근거도 쓴웃음을 짓게 만든다. 화장품을 안전하게 유통하지 않으면 얼굴에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과를 다녀온 A씨는 이번엔 다른 요구를 받았다. 화장품을 수입하려면 화학과 출신이나 화장품 제조회사 근무 경험이 있는 직원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연구시설도 갖춰야 했다. A씨는 “병행 수입은 1인 업체가 하는 경우도 많은데 화학과 출신 대졸자를 채용하라는 것은 현실을 한참 모르는 얘기”라며 “병행 수입을 통해 기존보다 10% 이상 싸게 팔 수 있었는데 까다로운 조항 때문에 접었다”고 말했다.


같은 제품도 제조번호별로 검사
샘플로 자꾸 보내니 값만 올라
제조 1급비밀 ‘공정도’ 제출 요구
현지 생산공장 심사까지 받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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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직된 규제가 병행 수입 확대를 막고 있다. 물가를 낮출 기회를 정부 스스로 걷어차고 있는 셈이다. 화장품의 경우 수입해 와도 또 다른 장벽이 기다리고 있다.



 수입 제품이 현재 국내에 판매되는 제품과 같다는 것을 입증하는 ‘동일성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이때 샘플을 제조번호별로 채취한다. 동일한 제품이라도 제조번호가 다르면 샘플 검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일한 로션 제품 100개를 들여왔는데 제조번호가 10개면 열 번의 검사를 받아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보내는 샘플도 제조번호별로 5개씩을 보내야 한다. 심지어 100개 제품을 수입해 50개를 샘플로 보내는 경우도 생긴다.



 남은 50개의 국내 판매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한 화장품 병행 수입업자는 “제조회사들은 제조 날짜나 생산 공장을 식별하기 위해 동일한 제품에도 제조번호를 달리 붙인다”며 “한 개 제품으로 한 번 검사 받으면 끝날 일을 50개 제품으로 10회에 걸쳐 검사를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규제의 부작용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새누리당 김현숙 의원이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수입 화장품·향수 수입현황과 통관 보고실적’을 분석한 결과 수입 화장품·향수는 통관가격(수입원가)보다 최대 6.5배 비싼 가격에 시중에서 팔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장품 중 지난해 최다 수입액을 기록한 일본 화장품 ‘SK-Ⅱ 트리트먼트 에센스(215ml)’는 수입원가(5만1000원)보다 약 4배 높은 가격(19만9000원)에 판매됐다.



 시계의 경우는 제도 때문에 병행 수입이 아예 막혔다. 정부는 지난 7월부터 시계 통관 심사 서류에 제조일자 표시를 의무화했다. 제품 안전성 확보를 이유로 공산품 품질관리법 자체가 개정됐기 때문이다. 지난 7월 26일 이후 제조·수입되는 모든 시계는 무조건 제조 연월일과 제조 국가명을 표시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 정보는 제조사에서 직접 물건과 증빙서류를 받는 독점 수입업자나 수입품 공식판매법인인 ‘○○○코리아’가 아닌 한 알 수 없다. 해외에서 도매로 물건을 들여오는 병행 수입업자들은 서류 요건을 맞추는 게 불가능한 셈이다.



 유모차 등 아동 용품 분야는 유독 병행 수입 절차가 까다롭다. 병행 수입업체 김모(42) 사장은 “15년째 병행 수입을 하고 있지만 유모차만은 못 하고 있다”며 “안전 문제를 내세워 현지 생산 공장을 심사하는 절차도 있고 통관도 매우 까다롭다”고 말했다. 가격 경쟁이 안 되니 유모차의 국내 판매 가격은 치솟는다. 독일에서 150유로(약 21만5000원)에 살 수 있는 제품이 한국에서는 80만원이 넘는다. 김 사장은 “국내에 판매되는 가격의 절반만 받아도 수익이 나기 때문에 유모차 수입을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심사가 너무 까다로워 포기했다”고 말했다.



 식품 병행 수입도 까다롭긴 마찬가지다. 식약처에 영양 성분표는 물론 제조공정도까지 제출해야 수입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영양 성분표는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제조 공정도는 상황이 다르다. 제조회사만이 알 수 있는 1급 비밀이기 때문이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제조공정도를 구하지 못해 식품 병행 수입을 포기한 일도 많다”며 “이 조항은 본사로부터 서류를 받을 수 있는 독점 업체를 보호해주는 기능을 한다”고 하소연했다.



 지난해 4월 정부 과천청사에서는 지식경제부 차관 주재로 병행 수입 현장의 애로사항을 듣는 간담회가 열렸다. 정부가 개선책으로 내놓은 건 지난해 8월 도입한 ‘병행수입통과인증제도’가 유일하다. 병행 수입 제품에 관세청이 QR코드(Quick Response·격자무늬 스마트폰용 바코드)를 붙여줘 해당 제품이 진품이고 정상적으로 통관됐다는 것을 인증해주는 제도다. 그러나 이 제도도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QR코드를 부착하려면 최근 2년간 관세법·상표법 위반 사실이 없어야 하고 최근 2년간 병행 수입 실적이 연 1회 이상이어야 하며 관세 체납 사실이 없어야 한다. 중소업체들이 이들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기는 쉽지 않다. 또 QR 코드 구매 시 장당 150원(부가세는 상품에 따라 별도)씩 들어가는 비용도 부담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관세청은 현재 QR코드 가격 인상을 검토 중이다.



 제도 외에 독점 수입업체나 ‘○○○코리아’의 횡포도 병행 수입 확대를 막는다. 병행 수입은 전액 현금으로 선결제하기 때문에 정식 수입업체가 ‘진품인지 의심된다’며 관세청에 통관보류를 신청하면 병행 수입업자는 큰 타격을 받는다. 통관을 못 받고 묶여 있는 기간이 장기화되면 중소업체는 자금이 돌지 않아 파산한다.



◆ 특별취재팀=최지영(뉴욕)·박태희(오사카)·구희령·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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