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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우리 병원은 남성 수술 전문이라 아픈 건 안 봅니다

중앙일보 2013.11.20 00:31 종합 31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얼마 전 목이 부어 침 삼키기조차 힘들어졌다. 이비인후과를 찾았더니 의사는 비강내시경으로 코와 목 안을 살피더니 “맑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만들 수 있다”며 수술 날짜를 받자고 했다. 알고 봤더니 목소리 교정 전문 클리닉이었다.



 과거 앓았던 요로결석과 비슷한 증상으로 비뇨기과를 찾았다가 “남성 수술이 전문으로 ‘확대’를 주로 하기 때문에 결석 진단 기기가 없다”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 눈이 침침해 안과에 갔더니 의사가 “노안이 약간 있는데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수술법을 도입했으니 받아보라”고 권유했다. 돌아섰지만 사실 귀가 솔깃하기도 했다.



 몇몇 의사와 이 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눠봤다. 한 의사는 “성형외과도 문제”라며 “원래 다양한 정밀수술을 담당했는데 최근엔 미용성형 쪽으로 인력이 지나치게 몰린 듯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의사는 “과거 산업재해로 열 손가락이 모두 잘린 환자의 근육·혈관·신경을 일일이 다 이어 붙이고 마침내 다시 움직이게 하는 고난도·장시간 수술에서 보람을 찾는 게 성형외과였는데 요즘은 풍토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성형외과 간판이 즐비한 서울 압구정동·신사동을 지나는 버스를 탔더니 성형을 권하는 광고 방송이 계속 나왔다. 좌석 뒷면은 성형 전후를 비교하는 광고 사진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이런 게 노골적인 성형 유혹이 아닌가. ‘안 고치면 (직장·애인·기회가) 안 생겨요’라고 외치는 듯한 이런 내용은 청소년·청년층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이러니 성형 계·적금·대출이 성행하는 게 아닐까. 이 나라의 법과 규정이 정말로 이런 걸 허용하는 것일까. 끝없는 의문이 생긴다. 마침 여성가족부가 올해 인터넷매체의 유해성 광고를 점검했더니 적발된 210건 가운데 병·의원 광고(38.1%)가 가장 많고 성기능 개선 프로그램(18.6%)과 화장품(13.1%)이 그다음이라고 한다.



 물론 모두 수요가 있으니 생겼을 것이다. 의학적으로 절실한 경우나 수술 뒤 행복을 찾았다는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인간 욕망을 자극해 가수요를 부추기면 정작 필수적인 기본 의료가 소외될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미국 하버드 의대의 하워드 하야트 교수는 “이비인후과 의사가 동네에 이사오면 주민들의 편도선이 남아나질 않는다”는 말로 의료 가수요를 꼬집었다. 현대의료 비판 분야의 고전인 『의료 구명보트: 의료시스템에서 당신의 자리가 있을까』의 저자다. 1989년에 나온 책에서 아직도 울림을 느낄 수 있는 건 우리 현실이 이와 닮아가기 때문은 아닐까. 한정된 의료자원이 기본적인 질병 치료 대신 건강보험에서 제외된 고수익 특수 분야로 쏠릴 경우 어떤 사회적 문제가 생길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시점이다.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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