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래·교육부 쪼개져 길 잃은 융합교육

중앙일보 2013.11.13 00:36 종합 8면 지면보기
지난 4일 오후 서울 도봉구 창동고 1학년 과학 시간. 학생들이 금속의 이온화 경향을 살펴보는 반응성 실험을 하고 있다. 실험에 참가했던 윤상희(16)양은 “교과서만 볼 때보다 이해도 빠르고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말했다. 창동고처럼 실험을 통한 과학수업이 잘 이뤄지고 있는 과학중점학교는 전국 1500여 개 일반고 중 100곳뿐이다. [김상선 기자]
경기도 의왕시 덕장중학교의 과학담당 김세희(35·여) 교사는 올 들어 수업 방식을 바꿨다. 단순 이론 암기, 문제풀이식 교육은 그만뒀다. 대신 체험활동과 토론 시간을 늘렸다. 이론을 가르칠 때도 과학자의 삶과 시대 상황을 함께 설명해주는 식이다.


따로 노는 과학과 교육

 김 교사의 교육관이 바뀐 건 지난해 미국항공우주국(NASA) 연수를 다녀오면서부터다. 그는 책에서만 봤던 초대형 우주선을 직접 보고, 실물 그대로 축소한 화성 착륙선·탐사선 모형 등을 만들어 보며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딱딱한 이론만 가르칠 게 아니라 제가 받은 느낌을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수업이 바뀌자 학생들 반응도 달라졌다. ‘어렵게만 느껴지던 과학이 재미있어졌다’는 아이들이 늘어갔다.



교과부가 하던 NASA 연수 사라져



 김 교사가 다녀온 연수는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가 주최한 것이었다. 세계 최대 입자가속기(LHC)가 있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NASA 등을 둘러보는 체험 위주 프로그램으로 교사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올해 폐지됐다. 주무부처인 교과부가 교육부와 미래창조과학부로 나뉘면서 연수사업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한국 과학교육이 표류하고 있지만 정부는 근본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일선 교육현장에서는 새 정부 조직개편 후 혼란이 오히려 가중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창동고 과학담당 노석호(49) 부장교사는 “미래부는 과학을 산업 위주로만 생각하고, 교육부는 입시만 신경 쓴다”며 “과학교육을 책임지는 부처가 아예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서울의 한 공립고 과학교사는 “정부 부처는 둘로 쪼개져 딴소리를 하면서 일선 학교에는 ‘STEAM(과학·기술·공학·예술·수학)’ 같은 융합교육을 요구한다”며 “정부의 탁상행정 때문에 현장 교사들은 머리에서 스팀(steam, 증기)이 날 지경”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교과부가 두 개 부처로 나눠진 뒤 미래부는 과학기술특성화대·과학고 등 영재교육과 과학관 운영 등 과학 저변 확대 기능만 담당하고 있다. 일반 초·중등 과학교육 관련 기능은 모두 교육부에 남았다. 하지만 교과부 때 과학·교육 융합정책 수립을 담당했던 부서는 일개 팀으로 축소됐다.



융합정책 부서 인력·예산 크게 줄어





 시·도교육청 상황도 다르지 않다. 서울시교육청은 현재 장학사 한 명이 융합교육 업무 전체를 책임지고 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조직이 줄며 정책적 관심이나 사업 예산도 줄고 있다”고 말했다. 2003년부터 서울시·서울시교육청이 매년 공동 주최해 왔던 서울과학축전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해에는 학교·기업 등 160여 개 단체가 참여하고 20만 명이 다녀갔을 정도로 대대적으로 치러졌지만, 올해는 서울시 예산이 전액 삭감되면서 시교육청 산하 서울과학전시관의 자체 행사로 치러졌다.



 조직과 기능이 나눠지며 과학교육 혁신은 미래부와 교육부가 긴밀한 협력을 통해 풀어야 할 과제로 남게 됐다. 두 부처는 “소통에 문제가 없고, 코워크(co-work, 협업)도 잘 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바깥의 평가는 다르다.



 지난 8월 나온 창의인재 육성 방안에서 정부는 핵심 협업과제로 ‘학교 내 무한상상실 설치’를 첫손에 꼽았다. 기존 미래형 과학교실(교육부 사업)과 연계해 학생들이 자신이 상상해 본 것을 실제로 만들어 현실화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업방안을 놓고 미래부와 교육부는 서로 딴소리를 하고 있다. 미래부는 “내년에 최소 17개 시·도 학교에 각 한 곳씩에 둘 생각”인 반면 교육부는 “10곳에만 시범 설치하겠다”는 입장이다. 예산에 대한 입장도 엇갈린다. 미래부 관계자는 “학교(에 대한 시설 투자)는 교육부 소관”이라며 “하드웨어에 대한 현금 투자는 어렵고 교육 모듈 개발, 인력 파견 등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반면 교육부는 정규 예산에 관련 비용을 편성하지 않았다. 다만 지방 교육청에 내려보내는 특별교부금 명목으로 학교 한 곳당 2000만원씩 총 2억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미래부가 돈을 내놓지 않겠다는 걸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학교 SW교육 강화 계획도 엇박자



 학교 소프트웨어(SW) 교육 강화 계획도 양 부처가 엇박자를 내고 있다. 미래부는 지난달 SW혁신 전략을 발표하며 “SW교육을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하고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반영시키는 방안을 교육부와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영찬 교육부 기획담당관은 “정보교과를 수능 과목으로 넣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미래부와 관련 내용을 논의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미래부는 현재 20% 수준에 머물고 있는 중·고교의 정보교과 선택률을 높이기 위해 일선 학교에 기자재를 지원하는 등 인센티브 제공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에서 관련 예산 대부분을 삭감당했다. 미래부 관계자는 “타 부처(교육부) 관련 사업 예산을 왜 미래부에서 신청하느냐는 반응이었다”며 “천신만고 끝에 명함 내놓기도 부끄러울 만큼 소소한 금액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이상언 특파원(영국 런던), 김한별(미국 시카고)·윤석만 기자,박상대 부의장

사진=김상선 기자



관련기사

▶ "SW 파워에 나라 장래 달려 … 과학교육 부처 간 협력을"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