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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아이 죽도록 때리고 … "가족 일 참견 말라"는 부모들

중앙일보 2013.11.19 00:23 종합 10면 지면보기
서울 중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지난 4월 2학년 A군(9)의 부모님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얌전하던 A군이 갑자기 난폭해진 데다 퇴행성 장애,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증후군 증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사업가인 어머니(43)와의 면담 과정에서 A군의 학교 성적이 나쁠 때마다 어머니가 “나가 뒈져라” “밥만 먹는 돼지새끼”라는 욕설을 1년여간 퍼부은 사실을 알게 됐다. 대기업 임원인 아버지(47)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고 한다. 해당 교사는 즉각 경찰과 보건복지부에 부모를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했다. 황옥경 한국아동권리학회장은 “부모의 개인적 성취 욕구가 강해 나타나는 전형적인 정서학대 유형”이라고 진단했다.


오늘 아동학대예방의 날 … 10년 새 학대 3배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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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 19일은 세계여성정상기금(WWSF)이 2000년 제정한 세계아동학대예방의 날이다. 이에 맞춰 정부는 아동학대예방주간(19~25일)을 지정해 기념한다.



 그러나 아동학대 사건은 줄지 않고 있다. 지난 8월 서울 은평구에서 벌어진 ‘안마기 폭행’과 지난달 울산 의붓딸 학대치사로 8세 남녀 아동이 숨지는 일도 벌어졌다. 보건복지부 등에 접수된 신고 건수는 2003년 2921건에서 지난해 1만943건으로 크게 늘어났다.



 아동학대는 크게 신체학대·정서학대·성학대·방임으로 나뉜다. 이 중 지난해 기준, A군과 같은 정서학대가 3785건(38.1%)으로 가장 많았다. 신체학대(28.8%)와 방임(28.7%)이 비슷한 비중을 보였으며 성학대(4.5%)가 뒤를 이었다. 지난 9월 서울 노원구에서는 배달음식 찌꺼기가 쌓인 쓰레기 더미에서 초등학생 형제가 영양결핍 상태로 발견되기도 했다. 두 아이의 어머니(35)는 “나도 나만의 교육방식이 있다”고 주장했다. 독립심을 기른다며 첫째 아들(11)을 방 안에 가두고, 다리가 부러진 둘째 아들(8)을 병원에 보내지 않는 식이었다. 이 집에서 나온 쓰레기만 1t 트럭 두 대 분량이었다. 전문가들은 “전형적인 방임형 아동학대”라고 분석했다.



  마포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최인용 팀장은 “정서학대나 방임은 신체 학대에 비해 문제라는 의식이 약한 게 사실”이라며 “부모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학대 대부분은 부모(83.9%) 및 친인척(6.8%) 등 가족인 것도 문제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장화정 센터장은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자식이 부모의 소유물이란 인식이 강하다”며 “현행법상 상담 및 조사 거부 시 과태료를 물어야 하지만 ‘가족 일에 참견 말라’며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아동학대는 대물림되기도 한다. 서울 성동구에 사는 최모(41)씨는 지난 7월 부인(38)과 5남매에게 상습적으로 폭행을 휘두른 혐의로 신고됐다. 조사 결과 최씨는 과거 아버지에게 구타당하던 어머니가 가출하는 등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신고의무자 제도 있는 줄도 모르고=지난해 8월 시행된 아동학대 신고의무자 제도를 조기에 정착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전혜경 변호사는 “의사·교사 등 22개 직업군이 대상이며 위반 시 3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는 규정”이라며 “하지만 이를 모르는 이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울산 의붓딸 학대치사 사건은 2년여 전 포항 소재 유치원에 다닐 당시 교사가 아이의 몸에 난 멍자국을 보고 아동센터에 신고했음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학대가 지속된 경우다.



보건복지부는 이달 초 울산시에 “피해 아동에 대한 학대를 알고도 신고하지 않은 사람을 파악해 과태료 처분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전 변호사는 “만약 이번에 신고의무 위반자를 찾는다면 실제 가해자뿐만 아니라 남의 일이라고 나 몰라라 한 우리 사회의 불감증에도 책임을 지우는 첫 사례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관악경찰서 한원횡 형사과장은 “최근 가정폭력 등 4대 악 척결이 강조되면서 아이 울음소리를 듣고 이웃에서 신고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막상 출동해 보면 부모가 채증을 거부해 어려움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법무부 여성아동인권과 홍종희 과장은 “영국처럼 우리도 경찰과 상담사가 현장에 함께 출동한 뒤 피해 사실 확인 즉시 법원이 임시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처벌 강화 주장도 나온다. 영국과 일본에서는 종신형 선고나 친권상실의 권고 등이 가능하다. 현재 국내법은 아동 학대 시 5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새누리당 안홍준 의원이 발의한 처벌 강화 특례법 등 3개 안은 법사위 상정조차 안 된 채 계류 중이다.



민경원·구혜진·장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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