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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해외 어린이, 왜 도와야 하는가

중앙일보 2013.11.20 00:42 종합 29면 지면보기
오종남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
서울대 자연대 주임교수
제주에서 10월 말일부터 사흘 동안 ‘나누자, 이 길에서!’라는 주제로 ‘2013 제주올레 걷기 축제’가 열렸다. 올해부터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후원자로 참여하게 돼 개막식에 다녀왔다. 참석 귀빈들에게 “이 길에서 무엇을 나눌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서가 있었다.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행복’,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슬픔’ 등 각자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단어를 하나씩 설명했다. 나는 ‘신발’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청중은 생뚱맞게 여기는 눈치였다.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연식이 우리처럼 오래된 세대는 어린 시절 고무신을 신거나 맨발로 다니던 추억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동안의 경제 발전에 힘입어 멋진 등산복을 입고 형형색색의 신발을 신은 채로 축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촌에는 아직도 신발이 없어 맨발로 살아가는 어린이가 적지 않습니다. 맨발로 살아가는 지구촌 어린이들에게 신발을 나눠주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오늘 올레길을 걷는 동안 저는 맨발로 살아가는 어린이들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잠시나마 맨발로 걷고자 합니다.”



 약 1시간 반 동안 올레길을 맨발로 걸으며 많은 참가자로부터 인사를 받았다. 유니세프 사무총장이 맨발로 걷는 것을 보니 유니세프에 후원금을 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이야기였다. 1950년 3월 25일 유니세프는 건국한 지 2년이 채 안 된 대한민국과 기본 협정을 맺고 어린이 구호 사업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3개월 뒤인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한국에서의 유니세프 구호 활동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93년 말 주한 유니세프 대표부가 한국에서 철수할 때까지 43년간 한국 어린이들을 위해 지원한 금액은 2300만 달러에 이르렀다.



 94년 지구촌 어려운 어린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선진국형 국가위원회인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국내에서 출범했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설립 첫 해 351만 달러의 기금을 개발도상국에 지원하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1000만 달러를 넘어섰고 2009년에는 2000만 달러를 넘어 처음으로 36개 유니세프 국가위원회 가운데 기금 순위 10위로 떠올랐다. 그 뒤 2011년에는 7위, 지난해 2012년에는 7508만 달러를 지원해 전 세계 4위를 기록했다. 이제 2014년 1월이면 유니세프를 통해 도움을 주는 나라로 발돋움한 지 20주년을 맞으니 ‘지구촌 도우미’로는 성년이 되는 셈이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으로 봉사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는 “한국에도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가 적지 않은데 꼭 해외 어려운 어린이를 위해서만 기금 모금을 해야 하는가?”다. 올레길을 걸으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보았다. 우선 한국에는 적어도 신발이 없어서 맨발로 다니는 어린이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의 어려운 어린이들은 나아진 국력을 바탕으로 국가의 재정에서 보살필 수 있는 수준에 이미 도달했다고 믿는다.



 올레길을 맨발로 걸으며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한국 어린이가 아닌 지구촌 어려운 어린이를 돕는 데 앞장서는 의미를 생각해봤다. 이를 통해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개선되고 한국인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지며 한국 제품에 대한 호감도 역시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필리핀을 강타한 태풍 하이옌에 부모와 집을 잃고 고통받는 어린이들 소식이 꼬리를 물고 있다. 오염된 물을 마시다 전염병에 걸려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이 어린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긴급구호를 해야 할 때라 마음이 급하다. 마침 오늘이 유엔 아동권리협약이 채택된 날이자 세계어린이의 날이다.



오종남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

서울대 자연대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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