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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제26화 경무대 사계(25)

중앙일보 1972.03.03 00:00 종합 5면 지면보기
<경무대 입주>㉯

돈암장에서 비서를 줄인 후 나와 만송(이기붕)·황규면씨 뿐이던 비서진은 이 박사가 국회의장이 된 뒤부터 부쩍 늘어났다. 국회의장 때 잠시 비서실장을 한 해위(윤보선)는 정부가 수립되자 서울시장으로 전출했다.

비서 임면 땐 "여기서 근무해" 한마디가 사령장|"자네들은 사비서야"…직제제정 건의 받곤 호통|나무 휘감는 덩굴 보면 질색…"자유를 구속하다니"|새를 가둬 기르는 것도 싫어해 새장 모두 치우고

나도 총무처 차장이 됐기 때문에 대통령비서실에는 전부터 모시던 사람으로는 만송과 황 씨만이 남았다.

자연히 비서실장 역할을 만송이 하게 됐는데 편의상 비서실장이지, 직제상 비서실장이란 직책이 있었던 건 아니다.

이 대통령은 비서들에게 항상 『자네들은 내 「프라이버트·새크리터리」(사비서)야』라고 강조했고, 그래서 비서실 직제가 없었다. 그러니 임명이나 해임을 막론하고 문서적인 절차는 물론 사령장조차 없었다.

그저 대통령이나 「마담」이 말로 『이곳에서 근무해』하면 그것으로 끝났다.

이렇게 되면 너무 비서들의 위치가 허무하지 않으냐 해서 김양천 비서와 황비서가 직제를 만들자고 건의했다가 대통령으로부터 호통만 들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쨌든 정부수립 초기에는 비서실에 만송 김양천 김광섭 황규면 박용만 김종회 이중춘 김석진 오일육 강신자 정영숙씨 등이 근무했다.

중앙청 대통령실 앞방에 누가누가 근무하느냐를 놓고 만송과 총무처장·기획처장 간에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뒤로는 만송은 대통령측근에만 있고 각 부처와 연락편의에서 붙인 비서실장으로는 김양천씨가 행세했다. 김씨는 이 박사가 국회의장으로 당선된 후 영어를 잘한다고 만송이 추천해 국회의장 비서로 출발한 사람이다.

이 박사가 경무대에 들어가 가장 마음에 든 것은 정원과 동산이 넓고 나무가 많다는 점이다. 퇴근후면 1시간쯤 동산으로 산책을 하면서 나무를 가꿨다. 특히 나무등치나 가지에 덩굴이 올라가는 것은 질색이어서 덩굴을 모두 쳐냈다.

『나무도 자유가 있어야지, 자유를 구속하는 것은 질색이야.』구한말에 7년 가까이 옥고를 치른 경험을 얘기하면서 자유를 역설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새를 새장에 넣어 기르는 것은 무척 싫어해 전에 있던 새장을 모두 치웠다.

새가 자유롭게 와서 나무에 앉아 노래하는 게 얼마나 좋으냐는 얘기였다.

초기의 이 대통령은 국민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었으나 점차적으로는 비판세력이 커 어려움이 많았다. 가장 골치 아파한 것은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서, 또는 독립국가가 됐으니 이제는 미군이 철수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박사는 이북공산당이 전국을 적화할 목적으로 군비를 하고있는 만큼 미군철수는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반여론은 일제와 미군정을 거쳐 독립했으니, 이제는 외군이 철수 했으면 하는 기분이 깔려 있었다. 특히 남한군정을 반대하여 5·10선거에 불참한 백범의 한독당은 통일정부 수립을 미·소 양국이 막고있다는 소박한 생각에서 미·소 양군의 철수를 집요하게 주장했다.

백범이 정부수립 후에도 이런 주장을 계속하자 국회일각에서도 양군 철수결의안을 제출할 움직임을 보였다.

이 대통령은 이런 움직임에 쐐기를 박기 위해 『우리가 국방군을 조직할 때까지 미군이 철수해서는 안 된다』는 담화를 발표하는 한편 「맥아더」 사령관에게 철퇴불가 성명을 내주도록 교섭했다.

「맥아더」는 이 요청을 받고 개인자격으로 이 박사 입장을 지지하는 회신을 보내왔다.

『본관은 연합군 최고사령관으로서 신생 대한민국을 보호함에 있어 미국의 「캘리포니아」를 방위하듯 한국을 방위할 것이며 한국에 대한 외세침략 가능성이 없어질 때까지 군이 한국에 주둔할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나 이 대통령과 「멕아더」 원수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유엔」 각국은 외군 주둔이라는 사실자체에 혐오감을 갖고 있었다. 미국무성도 미군을 철수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정해갔다.

이렇게 내외 정세가 어렵게 전개되어가고 있던 10월 중순 어느 날, 대통령 암살 미수 극이 일어났다. 괴한이 경무대 정문에서 10m쯤 떨어진 곳에서 효자동쪽으로 5개의 지뢰를 파묻은 것이다. 그때만 해도 건국초기라 경무대부근에 대한 경비가 허술해 땅을 파고 하수구를 통한 지뢰를 다섯이나 묻어도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이 없었다.

다만 그 동네의 한 소년이 빗나간 공을 따라 가다가 땅파는 것을 보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땅을 파던 사나이는 소년이 보는 것을 알아채자 돈을 주며 『딴 데로 가라』고 쫓았다. 한참 후에 이 소년이 와보니 땅을 팠던 자리에 무슨 끈 같은 것이 나와있었다. 힘껏 당겨보아도 나오지 않아 이상한 생각이 든 소년은 지나가던 기마순경에게 신고했다. 이렇게 해서 땅에 파묻었던 지뢰가 발견됐다.

다음날 대통령집무실에 다섯 개의 지뢰를 가지고 총리이던 철기, 내무장관동산과 수도경찰청장 김태선씨 등이 보고하러 왔다.

대통령은 지뢰를 이리저리 만지면서 『이것이 터졌으면 죽었지. 나 혼자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 죽었을 거야』하면서 히히 웃어넘겼다.

대통령은 지뢰를 발견한 소년을 경무대로 불러 크게 칭찬하고 장래 학비일체를 부담하겠다고 부모들에게 약속했다. <계속> [제자는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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