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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맛집 쟁탈전의 최전선에 선 '글래디에이터'

중앙일보 2013.11.20 00:05 강남통신 6면 지면보기
일본에서 건너와 강남 사람들을 줄 세우는 롤케이크 ‘몽슈슈’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두 곳에만 매장이 있다. 두 매장은 지난 8월 29일 똑같은 날 문을 열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다. 강남 한복판에서 대형 식품관을 운영하는 두 백화점의 젊은 직원들이 재일교포인 창업자를 오사카까지 찾아가 입점 전쟁을 벌인 결과다. 워낙 경쟁이 치열해 어느 한 쪽 손을 들어줄 수 없어 같은 날 오픈하게 된 것이다. 요즘 백화점 식품관에서 가장 핫(hot)하다는 스위트(디저트)·베이커리 담당 바이어(MD)로 일하는 두 젊은이를 만나 들어봤다. ‘줄을 세우라. 소비자의 마음을 얻으리라’를 외치며 해외까지 누비는 그들의 맛집 유치 전략을.





신세계백화점 조창희 스위트 바이어

“경쟁사가 볼 땐 훼방, 내 입장에선 최선”




“20~30대 여성 고객이 원하는 게 뭔지 파악해 백화점에 들여오는 겁니다.”



 조창희(33) 신계계백화점 바이어는 자신이 하는 일을 이렇게 설명했다. 미혼 남성이 젊은 여성 고객을 끌어들일 아이템을 찾는다는데, 뭔가 봤더니 디저트다. 잘 할 수 있었을까. 남자들은 보통 친구끼리 모여도 케이크 조각을 나눠먹진 않는데….



 “도쿄에서 태어나 유치원까지 일본에서 다니다 초등학교 때 한국으로 건너왔습니다. 인테리어 사업을 한 아버지를 따라 어릴 때부터 백화점에 가 물건 보는 것을 좋아했었죠.” 제일교포 3세인 그는 일본 백화점을 “늘 새로운 브랜드가 모여 있는 곳”이라고 회고했다. 신세계 입사 초기 일본 잡지나 신문을 모아 식품·생활·의류 등으로 분류해 스크랩하는 일을 했다. 조 바이어는 “신입사원이면 으레 하는 일이었지만 자료를 가장 먼저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상품을 보는 안목 때문인지 그는 2011년 바이어 업무를 맡게 됐다. 델리(테이크아웃 식품) 담당을 하다 올 3월 디저트류 바이어를 시작했다. 한국 디저트 시장의 트렌드가 일본을 따라가기 때문에 일본통인 그에게 안성맞춤이었다.



-20~30대 여성 고객을 잡는 품목으로 왜 디저트가 주목 받는 건가.



 “식생활 트렌드가 변했다. 과거엔 디저트라면 커피나 케이크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종류가 수도 없이 많다. 특히 젊은 여성 중심으로 식사 후 다양한 후식을 즐기는 문화가 강해졌다. 식품이 패션화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인데, 그 중심에 젊은 여성이 있다. 이들은 제품을 구매할 뿐 아니라 인터넷 블로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려 입소문을 내면서 트렌드로 만드는 역할까지 한다.”



-젊은 여성을 끌어들여도 디저트 같은 음식만 사간다면 백화점 전체 매출에 비하면 미미하지 않나.



 “백화점 전체 입장에선 주 고객이 40~50대 여성이다. 매출액이 젊은 여성에 비해 훨씬 많다. 하지만 젊은 여성들이 해외에서 유행한 디저트나 맛있는 먹거리를 사는 모습을 보면 중년 고객들도 궁금해하며 아이들 간식용으로 구매한다. 수요가 확대되는 거다. 백화점 지하 식품관은 고객을 끌어들여 위층으로 올려 보내는 역할을 하는데, 디저트가 집객 효과를 낳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디저트 트렌드가 일본을 따라간다고 했는데.



