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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간병하다 막힌 생계 '겹고통'

중앙일보 2013.11.20 00:28 종합 8면 지면보기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아들을 25년간 돌보던 김모(55)씨가 "아들아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긴 채 지난 18일 새벽 자신의 집에 불을 질러 아들과 동반 자살했다. 19일 충남 당진시 송악읍 가학리 김씨의 집이 전소된 채 덩그러니 남아 있다. [김성룡 기자]


#경북 경산시 서모(45·여)씨는 남편(53)에게 “여보 날이 추워졌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남편은 말이 없다. 알아듣지도 못한다. 소위 식물인간이다. 남편은 2002년 결혼 6개월 만에 뇌출혈로 쓰러졌다. 신혼의 단꿈은 깨졌고 그걸로 끝이었다. 11년 동안 남편은 식물인간 상태다. 서씨는 24시간 남편의 손발이 된다. 한시라도 남편 곁을 떠날 수 없다. 가래를 빼고 밤마다 7~8차례 자세를 돌린다. 서씨는 간병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가난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약값·욕창방지깔개 등에 월 60만~70만원이 든다. 남편의 국민연금(장애연금, 60만원)으로 이 돈을 대고 생활이 안 된다. 집을 세 놓은 돈을 거의 다 까먹어간다. 지금 사는 집은 동생이 빌려준 집이다. 친정에서 보내오는 음식과 재료로 먹고 산다. 집이 있다고 정부의 장애인연금을 받지 못한다.

100조 복지 시대의 그늘
'가정 수발' 난치병 가족들



 “사람들은 남편을 요양원에 보내라고 그래요. 내 인생을 생각하면 그렇긴 한데, 그렇지만 요양원에서 아무리 잘 돌본다고 해도 나보다 못해요. 형제들도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해요. 시댁 식구들도 교류가 끊긴 지 오래예요. 생활이 너무 힘들고 끝이 안 보이니까. 암은 얼마 산다고 나오잖아요. 저희는 20년이 될 수도 있고, 얼마나 갈지 기약이 없고….”



65세 돼야 장기요양 서비스



 #만성폐쇄성폐질환 환자인 박종식(64·서울 동대문구)씨는 2009년 스스로 호흡을 못해 기관지를 절개하고 인공호흡기를 달고 산다. 그때부터 누군가 옆에 붙어서 1~2시간마다 가래를 빼줘야 한다. 부인 유광순(61)씨 몫이다. 유씨는 수퍼마켓에도 금방 갔다 와야 한다. 매달 인공호흡기 임대료, 환자용 죽 등으로 의료비가 100만원 정도 들어간다. 건강보험에서 약값과 산소발생기 비용을 지원해주는 게 전부다. 65세가 안 돼 장기요양보험 서비스 대상자도 못된다. 유씨는 “돈이 없어서 죽을 수도 없고. 살리자니 내가 너무 힘들다”면서 “인공호흡기 비용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9년 간병에 5억 재산 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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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서 간병 고통을 받는 환자들은 한결같이 “내가 저 심정을 이해한다”고 말한다. 충남 당진에서 아버지가 식물인간 아들과 동반자살한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당진 사건 같은 극단적인 일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3년 서울 용산구에 사는 아버지가 희귀병 목뼈탈골증후군을 앓던 딸(당시 20세)의 산소호흡기 전원을 꺼 숨지게 했다. 2007년 전남 담양군의 아버지가 유전성 희귀난치병(근육퇴행위축증)으로 20년간 투병한 아들의 산소호흡기를 떼 숨지게 했다.



 식물인간이거나 이런 상태에 준하는 환자를 10년, 20년 간병할 경우 집안이 풍비박산 난다.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손순죽(75·여)씨는 뇌경색으로 식물인간이 된 남편(79)을 9년 넘게 보살피느라 대전의 아파트 한 채와 예금을 날렸다. 손씨는 “5억원가량 들어간 것 같다”고 말한다. 손씨 자신도 남편을 간병하느라 올 들어 간암에 걸려 두 차례 수술을 했다. 이런 정성에도 불구하고 손씨의 남편은 지난 6월 세상을 떴다.



 박근혜정부 들어 암·심장병 등 4대 중증질환 진료비 부담을 줄이려 건보재정을 투입하고 있지만 ‘가정 간병’ 환자들은 비껴간다. 손씨는 “숨진 남편의 뇌경색 부위가 숨골 주변이어서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수술한 뇌질환 환자만 진료비를 5%로 줄이는 특례조치를 적용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가정 간병’ 환자들을 보살피는 거의 유일한 제도가 가정간호제다. 전국의 143개 병원에서 운영한다. 시·군·구 중 이런 데가 없는 곳이 100여 곳에 달한다. 게다가 이런 제도를 운영하는 상당수 민간병원이 수술 등의 진료를 받은 환자를 병원에서 빨리 내보내고 집으로 방문 서비스를 한다. 병상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가정간호 서비스가 퇴원 환자에 집중돼 있고 ‘가정 간병’ 환자들에게는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지역별 편차가 심해 충북 2곳, 강원 4곳에 불과하다. 이번에 아버지가 식물인간 아들과 함께 동반자살한 충남은 7곳으로 적은 편에 속한다. 보건소들이 운영하는 방문간호제는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 진입단계에 있는 환자가 대상이어서 ‘가정 간병’ 환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요양병원 간병비 건보 적용을”



고려대 의대 안형식(예방의학) 교수는 “거동할 수 없는 와상(臥牀) 환자는 집에서 간병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 ‘진료비 5% 특례’ 대상자로 흡수해서 부담을 줄여주고, 요양병원 간병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되 환자가 쏠리지 않게 ‘가정 간병’ 환자에게 선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의 조사자료(2010년)에 따르면 요양병원 월 간병비는 83만원에 달한다.



글=신성식 선임기자, 장주영·김혜미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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