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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두부 값 몰라도 미국산 콩값은 꿰고 있어요

중앙일보 2013.11.20 00:02 경제 2면 지면보기
지난 13일 여성 펀드매니저 네 명이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건물 앞에서 모였다. 이들은 “펀드매니저란 위험을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네 사람 뒤로 여의도 증권가 상징인 황소상이 보인다. 왼쪽부터 안세윤 한국투자신탁운용 매니저, 조은형 미래에셋자산운용 매니저, 박주연 NH-CA자산운용 매니저, 박인희 신영자산운용 매니저. [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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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펀드매니저 4인 이야기



“우리나라 대통령도 이제 여자분이신데”(가수 걸스데이의 ‘여자대통령’ 노래 가사 일부) 종사자 10명 중 1.5명만이 여성인 업계가 있다. 금녀의 영역으로 불리는 정보기술(IT) 업계와 맞먹는 수준이다. 자산운용 업계 얘기다. 전체 펀드 매니저(1956명) 중 여성은 376명뿐이다. 말 그대로 한 줌도 안 되는 그들이지만 각자의 투자 전략을 무기 삼아 힘겨운 생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된장찌개에 넣는 두부 값은 몰라도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거래되는 국제 대두 가격은 안다”는 이들을 만나 시장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들어봤다. 그들의 전략은 곧 시장을 이기는 전략이다.



 “투자하려는 해당 기업만 탐방하는 건 진짜 기업 탐방이 아닙니다. 저는 경쟁사에 협력사까지 방문하죠. 업계 전문가도 만나고요.”



 올해 13년차인 신영자산운용 박인희(37) 주식운용2팀장의 투자 노하우다. 입체적인 분석이 시장 흐름에 흔들리지 않고 투자 원칙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란다. 그는 가치투자로 유명한 허남권 사단 내 유일한 관리자급 여성 매니저다. 박 팀장이 운용하는 신영고배당밸류 펀드는 최근 펀드 환매세에도 자금이 유입된 몇 안 되는 펀드 중 하나다.



 운용사에 입사하기 전 10년가량 보험사 투자사업부에서 일한 미래에셋자산운용 조은형(36) 채권운용부 팀장의 노하우는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다. 운용사에서 일하지만 늘 “보험사에 다녔을 때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며 자금을 운용한다. 리스크를 감수해야 돈을 버는 증권시장에서 거꾸로 신중하게 투자하는 셈이다. 그래서 그는 기관투자가에게 인기다. 기관 대상 일임형 채권 펀드 운용은 여지 없이 조 팀장의 몫이다. 조 팀장은 “신중한 투자는 투자자에 대한 배려심”이라고 말했다.



 NH-CA자산운용 박주연(35) AI&해외투자본부 과장은 운용업계에선 아웃사이더였다. 12년 경력 중 8년을 운용이 아닌 다른 일을 해왔다. 8년간 그는 회사의 회계 업무에서 애널리스트 등으로 일했다. 2009년이 돼서야 본격적인 펀드 운용을 시작했을 정도다. 그런데 그게 박 과장의 경쟁력이다. 기업의 경영보고서를 볼 땐 숫자 하나도 놓치지 않는 회계사가 되고, 시장을 분석할 땐 영문 자료까지 뒤지는 애널리스트가 된다. 그는 현재 NH-CA에서 운용하는 해외 펀드 8개를 담당하고 있다.



 2009년 25세의 최연소 나이로 입사한 한국투자신탁운용 안세윤(29) 주식운용2팀 대리가 추구하는 투자 노하우는 ‘남들이 생각하지 않은 걸 생각하는 것’이다. 입사 초기 선배 매니저가 해준 한마디가 지침이 됐다. “네가 남들과 똑같이 생각한다면 아무도 너에게 액티브 펀드를 맡기지 않아.” 안 대리가 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운용을 맡고 있는 한국투자패스파인더 펀드는 설정 이후 87%에 가까운 수익을 내고 있다.



 가치주를 찾는 게 일인 박인희 팀장은 사람에게 주목한다. 그는 지난해 있었던 투자 일화를 들려줬다. “경쟁사 대비 이익이 너무 낮아서 아무도 안 사던 GS홈쇼핑을 산 적이 있어요. 재무제표를 보니 유난히 현금보유량이 많았어요. 당장 찾아가보니 경쟁사에서 주요 임직원을 스카우트해 오는 등 조직 개편이 한창이더군요. 사람이 바뀌면 조직이 달라지죠.” 실제로 GS홈쇼핑은 지난해 3·4분기 연이은 어닝 서프라이즈로 주당 10만원 하던 주가가 2배가량 올랐다.



 안세윤 대리는 기업 탐방 시 접견실을 꼭 둘러본다. 접견실이 지나치게 잘 돼 있는 기업은 의심부터 한단다. 내실보다 보여주기에 급급한 회사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는 “기업 규모에 비해 접견실과 회장실이 지나치게 화려한 곳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 얼마 후 회사가 실적 부진으로 휘청이더라”고 말했다.



 각각 채권과 해외 펀드가 주요 업무인 조은형 팀장과 박주연 과장은 해외 거시경제 분석을 가장 우선시한다. 세계 경제가 거미줄처럼 연결돼 해외의 작은 변화도 한 국가에선 거대한 태풍을 일으키는 나비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조 팀장은 “중동 사태 때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가 어떻게 다른지까지 공부했다”고 귀띔했다.



 네 명의 여성 매니저들은 2014년에도 글로벌 경기회복세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채권’ 담당인 조은형 팀장만 유일하게 표정이 어두웠다. 내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자산매입 축소를 앞두고 채권시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조 팀장은 채권시장의 장기 방향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내년 후반부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국내 채권금리가 최고점을 찍게 될 것”이라며 “이후에는 고령화와 부의 불균형 같은 글로벌 주요 이슈에 세계 경기가 어떤 영향을 받을지 지켜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올여름 아세안의 금융 위기 가능성이 불거지면서 홍역을 치른 박주연 과장은 내년을 벼르고 있다. 박 과장은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시점까지 신흥국 시장 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면서도 “결국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경기회복 수혜는 신흥국에 돌아와 내년 하반기쯤엔 다시 주식시장이 반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인희 팀장은 경기회복과 함께 국내 부동산 경기가 바닥을 쳤다고 분석했다. 박 팀장은 “집값이 오르게 되면 은행·건설주가 탄력을 받게 된다”며 “이 중에서도 어떤 기업이 ‘시장을 잘 타느냐’에 따라 종목별로 수익률 차가 커질 것”이라고 했다. 연말 들어 배당주 관련 투자가 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는 “고작 1~2%대의 배당수익을 얻으려 배당주 펀드에 단기 투자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배당주에 투자할 땐 장기 수익률이 뒷받침해주는 상황에서 배당 수익이라는 ‘플러스 알파’를 노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펀드매니저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위험을 관리하는 사람”이라고 입을 모았다. 비단 매니저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기관이건 개인이건 모든 투자자는 자신의 자산에 대해 매니저여야 한다. 여성이 비록 적지만 남녀 구분은 의미가 없다. 수익률이라는 숫자로 말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글=홍상지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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