 “디저트 쪽은 일본 시장을 파악하면 앞으로 우리나라 트렌드를 예측할 수 있다. 일본에선 1990년대 티라미슈 케이크, 벨기에 와플, 이탈리아 디저트 파나코타 등이 인기였다. 2000년대 전반에는 파티셰가 붐이었고, 2006년께는 도넛 제품이 큰 주목을 받았다. 2008년엔 롤케이크, 2010년부터 지금까진 팬케이크다. 우리나라를 보면 2011년부터 윈도우 베이커리가 유행했다. 2007년엔 일본 도넛처럼 ‘미스터 도넛’이 인기를 얻었었다. 지금 몽슈슈가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데 일본에선 2008년 일어난 현상이다. 지금 일본에선 크루아상과 도넛의 장점을 합친 ‘크로넛’과 요구르트 같은 ‘아사이보울’이 뜬 상태다. 아사이보울은 미란다 커가 해독주스로 마셔 유명해진 아사이베리를 이용한 거다.”



-요즘은 일본이나 미국에서 유행해도 국내에선 고전하는 제품도 있던데.



 “일본에선 국민소득 2만 달러 이상이면 도시락이 성장하고 사람들이 밥만 먹다가 다른 게 끌리는 건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이어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 일본과 한국은 먹거리 유행에 20년 차이가 난다고도 했었다. 하지만 최근엔 차이가 금세 줄고 있다. 일본에선 티라미슈나 와플이 10년에 걸쳐 인기였다면 한국은 1년이면 다 들어온다. 백화점 식품관 매장 계약기간이 1년 반 정도인데 디저트 유행이 굉장히 빨리 바뀌기 때문에 요즘은 한두 달 정도 팝업 매장을 운영하기도 한다.”



- 트렌드가 빨리 바뀌는데 입점 매장을 어떻게 고르나.



 “홍대나 이태원, 북촌, 서촌 등을 주로 돌아다닌다. 밖에서 근무하는 시간이 60~70%다. 요즘은 트렌드가 너무 빨리 바뀌고 돌고 돌기 때문에 홍대든 가로수길이든 어디를 가든 핫한 품목이 다 있다. 그래서 국내에 없는 것 위주로 해외 오리지널 브랜드를 많이 유치할 생각이다. 해외시장 조사는 외국 잡지나 신문을 모아놨다 작정하고 본다. 리스트업을 한 뒤 메일을 한꺼번에 보낸다. 피드백이 안 올 것 같지만 대부분 답이 오고, 다른 업체를 소개해 주는 경우까지 있다.”



-인기를 끌 만한 상품을 알아보는 노하우가 있나.



 “제품보다 그걸 만드는 사람,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의 마인드가 중요하다. 상품이나 가게 분위기는 누구나 다 보는거다. 길게 사랑 받는 요인은 파는 사람의 마음 가짐이다. 이태원의 한 만두가게 사장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현장을 떠나면 안 된다’고 하더라. 사장이 매장에 있을 때와 없을 때 종업원의 태도와 음식의 질 등 모든 게 달라진다는 설명이었다.”



-잘나가는 업체를 유치하기가 쉽진 않을 텐데.



 “신뢰 관계를 형성하려 애쓴다. 단순히 브랜드 하나 입점시켜 대박을 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길게 봤을 때 오래가고 싶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 반장 선거를 하는 느낌으로 임한다. 들여오고 싶은 브랜드의 오너를 만났을 때 수치를 앞세워 들이대면 나보다 더 전문가여서 오히려 거부당하기 쉽다. 제품을 진짜 좋아해서 왔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시켜야 한다. 될 만한 브랜드만 접촉하기 때문에 매출은 입점만 하면 따라오게 돼 있다. 결국 어느 백화점에나 들어가게 돼 있기 때문에 누가 먼저 유치하느냐보다 어떤 브랜드끼리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는지 연구하는 게 관건이라고 본다.”



-그래도 몽슈슈 국내 1호점 타이틀을 놓고 경쟁이 치열했다는데.



