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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금슬 좋던 남편과 사별 후 슬픔 못 벗어나는 어머니

중앙일보 2013.11.20 00:05 강남통신 8면 지면보기


공감 능력 떨어지는 남편, 나이 들면 아내에게 ‘삼식이’(세 끼 밥 차려줘야 하는 귀찮은 사람) 소리를 듣습니다. ‘젊을 때 잘난 척 하며 바쁘다고 날 무시하더니 이젠 하루 세 끼 밥 해달라고 나를 들들 볶네, 아이고 내 팔자야.’ 이렇게 하소연하는 여성이 적지 않습니다.

"먼저 간 남편이 제일 나쁜 남편"
Q: 매일 “더 살아서 뭐하나” 푸념, 슬픔에서 벗어나게 할 방법 없나요
A: 사별 초기의 애도 반응은 정상적
망자에 대해 자주 이야기 하는 게 도움, 기념일은 꼭 같이 있어줘야



 남자는 사회에서 전투력을 요구받다 보니 공감 능력이 떨어집니다. 전투력과 공감 능력은 공존이 어렵기 때문이죠. 그래서 나중에 삼식이가 되는 겁니다. 물론 아주 가끔씩 뛰어난 공감 능력이 있는 남편이 존재합니다. 아내 입장에선 최고의 남자입니다. 동창이나 동네 친구가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저는 아내에게 제일 나쁜 남편은 바로 뛰어난 공감 능력을 가진 남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내와 오래오래 해로하면 정말 최고의 남편이지만, 만약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라도 하면 아내는 보호막이 사라져 지독한 슬픔을 겪습니다. 그동안 남편만으로 충분했기에 자신을 위로해줄 친구 등 정서 지원 네트워크도 부실해 이중고를 겪습니다. 이런 사람을 보면 사랑하다 먼저 가버린 남편이 짜증 나지만 오래 살아주는 남편보다 훨씬 못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을 사별(bereavement) 반응이라 부릅니다. 사별 반응의 핵심은 애도(grief), 즉 상실에 대한 자연스러운 슬픔입니다. 배우자 죽음 뒤에 나타나는 애도 과정은 일반적으로 네 단계를 거칩니다. 처음엔 충격(shock)과 부인(denial)의 과정이 찾아옵니다. 배우자의 죽음을 믿지 않으려는 부인의 심리를 보이다가 반대로 상실의 느낌이 강하게 찾아와 슬픔과 그리움이 나를 압도합니다. 감정이 회색에서 빨강, 그리고 검정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게 사별 후 2~3개월 정도 지속됩니다.



 그러다가 지속적으로 고인에 대해 생각하는 시기(intense concern)가 찾아옵니다. 배우자 죽음을 부인하거나 과도하게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지만 생각과 대화 대부분이 먼저 떠난 배우자에게 집중됩니다. 배우자에 대한 기억과 추억으로 그 사람의 존재감을 자기 곁에 유지시키는 거죠. 6개월에서 1년 정도 이 과정을 거칩니다.



 그리고 절망과 우울감의 시기가 찾아옵니다. 배우자가 더 이상 자기 곁에 있지 않다는 걸 명확하게 인식할 때 나타나는 애도 반응입니다. 우울하다 분노감이 생기기도 하고 죄책감과 불안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각 단계가 명확하게 구분돼 찾아오는 건 아니고 오늘 사연처럼 섞여서 나타납니다.



 배우자 사별로 인한 슬픔은 마음만 아프게 하는 게 아닙니다. 심장도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하버드 의과대학 연구를 보면 심장병이 있는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첫 일주일 동안 심장마비 위험성이 얼마나 증가하는지 봤더니 6배나 높았습니다. 뇌졸중 위험도 증가했고요. 사별 후 한 달이 지나면 심장마비 위험은 서서히 줄지만 심장박동이나 혈압, 혈전 생성 증가 등은 사별 후 6개월까지 지속됐습니다. 잉꼬부부였는데 아내에게 심장병이 있다면 남편은 절대 먼저 죽어서는 안 됩니다. 아내의 심장이 멈출 수 있으니까요. 금슬 좋았던 남편이 먼저 떠난 후 금방 아내도 같이 세상을 떠나는 것, 의학적으로 이렇게 설명이 가능한 겁니다.



 이처럼 사별의 충격은 죽을 정도로 고통스럽지만 사실 우리 유전자에는 상실에 대한 회복 능력이 내재돼 있습니다. 그래서 회복의 시기도 찾아옵니다. 사별 경험과 애도 반응은 누구나 피할 수 없습니다. 회복 능력이 우리 안에 내재돼 있지 않다면 인류는 모두 슬픔에 빠져 살아가고 있겠죠.



 회복의 증거는 일상으로 돌아올 뿐 아니라 새로운 것에 대한 흥미를 보이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떠나간 사람의 흔적이 내 삶에 진하게 남아 있지만 취미생활을 통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꾸려나가는 게 대표적이죠.



 그러나 사별 후 6개월에서 1년이 지났는데도 회복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계속 애도 반응을 보인다면 정상적인 범주를 넘어서는 겁니다. 이런 경우를 지속되는 애도(prolonged grief)라고 하는데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고려해야 합니다. 상실에 대한 스트레스가 과도하게 작용해 뇌가 합병증을 일으킨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리 치료와 항우울제가 도움이 됩니다. 우울증 같은 정서 장애로 이어질 수 있기에 가족들이 그냥 내버려 둬서는 안 됩니다. 사연의 주인공도 지속되는 애도에 해당합니다. 전문가와의 상담을 권합니다.



 하지만 지속되는 애도가 아니라면 애도 반응은 지극히 정상적인 겁니다. 슬픈 일은 슬퍼해야 내 뇌 안의 감성 시스템이 슬픔을 이기고 다시 활력을 찾습니다. 애도 반응을 보일 때 도움이 되는 몇 가지 팁이 있습니다. 우선 상실을 잘 수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망자 이야기를 계속하면 스트레스를 더 받아 정서적으로 나쁠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보통은 그렇지 않습니다. 떠나간 이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게 상실을 수용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장례식 기간 동안 찾아준 손님들과 싫든 좋든 망인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어떻게 돌아가신 것이냐’라는 질문을 계속 받고 답합니다. 그러면서 망자가 떠났다는 걸 수용하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이 애도 반응을 관리하는 지혜를 오래 전부터 습득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또 사별에 대한 슬픔과 그리움을 글로 적어 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애도 반응에서 일어나는 불안·우울·분노를 공감해 주는 게 중요합니다. 홀로 살게 된 두려움 뒤엔 혼자서 모든 걸 결정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으므로 중요한 결정을 함께 고민하는 것도 심리적 안정을 갖게 합니다. 그리고 망자와 관련한 기념일엔 함께해야 합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이때가 돌아오면 과거의 기억이 몰려 오며 애도 반응이 강하게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다만 성급하게 새로운 만남이나 취미를 권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회복의 기미가 보일 때 함께 즐거운 활동을 하는 건 큰 도움이 됩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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