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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차기 뉴욕시장의 진보정치 실험

중앙일보 2013.11.19 00:30 종합 30면 지면보기
정경민
뉴욕특파원
뉴욕의 패션거리 소호에 지난 9일 등장한 대형 텐트. 입구엔 ‘시정부 인수인계를 이야기합시다(Talking Transition)’란 팻말이 붙어 있다. 지난 5일 지방선거에서 109대 뉴욕시장으로 당선된 빌 더블라지오 캠프의 민의 수렴 공간이다. 텐트 안은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열기로 후끈했다. 설문조사를 하는 태블릿 컴퓨터엔 한국어도 있었다. 팻말을 든 실업자는 영상메시지를 찍는 카메라 앞에서 울분을 토로했다. 뉴욕시 외곽으론 매일 세 대의 트럭이 돌며 시민의 소리를 듣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스마트폰이 일상화한 시대 차기 뉴욕시장의 행보론 무척 아날로그적이다. 한데 소호의 텐트는 앞으로 4년 동안 더빌라지오가 뉴욕시를 어떻게 이끌어갈 건지를 보여주는 예고편일지 모른다. 더블라지오는 당선 후 월가의 거물들과는 철저히 거리를 둬왔다. 20대 시절 그는 사회주의를 동경하기도 했다. 로널드 레이건 정부의 눈엣가시였던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자원봉사자로 니카라과에 날아가 사회주의 개혁을 지켜보기도 했다.



 사회주의 혁명의 꿈은 접었을지 몰라도 진보정치의 이상은 이때 그의 가슴속에 뿌리내리지 않았을까. 그런데 진보주의자치고 그는 노련한 현실 정치가의 면모도 갖췄다. 2001년 뉴욕시의원 선거에 출마한 그는 내리 세 번 당선됐다. 그것도 70% 이상 압도적인 지지율로다. 이번 뉴욕시장 선거에서도 73% 지지율을 기록했다. ‘부자 증세’를 공약으로 내건 그가 10만 달러 이상 고소득층으로부터도 40%에 달하는 지지를 이끌어낸 건 불가사의에 가깝다.



 ‘사회주의자’라는 보수파의 낙인을 그는 다문화 가정이란 이미지로 씻어냈다. 7세 연상의 흑인 아내와 ‘아프로’란 흑인 특유 머리모양을 한 아들 단테는 포용과 화합의 코드로 읽혔다. 물론 밑바닥엔 공화당 시장 20년 동안 쌓여온 빈부격차가 깔려 있다. 뉴욕 시민의 45.8%는 4인 가족 기준 연소득이 4만6000달러 이하인 빈곤층이다. 절망에 빠진 서민에게 더블라지오는 사회주의 몽상가가 아니라 변화를 몰고올 개혁가로 비쳤을지 모른다.



 그러나 더블라지오의 앞길은 벌써부터 첩첩산중이다. 그가 내세운 각종 서민 복지 공약을 실행에 옮기자면 돈이 필요하다. 부자 증세가 그의 처방이지만 이를 관철하기가 녹록지 않다. 뉴욕시와 뉴욕주는 민주당 아성이다. 그렇지만 내년 중간선거, 2016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증세 카드는 민주당 지도부로서도 부담이다. 돌파구는 시민의 힘, ‘거리 정치’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소호의 텐트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뉴욕은 미국 자본주의의 심장이다. 가난한 남미나 아프리카도 아니고 월가의 안방에서 이미 박제가 된 줄로 알았던 진보정치 실험을 접하게 된 건 흥미롭기 짝이 없는 역사의 아이러니다.



정경민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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