"맞다. 내가 몽슈슈에 연락했을 당시 이미 다른 백화점 두 곳에서 접촉한 상태었다. 특히 현대 백화점과는 계약 얘기가 오가고 있었다. 내가 늦은 거였다. 아차 싶었다. 김미화 몽슈슈 대표에게 같은 교포만 느낄 수 있는 어려움 등을 얘기하며 최대한 어필했다. 현대와 동시에 개점했으니 현대측에서 보면 내가 훼방을 놓은 꼴이 되긴 했지만 내 입장에선 최선을 다한 거다.”





현대백화점 황혜정 베이커리 바이어

"우리 백화점에 경쟁 백화점 직원 더 많다는 말, 맞습니다"




“최근 세 달 동안 하루 세 끼를 족발만 먹었습니다. 유명한 집마다 돌아다니다 보니 앞다리가 더 윤기 나고 쫄깃하면서 가격도 비싸다는 걸 알게 됐죠. 예전엔 메뉴판에 대·중·소만 보였는데 요즘은 어떤 부위인지 물어보게 된다니까요.”



 나이 스물아홉에 미혼인 여성이 족발 식사만 하는 이유는, 직업 때문이다. 황혜정 현대백화점 베이커리 바이어가 속한 팀은 백화점 매장에 맛집을 유치하는 게 업무다. 황 바이어는 전주의 유명 빵집 풍년제과를 압구정점에 들여왔다. “휴가를 갈 때면 그 지역 유명 맛집에 연락해 약속을 잡아놓습니다. 전주에 여행갈 때면 풍년제과에 들러 사장님을 설득했었어요.” 홍콩 여행을 가서도 백화점에 들여왔으면 하는 유명 베이커리의 사장이 만나주지 않자 두 시간 넘게 기다려 얼굴 도장을 찍고 왔단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황 바이어는 유통업에 관심이 많아 학생 때부터 백화점 판매 아르바이트를 했다. 2008년 현대백화점 울산지점에 입사했다가 지난해부터 본사 베이커리 바이어를 맡고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유행하는 것들에 관심이 많았는데 백화점에 입사했더니 그런 유행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더라”며 “그런 일을 해보고 싶어 바이어를 맡게 됐다”고 말했다.



 디저트의 주 소비층은 자신처럼 같은 젊은 여성인데, 대박 음식을 찾는 데 그런 점이 도움이 됐을까. “남자들은 쇼핑할 때도 구매할 제품과 목적지를 정해놓고 거기만 갔다 오잖아요. 하지만 여자들은 여기저기 둘러보고 눈썰미가 있습니다. 저도 유명하다는 맛집만 가는 게 아니라 그 주변을 꼭 둘러봅니다.”



-요즘 백화점이 베이커리를 중시하는 이유가 있나.



 “최근 백화점 브랜드를 분석해 봤다. 의류나 잡화, 화장품이 대표 상품이긴 하더라. 하지만 식품은 다른 상품과의 연관 구매율이 65.2%로 가장 높다. 먹을거리 때문에 백화점에 왔다가 다른 제품을 산다는 얘기다. 또 가장 멀리서 고객을 불러오는 게 식품이다. 옷을 살 때는 집 가까운 쇼핑몰에 가지만 맛집은 멀리서도 찾아가지 않나. 우리 백화점 몽슈슈 매장은 제주도에서도 사러 오더라.”



-갈수록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건가.



 “한국에서 음식은 더 이상 한 끼 때우는 대상이 아니다. 혼자 먹더라도 좋고 예쁘게 해서 먹고, 유명 셰프가 하는 식당을 찾아가고 그 걸 또 자랑한다. 단팥빵은 전국 어디에서든 팔지만 군산 이성당까지 찾아가 한 시간씩 줄을 서거나 택배로 시키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일종의 작은 사치로 여기는 것 같다.”



-작은 사치란 어떤 의미인가.



 “경기가 불황인데 적은 돈으로 사치를 할 수 있는 게 먹을거리다. 2만~3만원을 들여 가장 유명한 베이커리의 제품을 먹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면서 즐기고 만족해 하는 것이다. 과거엔 웰빙을 중시했다면 요즘은 힐링이 대세다. 특히 디저트는 예쁘고 희소성이 있는 제품도 많아 그걸 즐기면서 스스로 힐링을 하는 게 아닐까.”



