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농사지으랴, 공부하랴 … '개론 선생' 행복한 인생 2모작

중앙일보 2013.11.20 00:26 종합 26면 지면보기
서재 ‘낭형당’에 선 차배근·경욱 부녀는 “연구방법론을 알아야 지식의 창조 과정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적어도 1990년대까지만 해도 사회과학 전공자가 차배근(71)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명예교수의 개론서 한 권 안 읽고 대학을 졸업하긴 어려웠다. 사회과학 이론과 연구 방법론, 언론사(言論史)에 이르기까지 단독 저서만 15종이고, 대부분이 전국 대학에서 교재로 쓰였다. 그의 책은 ‘바이블’로 통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지금은 대부분 절판됐다.

한국 언론사 뿌리 연구하며
4000평 일구는 차배근 교수



 2007년 은퇴 후 경기도 화성에 집을 지어 살면서 4000여 평 농사를 짓고 있는 차 명예교수를 찾아갔다. 79년 펴낸 『사회과학연구방법』이 그의 딸 차경욱(39) 성신여대 생활소비자학과 부교수의 손을 거쳐 완전히 새로운 책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차 명예교수는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야 하는 키 높은 서재 ‘낭형당(囊螢堂)’을 먼저 보여줬다. 반딧불이를 잡아 주머니에 넣어 그 불빛으로 공부하는 곳이라는 뜻의 당호다. 전공 관련 연구서적이 천장까지 빼곡히 꽂힌 가운데 『트랙터 사용설명서』 등 농사 교본이 눈에 띄게 놓여 있었다. 그는 트랙터·건조기 등 각종 농기계를 갖추고 벼·무·배추·가지·고구마 같은 기본 작물부터 블루베리 등 특수작물을 아울러 4000여 평 농사를 짓고 있었다.



 “사실은 시묘살이를 하고 있는 거예요. 30여 년 전 아버님 산소 바로 아래에 땅을 조금 사뒀다가 동네사람들이 돈이 필요할 때 사 달라고 부탁한 땅까지 조금씩 모여 이렇게 커졌죠.”



 있는 땅을 놀릴 수도 없고, 게으르다는 손가락질을 받기도 싫어 열심히 일한다고 했다.



 그는 학계에서도 성실하고 꼼꼼하기로 이름난 학자였다. 40년 간 서울대에 재직하는 동안 교수 휴게실 한 번 안 가고 연구에만 매진한 걸로 유명하다. 책에 들어갈 표 하나 남의 손에 맡기지 않고 직접 그려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딸 차경욱 교수가 이번에 고쳐 낸 책은 ‘실증 연구의 원리와 실제’라는 부제를 달았다. “아버지는 제자들이 책을 고쳐주길 바라셨지만 성격상 하나하나 이견을 내실 게 분명하다. 저는 딸이라 싸울 수가 있었다”고 말했다. ‘낭형당’의 빼곡한 책 틈에선 『피에로 아빠의 고민-우리 아빠 차배근 수필선』이란 문집 두 권도 꽂혀 있었다. 88년과 91년 차경욱 자매가 아버지의 신문·잡지 기고문을 모아 엮은 책이다.



 “집에선 친구 같은 ‘아빠’였어요. 밖에선 무섭고 깐깐한 선비 같은 학자였다는 걸 교수가 되기 전엔 몰랐죠.” 딸 차 교수의 말이다.



 차배근 교수가 연구자로서 마지막으로 세운 목표는 한성순보 발간 이전의 초기 근대 언론사를 10권짜리 시리즈로 정리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다 보니 한문에 능해야 해 공부삼아 『고금소총』을 번역하고, 미국과 중국의 역사를 먼저 알아야겠기에 『미국신문사』 『중국전근대언론사』 『중국근대언론사』 등의 책을 먼저 썼다. 그래서 기획한 10권 중 1책밖에 내지 못했다.



 “농사짓느라 바빠 하나도 못했지만, 그건 꼭 해놓고 죽으려고 해요. 난 ‘개론 선생’이란 별명이 참 듣기 싫더라고…. 비문(碑文)에 ‘교과서만 쓰다 간다’고 적을 순 없잖아요.”



 그런 아버지 앞에서 딸은 말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아버지에 대한 학자로서의 존경심이 점점 더 쌓여가네요.”



화성=이경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