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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유목문화와 농경문화의 융합

중앙일보 2013.11.19 00:05 11면
일러스트=박소정


한국인들은 고조선의 천손사상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고조선의 정체성을 계승해 건국한 고구려의 동명성왕은 기마민족의 후예로 어린 시절부터 활과 화살을 만드는 솜씨가 비범했으며 무인으로서의 능력 또한 출중했다. 그는 유목문화가 중시하는 이동과 속도의 중요성을 일찍이 터득한 자였다.



또 고구려인들은 유목민의 후예였지만 점차 농경문화를 융합해 한민족의 문화적 독자성을 형성하는 초석을 다졌다. 고구려는 중국의 한족보다 우월했던 기마민족의 장점을 계승 발전시켜 동아시아의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현대경영의 관점에서도 경쟁기업과의 비교우위는 매우 중요하다. 경쟁기업과 차별화될 수 있는 독창적인 기술이나 노하우를 확보한 조직이 관련시장을 석권하는 것은 보편적인 원칙이다. 무한경쟁사회에서 차별화해야만 경쟁시장에서 선도적 위치를 점할 수 있기에 단순히 우수한 기술이나 지식을 갖는 것보다 상대적인 비교우위를 확보하는 전략이 보다 중요하다.



 391년 즉위한 광개토대왕은 신라와 백제를 공격해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한반도에서의 패권보다 중국의 대국들과 자웅을 겨루는데 몰두해 한반도를 통일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리더에게 절호의 기회는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광개토대왕은 신라를 속국으로 삼는 전략을 구사하기보다 흡수 병합하는 전략을 선택했어야 했다. 동해안 변방의 소국이었던 신라는 540년 즉위한 진흥왕 대에 접어들어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으며, 유목문화와 차별화되는 농경문화를 발전시켰다. 신라는 백제 땅이었던 한강유역 일대를 차지함으로써 고구려와 백제 간 육로의 연결통로를 차단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 대륙의 나라들과 직교역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했다.



 한편 중국대륙을 통일한 수나라는 고구려를 무너뜨리기 위해 총공세를 퍼부었지만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이 살수대첩에서 대승을 거두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운명을 맞이했다. 수나라를 무너뜨린 당나라 또한 고구려에 대한 전면전을 선언하고 맹공을 퍼부었다. 당시 고구려는 당나라와의 외교노선에 있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어 대립했다. 연개소문은 강경파로서 천리장성을 축조하며 영향력을 확대하자 영류왕과 귀족들이 음모를 꾸며 연개소문을 제거하려 했다. 그러나 연개소문은 주도면밀 했다. 그는 귀족들의 거센 도전을 제압하고 병권과 인사권을 장악해 고구려의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로서 수나라 군대보다 강력해진 당나라 대군을 맞이해 고구려를 당당히 지켜냈다. 아쉽게도 고구려는 연개소문 사후 권력다툼에 의해 국력이 분산되자 순식간에 나당 연합군에 멸망하고 말았다.



조직이란 기본적으로 강해야 하지만 오래 살아남아 영향력을 지속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최고경영자의 위치에 올라선 사람들은 현재의 업적에 몰두하다 후계구도에 실패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여야 하며, 집권 후반기에 접어들면 후계구도의 완성과 조직의 영속성을 고려한 리더십에 역량을 집중시켜야 진정한 영웅 반열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이영관 순천향대 글로벌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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