김미화 몽슈슈 대표(왼쪽)와 함께 한 황혜정씨.
-백화점 식품관의 트렌드는.



 “2000년대 초반에는 도시락이나 주먹밥 등 일본식 식사대용 상품이 인기였다. 2010년 이후 세분화돼 거리의 맛있는 빵집이나 맛집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는 지방의 맛집, 유명 셰프가 하는 음식, 해외 유명 델리나 메뉴 등 세 가지가 중심이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유행해도 한국에선 맥을 못 추는 음식도 있는데.



 “현지의 맛이 그대로 나는 게 중요하다. 그 맛을 그대로 느끼도록 해야 꾸준히 성장할 수 있다. 우리가 몽슈슈 롤케이크를 냉동제품으로 들여오지 않는 이유다. 반짝 히트하더라도 해외의 오리지널 맛이 아니라고 소문나면 금방 저물고 만다. 사실 해외에서도 줄을 서는 음식은 맛있기 때문 아니겠나.”



-들여올 상품을 고를 때 어떤 점을 주로 보나.



 “지금 인기가 없더라도 좋은 브랜드이고 정직하게 빵을 만드는지를 본다. 특히 압구정점은 상징적인 점포여서 고급스럽고 오리지널 맛에 대한 고객의 선호도가 높다. 닭강정 가게가 속초에 많은데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제품, 만석닭강정을 들여와 판매한다. 고객들이 맛의 차이를 잘 알고 직원이 응대를 잘 하는지에 대해서도 민감해 본인의 생각에 미치지 못하면 바로 얘기한다. 압구정점 고객들은 ‘이런 데가 맛있다는데 한번 가보라’고 말해주기도 한다.”



-베이커리 종류가 많은데 힘든 점은 없었나.



 “푸드 스타일리스트나 푸드 칼럼리스트 등 전문가와 한 달에 한번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 이태원·홍대·가로수길 등에 시장조사를 하러도 많이 간다. 우리 백화점은 1년에 한 번 이상 바이어에게 해외 시장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유럽이든 일본이든 본인이 원하는 곳은 어디든 보내준다.”



-백화점 식품관 사이에 경쟁도 치열하겠다.



 “우리끼리 하는 말 중에 ‘신세계 가면 현대 직원이 더 많고 현대 매장 가면 신세계 직원이 더 많다’는 우스개가 있다. 나도 경쟁 백화점에 가서 그곳 담당 직원을 만난 적이 있다. 그럼 그냥 인사한다.”



-히트칠 만한 먹을거리를 발굴하는 비결이 있나.



 “외국에서 줄 서는 것들을 한 번씩 더 접촉해 본다. 해외 인터넷 사이트나 잡지, 신문을 많이 보고 각 나라 백화점 홈페이지도 자주 검색한다. 요즘은 블로거 중에도 전문가 못지않은 분들이 있는데 특정 메뉴를 입점하기 전 미리 맛을 보이고 가격 수준이 어떤지 물어보기도 한다. 잡지나 신문을 볼 때는 음식 관련한 내용만 보는 게 아니고 사회 이슈에 관심을 갖는다. 현대 압구정점은 MSG 관련 방송 프로그램이 이목을 끌자 MSG가 들어가지 않은 반찬 코너를 신설했다. 운영이 힘들다는 사회적기업 소식이 나오면 사회적기업들만 모아 행사를 하기도 한다. 부산에 책방 골목이 있는데 그쪽 담당자를 만나 ‘우리 백화점에서 부산 먹을거리를 선보일 테니 책을 가져와서 팔라’고 했다. 일종의 부산 특집을 한 건데 당시 책방에서 1년치 판매 실적을 올렸다더라.”



-베이커리 바이어라는 직업에 만족하나.



 "맛있고 좋은 음식을 찾아서 맛보는 게 좋다. 성공한 가게 주인들을 개인적으로 만나 성공 스토리와 사업 마인드를 들을 수 있는 것도 큰 영광이다.”



글=심영주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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