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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안도현, 연탄재, 박 대통령

중앙일보 2013.11.20 00:31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 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모든 대통령 선거는 교훈을 남긴다. 그리고 사회는 그 교훈으로 진화한다. 1997년 이회창은 한국인들에게 병역의 중요성을 깨우쳐주었다. 2002년 김대업을 보면서 사람들은 경계심을 갖게 되었다. ‘거짓 폭로에 쉽게 속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차떼기 파동으로 금권선거가 사라지기도 했다.



 2012년 대선도 사회를 바꿀 것이다. 국정원 사건으로 정보기관들은 선거 때 더욱 조심할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을 허위사실로 음해한 이가 재판을 받은 사건도 있다. 비록 그가 유죄 처벌은 면했지만 재판을 보고 많은 이가 느꼈을 것이다. 앞으로 많은 사람의 혀가 무거워질 것이다.



 여러 사건 중에서 안도현은 특별하다. 저명한 시인이기 때문이다. 그가 유명하므로 사건도 유명하다. 그래서 교훈도 크고 유별날 것이다. 그는 문재인 후보의 공동선대위원장이었다. 그는 대선 직전 트위터에 글을 여러 개 올렸다. ‘박근혜 후보가 도난 문화재로 등록된 안중근 의사 유묵(遺墨)을 갖고 있다’는 취지였다. 최근 그는 후보자 비방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안 시인은 판결 후 노골적으로 판사를 비난했다. “(나는) 재판관이 쳐놓은 법이라는 거미줄에 걸린 나비 같다. 재판부는 재판을 한 게 아니라 법의 이름으로 묘기를 부렸다. 최고 권력자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는 충신을 보는 것 같다.”



 아마도 나비라는 건 ‘약하지만 자유로운 존재’를 의미하는 것 같다. 안도현은 자신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시인인데 거미줄이 부당하게 자신을 옭아맨다고 외치고 싶은 모양이다. 판사를 ‘최고 권력자의 충신’이라 했으니 그에게 박근혜 대통령은 흑거미쯤 되지 않을까. 안도현의 말대로 시인은 정말 나비일까. 나비처럼 무한정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존재일까.



 저명한 인물 중에는 정치적 자산과 사회적 자산이 있다. 사회적 자산은 특정 분야에서 업적을 쌓거나 사회에 기여한 중요 인물들이다. 안도현은 많은 시를 썼고 많은 이가 그 시를 좋아한다. 특히 ‘연탄’에 관한 시들은 수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있다. 평범한 소재에서 평범하지 않은 감동을 건져냈기 때문이다. 안 시인은 소중한 사회적 자산이다.



 하지만 사회적 자산과 정치적 자산은 다르다. 어느 한 부문에서 공을 쌓으면 사회적 자산이 될 수 있지만 정치적 자산은 종합적이어야 한다. 정치라는 게 종합예술이요 복합기술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자산 중 대표적인 존재는 뛰어난 지도자다. 지지와 존경을 받는 지도자가 되려면 적어도 세 가지를 지녀야 할 것이다. 그것은 열정·지식·경륜이다.



 우선 지도자는 공동체를 보다 나은 모습으로 바꾸려는 열정을 가져야 한다. 그런 열정을 현물화(現物化)하려면 넓고 깊은 지식이 필요하다. 그런데 책에서 읽은 지식만으로는 안 된다. 공동체의 정치·사회·경제적 문제를 고뇌하고 몸으로 부딪쳤던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게 경륜이다.



 박근혜는 열정·지식·경륜에서 인정받아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됐다. 문재인도 마찬가지다. 야당과 진보세력엔 그가 삼박자를 가장 잘 갖춘 지도자였다. 안철수가 실패한 건 본질적으로 이 부분에서 문재인에게 크게 뒤졌기 때문이다. 인권변호사와 대통령 비서실장을 거친 사람과 벼락치기 정치신인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주요 정당의 대통령 후보는 훌륭한 정치적 자산이다. 사회적 자산이야 어느 정도 노력하면 될 수 있지만 정치적 자산은 그렇지 않다. 수많은 소쩍새가 오랫동안 울어야 한다.



 국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정치적 자산이 훨씬 중요하다. 김지하는 적잖은 지지자를 얻은 저항 시인이었다. 사회적 자산이다. 하지만 결국 국민을 가난에서 구한 건 독재자 박정희다. 사회적 자산이 없어도 국민은 산다. 하지만 궁핍한 때에 정치적 자산이 없으면 국민은 배고프다. 노인연금을 고뇌하는 건 대통령이지 시인이 아니다.



 시인이 없어도 국가는 산다. 하지만 대통령 후보들이 없으면 국가는 길을 잃는다. ‘화가와 시인은 거짓말을 허락받았다’는 스코틀랜드 속담이 있다. 그때의 거짓말은 구속되지 않는 상상력과 자유로운 표현을 의미할 것이다. 허위사실로 대통령 후보를 비방할 수 있는 자유는 아닐 것이다.



 안도현 시인은 대표작 ‘너에게 묻는다’에서 이렇게 적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그의 시를 이렇게 바꾸어주고 싶다. “대통령 후보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에겐 그들만큼 열정·지식·경륜이 있느냐.”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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